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의 낯설지만 익숙한 맛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9-08 10:04:32
참치포에 생선알튀김까지...익숙한 재료의 재발견
[Cook&Chef = 조소현 기자] 세비야에는 외계 왕궁이 있다. 반원형으로 펼쳐진 건물과 부채꼴의 광장 앞을 따라 흐르는 운하, 붉은 벽돌과 화려한 타일 장식이 어우러져 세비야에서도 유난히 독특한 풍경. 바로 '에스파냐 광장(스페인 광장)'이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에서 외계 행성 '나부'의 왕궁으로 등장했던 곳으로, 에스파냐 광장 한가운데에 서면 느껴지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왜 이곳을 외계 행성의 배경으로 썼는지 납득하게 된다.
에스파냐 광장은 1929년 세비야에서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 조성된 공간으로, 스페인의 전통 건축에 무데하르와 르네상스 양식을 접목해 완성됐다. 지금은 스페인 정부의 행정기관이 입주해 있으며, 일부 공간은 군사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거대한 반원형의 건축물을 따라 이어지는 타일 벤치에는 스페인 각 도시를 상징하는 역사와 풍경이 새겨져있다.
운이 좋으면 광장에서 집시 예술가들의 플라멩코 공연도 만날 수 있다. 정식 공연장이 아닌 야외에서 만나는 플라멩코는 기타 선율과 발 구르는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면서 또 다른 생동감을 더한다.
여행자가 세비야에서 기대하는 풍경 그 자체이다.
세비야를 대표하는 장소를 찾았다면, 세비야를 대표하는 맛을 빼놓을 수 없다. 세비야 구시가지 산 로렌소 지역의 입구에 자리한 '도스 데 마요(Bodega Dos de Mayo)'. 세비야 중심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는 전통 타파스 바다.
세비야에 머무는 동안 이틀 연속 도스 데 마요를 찾았다. 유명한 곳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두 번 모두 가게 안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한참을 둘러봐도 쉽사리 자리가 나지 않아, 결국 두 번 모두 음식을 포장해 나오기로 했다.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입구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하몽과 샤퀴테리, 중앙에 자리한 바와 빼곡하게 늘어선 와인병, 벽면의 메뉴판과 오래된 듯한 타일 장식까지. 손님들 사이를 비집고 서둘러 음식을 먹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모습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맛본 것은 '모하마(Mojama de Barbate)'였다. 모하마는 참치의 등살 부위를 소금에 절인 뒤 씻고 눌러 수분을 빼고, 다시 공기 중에서 건조·숙성해 만든다. 전통 방식에서는 소금에 절이는 과정이 약 18~36시간 정도 이어지고, 이후 여러 차례 씻어 염도를 조절한 뒤 압착과 건조를 거친다.
이렇게 참치를 포로 만들어,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살짝 구운 아몬드와 곁들여낸다.
두툼한 참치 한 조각이 입안에 꽉 차는 충만한 만족감을 준다. 생참치와는 전혀 다른 씹을수록 농축된 참치의 감칠맛과 짭조름한 풍미가 올라온다. 바닷바람과 소금으로 재료를 오래 보존하던 방식이 참치 한 조각 안에 그대로 담겨있다. 익숙한 듯 낯선 식감과 풍미가 참치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여기에 더한 올리브오일이 날카로웠던 염도를 한결 부드럽게하고, 구운 아몬드가 바삭한 식감을 더한다. 아몬드의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이 짠맛을 받아주면서 한입의 풍미를 둥글게 만들어준다.
다음은 '생선알튀김(Huevas fritas)'. 생선알을 튀겨 먹는 방식은 특히 안달루시아와 남부 스페인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이다. 손질한 생선알에 간을 하고 밀가루를 묻혀 올리브유에 튀겨낸다.
갓 튀겨 따끈한 알 튀김을 한입 베어 물었다. 얇은 튀김옷이 먼저 바삭하게 부서지고, 그 안에서는 생선알 특유의 포슬포슬하면서도 촘촘한 질감이 느껴진다.
살짝 퍽퍽한 듯한 밀도감이 입안에 남는데, 그 맛이 묘하게 중독적이다. 입안에 남는 묵직한 맛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으로 마저 씻어내린다. 바삭하고 짭조름한 첫맛과 포슬포슬한 속살, 그리고 맥주의 청량함까지. 남부 스페인의 해산물 튀김의 정수가 느껴지는 맛이다.
숙소로 돌아와 느긋하게 맥주를 곁들여 음식을 펼쳐놓고 먹으니, 가게에서 먹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북적이는 바 한쪽에 앉아 현지 손님들과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바로 먹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자리가 없어 포장해 나온 덕분에 오히려 음식 하나하나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에스파냐 광장은 마치 외계 행성에 와 있는 듯 낯설고 신비로웠다.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과 도스 데 마요에서 맛본 음식의 인상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참치와 생선알은 분명 익숙한 재료인데, 그 재료를 다루는 방식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여행이 주는 재미는 어쩌면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른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낯선 눈으로 다시 바라보는 것. 세비야에서 그 낯섦을 광장에서도, 식탁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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