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시키면 안주가 공짜, 그라나다의 후한 타파스 인심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8-24 15:05:51

‘앙굴라’ 대신 ‘굴라스’ - 귀한 실뱀장어를 대체한 스페인식 어묵
'찬케테스'부터 '뿔뽀'까지… 놓칠 수 없는 그라나다의 무료 타파스
그라다나로 향하는 버스 창 밖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 거대한 설산이 도시와 어우러진 풍경이 독특하다. 사진= 조소현 기자

[Cook&Chef = 조소현 기자] 시에라 네바다 산맥 기슭의 내륙 도시임에도 그라나다에서는 해산물 요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지중해 연안의 코스타 트로피칼이 자리하고, 해안 도시 말라가 역시 비교적 가까운 덕분에 그라나다는 해산물이 유통되기 좋은 위치다.

타파스는 스페인 어느 도시를 가도 만날 수 있지만, 그라나다의 타파스는 특별하다. 그라나다에는 음료 또는 술을 시키면 음식이 포함되어 무료로 따라 나오는 바가 많다. 넉넉한 안주 인심 덕분에 한 바에서 음료를 마시고 타파스를 즐긴 뒤, 다른 바를 찾아가 또 새로운 타파스를 맛보는 ‘테이페오(tapeo)’ 문화가 발달했다. 여러 바를 돌아다니며 술과 음식을 가볍게 나누는 테이페오는 그라나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사교 방식이기도 하다.

'린콘 데 로드리'의 첫인상은 가볍게 한잔 하며 동네 사람들은 만나는 사랑방 같았다. 사진= 조소현 기자

‘린콘 데 로드리 (Rincón de Rodri)’는 해산물 전문 타바스 바로, ‘로드리의 아지트’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라나다 사람들의 아지트같은 곳이다. 

소박한 동네 식당이지만, 계속 사람들이 몰려오는 탓에 자리가 이미 꽉 차있었다. 자리를 잡으려고 두리번 거리는 동안 단골로 보이는 손님들이 바 카운터 앞에 자연스럽게 서서 직원에게 맥주를 주문했다. 우리도 그 옆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붐비는 타파스 바에서는 음식을 올려놓을 공간만 있다면 어디든 서서 먹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묘한 비주얼의 '굴라스(gulas)' 볶음. 의외로 맛은 친숙하다. 사진= 조소현 기자

각자 마실 술을 시키니 잠시 후 요상한 모양의 음식이 나왔다. 얼핏 미꾸라지 같기도 한 낯선 요리에 대해 직원에게 물었다. 새끼 장어 모양을 본 따 만든 어육 가공식품인 '굴라스(gulas)'라고 설명했다. 바쁜 직원을 더이상 붙잡을 수 없어 검색해보았다. 

가늘고 반투명한 실뱀장어 '앙굴라(angulas)' 사진=Pescaderías Coruñesas

원래 '앙굴라(angulas)'라는 매우 비싸고 귀한 유럽뱀장어 치어가 별미로 여겨지는데, 이를 대체하기 위해 흰살생선의 어육을 갈아 모양을 흉내낸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실뱀장어 모양 어묵'이다. 우리가 받은 음식처럼 주로 올리브유에 마늘과 고추를 넣고 볶아 '굴라스 알 아히요(gulas al ajillo)'로 많이 먹는다. 

탱글한 어묵으로 만든 면 같은 식감에, 알싸한 마늘향이 입혀져 생각보다 익숙한 맛이었다. 특별한 맛이 난다기보다 간단하게 집에서 해먹는 어묵 볶음 같은 느낌이다. 

술 한잔에 무료로 나오는 타파스이다 보니, 메뉴 선택은 할 수 없었다. 물론 원하는 메뉴가 있다면 따로 돈을 지불하고 먹을 수 있지만, 메뉴 이름과 설명을 보고 시켰다면 굴라스를 먹을 생각을 했을까. 뭐가 들었을지 알 수 없는 뽑기처럼 예상치 못한 만남이 주는 재미가 있었다. 

주방에서는 굴라스 요리가 소진 될 때 쯤, 다음 요리가 바로 불에 올려졌다. 이렇게 한 요리를 모든 손님들이 다 맛보면 다음 요리가 순서대로 돌아가며 나온다. 

'찬케테스' 작은 생선 튀김. 마구 퍼서 맥주 안주로 먹기 딱이다. 사진= 조소현 기자 

다음으로 나온 음식은 '찬케테스 콘 엔살라다 데 피멘토스(Chanquetes con ensalada de pimientos)', 즉 찬케테스와 구운 피망 샐러드 다. '찬케테(chanquete)'는 학명 '투명망둑(Aphia minuta)'이라는 생선으로 말라가와 코스타 델 솔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먹어왔다. 하지만 잡는 과정에서 멸치나 정어리 등의 치어가 함께 포획되어 찬케테의 어획은 오래전부터 규제돼 왔다. 그래서 보통 식당에서 ‘찬케테스’라고 부르는 음식은 실제 찬케테가 아닌 다른 작은 생선을 사용한다. 

바삭하게 튀긴 찬케테스 옆에는 피망 샐러드가 곁들여졌다. 불에 구워 단맛을 끌어낸 피망에 올리브유와 식초 등을 더해 산뜻하게 맛을 낸 것으로, 그라나다를 비롯한 지역에서 샐러드나 곁들임으로 활용된다. 

실치처럼 잘은 생선을 기름에 튀겨 고소하고 그에 대비되는 피망이 향긋하고 달큰한 맛을 더한다. 

대화를 하며 맥주를 더 기울이니 문어 요리가 나왔다. 술 몇잔 마셨을 뿐인데, 문어 한 접시가 무료로 나오는 후한 타파스 인심에 맛을 넘어선 감동을 느꼈다. 

'뽈뽀 가예가(Pulpo gallega)'라고 메뉴판에 써있는 이 요리는 삶은 문어를 올리브유와 소금, 파프리카 가루로 간단하게 간한 것이다. 이 식당에서는 양배추 샐러드와 연한 초록빛의 허브 아이올리로 보이는 소스가 곁들여져 나왔다. 

이미 네번의 메뉴를 먹은 상태여서 배가 불렀지만, 거저 얻은(?) 문어를 마다할 수가 없었다. 부드러운 문어에 양배추를 곁들여서 맥주를 한잔 더 하고 마지막 메뉴는 거절하고 나왔다. 

긴 바테이블 앞을 직원이 바쁘게 오가며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른다. 쇼케이스의 해산물이 신선해보인다. 사진= 조소현 기자   

스탠딩 바 앞에는 생맥주 기계가 있고, 직원들이 냉장 쇼케이스의 싱싱한 해산물들을 주방으로 나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푸짐한 양, 신선한 해산물 그리고 저렴한 가격. 모처럼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수산시장처럼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까지 더해 생동감 넘치는 진짜 그라나다를 만난 것만 같았다.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