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식당, 그라나다에 남은 이슬람의 흔적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8-11 15:00:57

무어인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 모로코의 맛
민트차와 환대, 타진·메제·호브즈
알함브라 궁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그라나다의 도시 풍경. 이슬람의 영항을 받은 건축과 도시 구조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 조소현 기자

[Cook&Chef = 조소현 기자] 8세기부터 이베리아반도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이슬람 세력은 건축과 예술, 생활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그라나다는 1492년 마지막 이슬람 왕조가 무너질 때까지 그 중심지 역할을 했다.

알함브라 궁전과 시에라 네바다의 만년설이 펼쳐지는 그라나다의 절경. 사진= 조소현 기자

해발 700m에 가까운 고지대에 자리해 시에라 네바다의 만년설을 마주하고 있는 도시 곳곳에는 알함브라 궁전과 알바이신의 좁은 골목, 아치와 타일 장식 등 당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정원. 물과 식물을 활용한 이슬람식 정원 양식이 돋보인다. 사진= 조소현 기자 모로코 음식점 ‘팔라시오 안달루즈 알모나(Palacio Andaluz Almona)’ 내부.
사진=Palacio Andaluz Almona 페이스북.

북아프리카와 그라나다의 오랜 문화적 교류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지금의 그라나다에는 모로코인들이 정착해 살아가며 자신들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알바이신을 살짝 벗어나 그라나다 중심부에 위치한 모로코 음식점 ‘팔라시오 안달루즈 알모나(Palacio Andaluz Almona)’를 찾았다. 고풍스러운 모로코식 램프와 타일로 장식된 식당 안의 편안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모로코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차주전자. 사진= 조소현 기자

모로코 식당 혹은 모로코식 찻집인 ‘테테리아(tetería)’에 가면 빠지지 않는 것이 민트차다. 주둥이가 긴 찻주전자에 향긋한 민트차를 담아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은 모로코의 대표적인 환대 방식이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마실 만큼 일상에 깊이 자리한, 모로코인들의 ‘영혼의 음료’이기도 하다.

민트차는 녹차에 신선한 스피어민트 잎을 넣고 설탕을 듬뿍 더해 끓여낸다. 진한 녹차의 쌉쌀함, 민트의 청량한 향, 강한 단맛이 완벽한 삼박자를 이루며 어우러진다.

모로코에서는 민트티를 독특한 방식으로 서빙한다. 팔을 위로 쭉 뻗어 주전자를 약 30센치 이상 높은 곳에서 기울여 물줄기를 내려 꽂듯 잔에 따라낸다.

이는 자연스러운 거품을 내 향을 풍부하게 살리고 공기와 접하며 먹기 좋은 온도로 식히기 위함이다. 또 손님을 환영한다는 그들만의 표현이자, 눈길을 사로잡는 퍼포먼스인 셈이다.

설탕을 듬뿍 넣은 민트티. 향이 강렬하다. 사진= 조소현 기자

‘엔살라다 수르티도 알모나(Ensalada surtido Almona)’를 주문하면 모로코식 전채인 '메제(mezze)' 다섯 가지가 한 접시에 나온다. 중동·동지중해·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발달한 메제는 소량의 여러 가지 요리를 한꺼번에 차려내는 식문화로, 식사 전에 나눠먹는 전채나 반찬처럼 곁들여먹는 음식이다. 

전채 요리인 메제. 후무스를 비롯한 다섯 가지가 한 접시에 나왔다. 사진= 조소현 기자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후무스(Hummus)’가 대표적인 메제 중 하나다. 삶은 병아리콩에 타히니, 레몬즙 등을 넣어 곱게 갈아 만든 중동·북아프리카 음식으로 고소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그 외에 가지와 토마토를 익힌 ‘잘루크(Zaaluk)’, 구운 피망과 토마토로 만든 ‘탁투카(Taktouka)’, 여기에 향신료를 더한 당근 ‘사나오리아(Zanahoria)’와 잠두콩으로 만든 ‘아바스(Habas)’가 더해진다. 

원뿔 모양의 타진 냄비. 사진= 조소현 기자

모로코의 자랑인 ‘타진(Tagine)’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모양의 토기 냄비를 타진이라고 부르고, 그 냄비에서 천천히 조리한 스튜 또한 타진이라고 부른다. 

물이 귀한 사막지대에 사는 북아프리카 유목민들이 원뿔 모양의 뚜껑 안에 재료가 가진 수분을 가둬, 천천히 익혀내는 조리법을 만들어 냈다. 물을 추가할 필요 없이 고기를 부드럽게하고 소스가 진하게 배어들게하는 지혜로운 조리법이다. 

양고기 타진을 주문했는데, 부드럽게 익힌 양고기에 말린 살구와 아몬드가 같이 나왔다. 낯선 조합이지만 달콤하게 졸아든 살구와 고소한 아몬드가 달달하게 졸인 갈비찜의 익숙한 맛이 떠오른다. 여기에 쿠민과 계피 같은 향신료가 더해져 모로코 특유의 이국적인 단짠 풍미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양고기에 달콤한 말린 살구와 고소한 아몬드를 더한 타진은 모로코에서 즐겨 먹는 조합이다. 사진= 조소현 기자 모로코의 전통 빵 ‘호브즈(khobz)’. 둥글고 납작하게 구워 타진이나 후무스와 곁들여 먹는다. 사진= 조소현 기자

모로코에서 이 음식들과 꼭 함께 먹는 것이 있는데, 바로 모로코의 빵 ‘호브즈(khobz)’다. 호브즈는 아랍어로 '빵'을 뜻하는 말로, 모로코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둥글고 납작한 전통 빵이다. 모로코에서는 식사 때 포크 대신 빵으로 고기나 채소를 집어 먹거나 타진의 소스를 찍어 먹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한다. 

인도 커리에 난을 찍어 먹듯이, 둥글고 납작하게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 후무스 같은 되직한 페이스트나 타진의 진한 소스에 찍어 먹었다. 손으로 빵을 찢어 음식을 먹는 경험을 하고 나니, 한 끼 식사로 모로코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라나다에서 모로코 음식을 맛보는 일은 단순히 이국적인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둔 안달루시아와 모로코의 오랜 교류를 생각하면,  두 문화의 교착점에서 그라나다의 역사를 음식으로 맛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사자 분수. 12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분수로, 나스르 왕조를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다. 사진= 조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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