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이블] '런치박스' ... 잘못 배달된 도시락으로 전하는 위로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8-06 15:01:11

아내가 싸보내는 인도의 점심 배달 문화 '다바'
외로움 달래는 손편지와 온갖 가정식 메뉴 등장
사진=런치박스 공식 포스터

[Cook&Chef = 조소현 기자] 잘못 배달된 도시락 하나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아내를 여의고 은퇴를 앞둔 회계사 ‘사잔’(이르판 칸)과 남편의 무관심 속에 살아가는 주부 ‘일라’(님랏 카우르)는 우연히 뒤바뀐 도시락을 계기로 서로의 일상을 나누게 된다.

2013년 개봉한 리테시 바트라 감독의 《런치박스(The Lunchbox)》는 한 끼의 도시락과 손편지가 외로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전 세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인도 뭄바이의 도시락 문화 ‘다바(Dabba)’를 중심 소재로 삼는다. ‘다바(Dabba)’는 힌디어로 도시락 통을 뜻하는데, 남편이 출근하면 집에 남은 아내들은 다바에 정성스럽게 만든 집밥을 담아 ‘다바왈라’에게 건넨다.

 ‘다바왈라(Dabbawala)’는 다바와 '~을 파는 사람'을 의미하는 '왈라(-wala)'를 합친 말로, 도시락 배달원을 말한다. 다바왈라는 자전거와 기차 등을 이용해 복잡한 뭄바이 시내를 오가며 하루 수십만 개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전문가들이다.

도시락 배달원 '다바왈라'. 
사진 = Joe Zachs from Pune, India/ Wikimedia Commons

다바왈라 한 명당 평균 하루 40개의 도시락을 배달하며, 다 먹은 도시락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역시 이들의 몫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기호로 도시락을 식별하는데, 오배달될 확률이 1600만 분의 1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놀라운 정확도를 자랑한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구밀도로 인한 교통 혼잡과 도시 인프라 부족은 뭄바이에 이 같은 다바 문화를 자리 잡게 했다. 매일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기에는 직장인들의 임금이 낮은 것도 다바 문화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그렇다면 사잔의 다바 안에는 어떤 음식이 들어갔을까?

사진=런치박스 공식 스틸컷

영화 속 도시락은 뭄바이의 ‘진짜 집밥’을 담아낸다. 뭄바이의 가정에서는 차파티, 달, 사브지, 아차르 등의 음식과 인도식 쌀밥을 함께 먹는다. 한국 가정에서 밥·국·반찬으로 식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차파티(Chapati)’. 사진=Wikimedia Commons

‘인도의 식사용 빵’ 하면 우리는 쉽게 ‘난’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인도 가정식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빵은 ‘차파티(Chapati)’다. 통밀가루로 만든 일상 빵으로,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반죽을 둥글게 밀어 기름을 거의 쓰지 않고 철판에 구운 뒤 직접 불에 그슬려 완성한다.

차파티는 손으로 찢어 달에 찍어 먹거나 사브지를 곁들여 먹는다. 담백한 맛으로, 인도 북부와 서부에서는 차파티가 한국의 밥과 같은 주식의 개념이다.

영화에서 일라는 그녀의 내밀한 속마음을 전하듯, 이 차파티 사이에 손편지를 숨겨 사잔에게 전달한다. 가장 일상적인 집밥 속에 가장 진솔한 마음을 담아 보냄으로써, 그들은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준다.

사진=런치박스 공식 스틸컷 ‘달(Dal 또는 Daal)’. 사진= Guilhem Vellut from Annecy, France /Wikimedia Commons(CC BY 2.0)

차파티가 밥과 같다면, ‘달(Dal 또는 Daal)’은 국과 비슷하다. 렌틸콩, 비둘기콩, 병아리콩, 녹두 등 콩류의 껍질을 벗기고 삶아 향신료로 맛을 낸다. 콩의 고소함과 마늘, 생강, 강황, 토마토 등으로 맛을 내고, 걸쭉하게 또는 묽게 먹는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채식 인구 비율이 높은 인도에서 단백질과 식이섬유, 철분 등을 공급하는 중요한 음식으로 거의 매 끼니 식탁에 오른다.

도시락을 처음으로 깨끗이 비워 먹은 사잔에게 일라는 고맙다는 편지를 보낸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라며 '파니르(Paneer)'를 만들어 사잔에게 보낸다. 파니르는 우유를 응고시켜 만드는 인도의 대표적인 생치즈로, 채식 문화가 발달한 인도에서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사잔에게 보낼 파니르를 만드는 일라. 사진=런치박스 공식 트레일러

사잔은 그 도시락도 남김없이 비워 먹지만, "간이 조금 짠 것 같다"는 짤막한 답장을 남긴다. 이에 일라는 매운 고추를 듬뿍 넣은 달을 보내 반찬 투정을 하는 사잔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다.

인도식 피클  '아차르(Achaar)'. 우리의 장아찌와 비슷한 비주얼이다. 
사진= Tonynirappathu /Wikimedia Commons(CC BY 2.0)

다바에 또 중요한 것이 '사브지(Sabzi)'와 '아차르(Achaar)'다. 사브지는 감자, 가지, 콜리플라워, 오크라 등 제철 채소를 향신료와 함께 볶거나 조린 채소 반찬이다. ‘아차르’는 망고와 라임, 고추 등을 향신료나 기름에 절여 숙성시킨 인도의 전통 절임 음식이다. 김치나 장아찌처럼 입맛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일라에게 남편은 “콜리플라워로 만든 고비 사브지 좀 그만 보내라(Gobi Sabzi)”며 핀잔한다. 그러나 그가 먹은 다바는 원래 사잔의 것이었다. 손수 도시락을 싸줄 아내가 없는 사잔의 사정상, 그건 아마 어느 식당의 정기배달 다바일 것이다. 영화는 이 짧은 대사를 통해 일라의 남편이 아내가 만든 집밥과 식당 음식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사잔은 일라가 보낸 도시락을 남김없이 비우고,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보낸다. 일라의 외로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정성껏 만든 한 끼를 진심으로 받아줄 사람이 누구인지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장면이다.

사진=런치박스 공식 스틸컷

《런치박스》는 음식도 하나의 등장인물이라고 말한다. 일라가 사잔에게 마음을 열수록 도시락은 더 풍성하고 정성스러워지고, 그 변화는 말보다 먼저 두 사람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한다. 《런치박스》는 음식의 맛을 이야기하기보다, 정성껏 만든 한 끼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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