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싼 배추, 그런데 왜 추석을 걱정할까

안정호 기자

82zebo@gmail.com | 2026-08-14 15:05:55

소비 부진에 눌린 값…"수요처 지갑 닫아"
고온 탓에 산지 작황 불안 '금치'우려 여전
전남 해남군가을배추 생육 현장. 사진=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Cook&Chef = 안정호 기자] 폭염이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런 무더위엔 '금추'란 말이 어김없이 등장할 법한데 정작 배추값은 잠잠하다. 오히려 평년보다 낮은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8월 상순 배추 도매가격은 포기당 3437원으로 평년보다 32% 낮았다. 소매가격도 포기당 4226원으로 평년보다 26% 낮다. 폭염 속 배추값은 늘 걱정이었지만 올해는 다른 모양새다. 다만 이런 현상이 어디서 왔는지 들여다보면 지금의 낮은 값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배추가 싼 이유, '텅 빈 식탁'

지금 배추값을 끌어내린 건 공급이 넘쳐서라기보다 살 사람이 줄어서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여름, 배추값이 크게 오르자, 관련 업체들이 올해는 봄배추를 넉넉히 사들여 창고에 쟁여뒀다. 그런데 외식 불황 등으로 정작 김치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업체들이 시장에서 추가로 구매하는 물량이 줄어든 것이다.

지선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통화에서 "김치업체들이 봄배추 저장량을 내부적으로 늘린 데다 그들이 사가는 수요마저 줄면서 가격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대 수요처가 지갑을 닫자, 값이 눌린 것이다.

정부 수매 물량은 아직 창고에

주목할 점은 정부의 수매 물량은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배추값이 불안하면 흔히 정부가 물량을 풀어 안정세를 찾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지금은 소비가 낮아 (소관) 저장 물량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다. 정부는 수급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격이 '상승·주의' 단계에 이르러야 비축물량을 풀어 개입하는데 지금은 값이 평년·전년보다 오히려 낮아 개입할 국면이 아니다. 값이 낮을 때 정부가 배추를 사들여 창고에 넣는 건 시장에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잉 물량을 격리해 농가 손실을 막기 위한 조치다.

시설 배추 재배 현장. 사진=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고랭지는 지금 타들어 간다

문제는 이 저장 물량에도 수명이 있다는 점이다. 봄에 수확해 저장한 배추는 통상 2~3개월이 한계다. 지 연구원은 "(저장 기간의 경우) 6월에 수확해 7~8월, 길게는 9월까지 저장할 수 있지만 9월을 온전히 넘기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금 시장을 떠받치는 저장분이 빠지면 시장은 여름 배추에 기대야 한다.

고랭지에서 물량이 나오고는 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고온으로 재배가 어려워지며 면적이 줄어 생산량도 줄고 있다. 지 연구원은 "고랭지 배추는 7월부터 계속 나오지만, 8월엔 고온 탓에 산지 생육이 어려워 면적이 줄어든 추세"라고 했다.

고랭지 배추는 해발 600m 이상 서늘한 고지대에서 자라는 냉량성 작물로 더위에 특히 약하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오를수록 배추의 무름 증상이 심해진다. 여기에 고온과 가뭄이 겹치면 속이 제대로 차지 않아 겉은 멀쩡해도 속이 빈 이른바 '꿀통' 배추가 생기기 쉽다. 올여름 폭염의 강도를 감안하면 그 위험은 더 크다.

넘치던 배추, 그러나 위태로운 구조

결국 지금의 낮은 값은 팔 곳을 잃은 배추가 만든 위태로운 현상이다. 저장 물량이 폭염에 시달린 고랭지 배추로 매끄럽게 이어지면 지금의 낮은 가격은 추석 명절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저장분이 빠지는 시점에 소비가 살아나거나 고랭지 작황이 무너지면 넘쳐나던 배추는 순식간에 '금추'로 바뀔 수 있다.

더 멀리 보면 구조 자체가 위태롭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농업전망 2026'에 따르면 여름철 고온과 잦은 비가 일상화되면서 강원 고랭지 배추밭이 2035년까지 해마다 줄고 그 빈자리를 수입산이 채워 자급률이 75%까지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여름마다 되풀이되는 이 아슬아슬한 바통 터치가 언제까지 버틸지 올해 여름 끝자락이 그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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