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얀 마을, '프리힐리아나'의 맛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8-04 15:02:59
절경과 미식이 공존하는 '엘 카시노'
[Cook&Chef = 조소현 기자] 말라가에서 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안달루시아 관광의 중심인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에 속한 도시 네르하가 있다.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유럽의 발코니(Balcón de Europa)'는 네르하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네르하에서 버스를 타고 산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달리면 프리힐리아나가 있다. 하얀 마을과 산세가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 덕분에 프리힐리아나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마을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매년 10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과거 외세의 침략을 피해 해발 약 300m의 알미하라 산맥 기슭에 조성된 이 마을은 오랜 역사와 독특한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하얀 벽과 꽃으로 장식된 작은 발코니를 가진 집들이 언덕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 세 종교가 공존했던 평화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프리힐리아나의 언덕 골목에 위치한 '엘 카시노(El Casino)'는 1940년대 마을 주민들의 사교 공간이었던 '카지노'의 이름을 이어받은 레스토랑이다. 여기서 '카지노'는 도박장이 아니라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카드와 도미노를 즐기던 전통적인 클럽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프리힐리아나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레스토랑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곳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테라스에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지중해를 품은 알미하라 산맥과 하얀 마을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손님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테라스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여기가 식당이라는 사실도 잊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경치 좋은 관광객용 식당으로 보기에는 아쉽다. 프리힐리아나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엘 데 카냐(Miel de Caña)'다. 사탕수수 즙을 오랜 시간 졸여 만드는 전통 시럽으로, 마을의 오랜 사탕수수 재배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식문화 유산이다. 현재도 스페인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통 방식의 사탕수수 시럽을 생산하는 공장이 이 마을에서 운영되고 있다.
미엘 데 카냐는 토스트나 팬케이크,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에 곁들여 먹는 것은 물론, 숙성 치즈와 함께 즐기거나 육류 요리의 소스로도 활용된다. 마을의 기념품 상점마다 병에 담긴 미엘 데 카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프리힐리아나를 대표하는 먹거리 선물로도 인기가 높다.
'베렌헤나스 콘 미엘(Berenjenas con miel de caña)'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얇게 썬 가지에 가볍게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뒤, 미엘 데 카냐를 듬뿍 뿌려 낸다. 단순한 조리법이지만 가지의 담백한 풍미와 사탕수수 시럽의 깊은 단맛이 어우러지도록 만든 요리다. 미엘 데 카냐의 본고장답게 프리힐리아나 대부분의 식당에서 이 메뉴를 만날 수 있다.
한입 베어 물면 감자칩처럼 바삭한 튀김옷 아래로 부드럽게 익은 가지가 입안에서 사르르 풀어진다. 처음에는 달콤한 시럽을 튀김에 곁들인 조합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조청처럼 걸쭉한 미엘 데 카냐의 은은한 단맛이 가지 특유의 향과 어우러지며 의외의 균형을 만들어낸다.
춘권피처럼 얇은 반죽으로 염소치즈를 감싸 튀긴 요리를 주문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염소치즈 생산국이다. 특히 프리힐리아나가 속한 말라가 지역은 산지가 많고 건조한 기후 덕분에 예로부터 염소 사육이 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염소치즈가 생산돼 왔다.
부드러운 질감과 은은한 산미를 지닌 염소치즈와 미엘 데 카냐가 만나 짭조름함과 달콤함이 균형을 이룬다. 염소치즈의 살짝 꼬릿한 향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진한 풍미를 즐긴다면, 에피타이저는 물론 가벼운 간식이나 와인 안주로도 손색이 없는 맛이다.
스페인 여행을 마친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 프리힐리아나다. 하얀 골목과 지중해를 품은 풍경,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마을. 프리힐리아나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름난 레스토랑 하나보다 이 자연을 담은 식재료를 맛본 기억이 더 선명하다. 미엘 데 카냐와 염소치즈처럼 이곳의 자연과 역사가 담긴 음식이라면, 어느 식당에서 먹더라도 프리힐리아나만의 풍경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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