[신혜연의 맞춤 양념] 식초1... 더위로 도망간 입맛 찾아주는 새콤함
신혜연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8-06 15:00:39
제주도에선 자리물회에 빙초산 몇 방울
[Cook&Chef = 신혜연 칼럼니스트] 푹푹 찌는 폭염에 입맛을 잃은 지 오래다. ‘이열치열’이라고 뜨거운 삼계탕이 여름 보양음식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뜨거운 음식보다는 찬 음식을 찾게 되고, 고소하거나 녹진한 맛보다는 새콤하고 가벼운 맛이 생각난다. 오이 냉국이나 해파리 냉채, 오징어 초무침 같은 시원하고, 새콤한 음식을 찾게 된다. 왜 그럴까?
사람 몸이란 게 참 신기하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 계절에 비해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더 빨리 지치고, 몸 속에 피로물질인 젖산도 쉽게 쌓인다.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몸이 본능적으로 젖산을 분해하고 배출을 도와주는 유기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식초나 과일 같은 새콤한 음식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또 생리학적 메커니즘에 따라 체온 조절을 위해 피부 표면으로 혈류가 쏠리면서 소화 효소가 줄어 입맛이 떨어지니 이럴 때는 신맛으로 침샘과 위산을 자극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아울러 식초의 산성 성분은 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천연 방부제 및 살균 작용도 한다. 음식이 쉽게 상하는 여름철에 안전하게 음식을 먹으려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오랜 기간 동안 경험을 통해 쌓인 인류의 상식 덕분이다.
그런 이유로 요즘 우리집 조리대 맨 앞자리는 식초가 차지하고 있다. 골뱅이에 푸른 참나물 듬뿍 넣어 고추장과 식초를 넉넉하게 넣어 무치는 골뱅이 초무침, 제철 오이를 착착 가늘게 채 썰어 식초와 소금, 설탕 넣어 차가운 물 부어 만드는 오이 냉국, 비 오는 날 저녁 부침개에 곁들여 먹을 초간장에도 식초를 넉넉하게 넣어 새콤하게 준비한다.
음식에 식초를 많이 넣고 조리하면 음식에서 비린내도 덜 하고, 원래 상태보다 훨씬 쫄깃하게 된다. 골뱅이나 오징어 같은 해산물은 알칼리성 물질인 트라이메틸아민 때문에 특유의 비린내가 나기 쉽다. 여기에 산성 물질인 식초를 뿌리면 알칼리성 물질과 산-염기 중화반응이 일어나 비린내가 물에 녹거나 비휘발성이 되어 우리가 먹을 때 비린내를 덜 느끼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해산물의 살이 주로 단백질로 이뤄져 있어 산성인 식초가 닿으면 표면 단백질이 단단하게 응고되면서 수분을 가두는 효과를 내어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식감을 갖게 된다. 육류, 해산물, 튀김 같은 기름진 음식 역시 산성인 식초와 만나면 식초의 아세트산이 입 속에 남아 있던 기름기를 싹 없애서 입안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유용한 식초의 효능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음식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셰프가 있다. 현재 뉴욕에서 미쉐린 2스타 식당으로 한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주옥’의 신창호 셰프다. 2016년 청담동 골목 안에서 ‘손님을 귀하게 모시고, 식재료를 소중하게 다루겠다’는 뜻을 담은 상호인 ‘주옥’ 간판을 달고 식당을 연 신창호 셰프가 처음 내놓은 것은 직접 담근 천연 발효 식초 3가지였다. 한국적 재료인 송순, 사과, 감을 넣어 전통 방식에 따라 담근 식초를 유리잔에 조금씩 담아 작은 숟가락으로 이 식초들의 맛을 보게 했다. 식초 테이스팅을 설명하는 신창호 셰프를 다시 한번 올려다봤던 기억이 있다. “이 셰프, 진심이구나” 하면서.
식전이라 몸도, 마음도 기대에 찬 상태에서 식초를 한 숟가락으로 떠 먹으니 온몸이 차례대로 깨어나는 느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소나무 순의 맑은 향기가, 새콤달콤한 사과 향이, 달큰한 감 향이 온몸을 깨우고, 입안을 깔끔하게 만들어줬다. 이어서 진주 두릅, 독도 꽃새우, 의령 메추리 같은 국내산 제철 재료들로 만든 까르파치오, 연포탕, 봉화오리 등의 요리가 이어지는 중에도 식초들은 수시로 제 역할을 했다. 주옥에서는 이외에도 막걸리, 포도, 귤, 와인, 생강, 블루베리, 케일 등으로 만든 다양한 식초들 덕분에 식사내내 재료의 향과 맛을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미식’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 수 있었다.
평양냉면 전문점에서도 식초는 중요하다. 요즘, 평양냉면을 안 먹으면 음식을 모르는 사람 취급할 정도로 평양냉면 마니아층이 늘어났다. ‘냉면 먹을 때 식초를 넣으면 육수의 순수함을 해친다’는 ‘면스플레인’(Noodle + Explain의 합성어)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양냉면의 원산지라 할 북한 옥류관에서는 면발 위에 직접 식초를 살짝 뿌려 메밀의 풍미를 끌어올려 먹기도 한다. 평양냉면 전문점의 식탁마다 식초가 놓여 있는 이유다.
희한하게도 제주의 어르신들은 이 자리물회를 먹을 때 꼭 빙초산을 몇 방울 넣어 드신다. 빙초산은 고농도 초산으로 그대로 먹으면 입안이나 식도에 화학적 화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약품이라서 이거 그냥 드시면 위험하다고 말리면 “이건 많이 희석한 거라서 괜찮아. 이걸 넣어야 자리물회 맛이 제대로 나” 하면서 맛있게 드신다. 하긴 허가받아 영업하는 식당의 식탁에 올려져 있으니 못 먹을 것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빙초산을 넣으면 자리돔의 비린내가 확실히 덜하고, 잡맛 없이 신맛만 쨍하게 도드라진다는 것. 궁금해서 나도 한두 방울 넣고 먹어보니 정말로 맛이 깔끔해지는 효과가 느껴지긴 했다. 그래도 계속 먹기는 불안해서 빙초산은 치우고 식초를 넉넉하게 넣어 맛있게 먹었다. 생선을 뼈째 썰어서 날로 먹는 음식을 이렇게 상큼하고 고소하게 먹을 수 있는 건 순전히 식초 덕분이라고 식초를 예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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