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 건강노트] 겨울 바다의 작은 보약, ‘꼬막’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1-18 17:00:16
심혈관·간·면역을 아우르는 꼬막의 효능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겨울이 시작되면 유독 생각나는 식재가 있다. 삶아 한 점 집어 먹기만 해도 바다 향이 올라오고, 간장 양념만 올려도 밥 한 그릇이 사라지는 제철 별미, 꼬막이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청정 갯벌에서 채취되는 꼬막은 맛과 식감은 물론 영양이 가장 충만한 시기를 맞는다. 쫄깃한 식감 뒤에 숨은 영양 밀도 덕분에 예로부터 ‘겨울철 보양 식품’으로 불려 왔다. 식재료·영양 트렌드가 ‘가성비+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는 지금, 꼬막은 다시 한 번 주목할 만한 겨울 식탁의 주인공이다.
겨울 갯벌이 키운 단백질 보고, 꼬막의 정체
꼬막은 돌조개과에 속하는 패류로,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보성·고흥·순천·여수로 이어지는 여자만 연안이 대표 산지다. 미세한 갯벌 입자와 완만한 수심, 적당한 수온이 어우러져 꼬막이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이룬다. 과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를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우리 식문화에서 꼬막은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식재료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꼬막을 ‘감(蚶)’이라 부르며 크기와 껍질 모양, 단맛 나는 살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고막’, ‘안다미조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현재 표준어는 ‘꼬막’으로 정착했다.
우리 식탁에서 흔히 만나는 꼬막은 크게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피조개) 세 종류로 나뉜다. 참꼬막은 세 가지 가운데 크기는 가장 작지만, 특유의 깊은 감칠맛과 쫄깃한 식감 덕분에 ‘꼬막 중의 꼬막’으로 불린다. 성장에만 3~4년이 걸려 생산량이 많지 않고, 주로 산지 인근에서 소비되거나 높은 가격에 유통되는 편이다. 새꼬막은 참꼬막보다 크고 껍질 표면에 솜털이 나 있으며, 식감이 부드러워 전·부침 등에 잘 어울린다. 양식이 가능해 남해·서해에서 대량 생산되고, 시중에서 흔히 보는 꼬막 대부분이 새꼬막이다. 피꼬막은 크기가 크고 속살이 붉어 ‘피조개’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헤모글로빈 함량이 높아 붉은 색을 띠며, 이 안에는 철분을 비롯해 칼슘·아미노산·타우린·아연 등 다양한 영양 성분이 농축돼 있다.
겨울철 원기회복에 필요한 영양소 모두 갖춰
영양 구성을 보면 왜 꼬막이 ‘겨울철 원기회복 식품’으로 불리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꼬막에는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근육 회복과 성장 발달을 돕고, 칼슘과 칼륨은 뼈 건강과 혈압 조절에 기여한다. 특히 타우린 함량이 높다는 점이 눈에 띈다. 타우린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액순환을 도와 심혈관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겨울처럼 혈관이 수축되기 쉬운 계절에 꾸준히 섭취하면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에 간의 해독 작용을 돕는 베타인 성분이 함께 들어 있어 지방간과 숙취 해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베타인은 체내 독소 배출을 도와 간세포를 보호하고, 타우린과 함께 손상된 간 기능 회복을 지원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꼬막의 빈혈 예방 효과다. 꼬막에는 붉은 헤모글로빈 색소와 함께 철분과 비타민B군이 풍부해 혈액 생성과 산소 운반에 관여한다. 생리 중인 여성이나 성장기 청소년, 임산부처럼 철분 요구량이 높은 집단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 여기에 항산화 미네랄인 셀레늄과 면역을 돕는 핵산 성분도 들어 있어, 겨울철 떨어지기 쉬운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열량은 100g당 약 81kcal 수준으로 낮지만 포만감은 높은 편이라, 고단백 저지방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적합하다.
심혈관·간·면역까지… 꼬막, 이렇게 먹어야 ‘보약’ 된다
아무리 좋은 영양 성분을 가진 식재료라도 손질과 조리 과정이 엉성하면 제 가치를 다하기 어렵다. 꼬막은 패류 특성상 갯벌의 미세한 진흙과 불순물이 껍질 사이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세척과 해감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 큰 볼에 물을 받아 소금을 한 움큼 넣고 꼬막을 여러 차례 비벼 씻어 껍질 표면의 진흙을 제거한 뒤, 흐르는 물에 2~3번 헹군다. 이후 물 1L에 소금 2~3스푼을 넣어 소금물을 만들고, 꼬막을 담가 어두운 상태로 1~2시간 정도 해감을 하면 속에 남아 있던 모래가 빠져나온다. 해감을 너무 오래 하면 맛과 식감이 떨어질 수 있어 시간을 지키는 것이 좋다.
데치는 과정에서도 ‘시간’과 ‘불 조절’이 관건이다. 끓는 물에 꼬막을 넣고 2~3분 정도만 익히는 것이 적당한데, 이때 한 방향으로 젓가락을 돌려가며 저어주면 한쪽 껍질만 열려 살을 떼어내기 쉬워진다. 너무 오래 삶으면 꼬막살의 탄력이 사라지고 질겨지기 쉬워,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고 싶다면 짧고 정확한 데침이 좋다. 이렇게 손질한 꼬막은 양념무침, 초무침, 꼬막비빔밥, 찌개, 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진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과 양파, 쪽파, 매실액, 참기름을 섞은 기본 양념장만 준비해도, 집에서도 식당 못지않은 ‘겨울 밥도둑’ 한 상을 차릴 수 있다.
영양 측면에서 보면 꼬막은 한 가지 기능만을 가진 식재료가 아니다. 혈관 건강에는 앞서 언급한 타우린과 칼륨, 셀레늄이 함께 작용해 혈류 개선과 염증 감소에 도움을 준다. 간 건강과 관련해서는 타우린과 베타인이 알코올 대사를 돕고 지방이 과도하게 쌓이는 것을 막아 지방간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본초서에서는 꼬막을 ‘주취를 풀고 갈증을 해소한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면역력 측면에서는 단백질과 핵산, 각종 미네랄이 조합을 이루어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철분과 비타민B군은 빈혈을 예방해 전신 피로감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겨울철 유독 피로를 잘 느끼거나 손발이 차고 어지러움을 자주 겪는 사람이라면, 제철 꼬막 요리를 식단에 포함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과다 섭취는 금물이다. 꼬막은 성질이 차가운 식품이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으면 복통이나 설사, 소화불량이 나타날 수 있다. 평소 소화 기능이 약하거나 배가 자주 차고 아픈 사람은 한 끼 섭취량을 조금씩 나누어 먹는 편이 낫다. 패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섭취 전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선도이다. 껍질을 건드렸을 때 즉시 입을 다무는 꼬막이 선도가 좋은 상태이며, 입을 벌린 채 반응이 없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꼬막은 크지 않은 조갯살 안에 바다 생태계의 영양과 겨울 갯벌의 시간, 그리고 우리의 식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는 식재료다. 한 접시의 양념 꼬막무침, 한 그릇의 꼬막비빔밥이 단순한 ‘밥도둑’을 넘어 심혈관 건강, 간 해독, 면역 강화, 빈혈 예방까지 돕는 겨울철 맞춤 영양식이 될 수 있다. 제철은 길지 않다. 지금 이 계절, 제대로 손질하고 적당히 즐기는 꼬막 한 상이 올겨울 몸과 입맛을 함께 살리는 가장 현실적인 ‘보양식’일지 모른다.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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