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열의 '음식잡설(雜說)'] (8) 복날이 지났다
신상열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8-24 15:13:06
중요한 건 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개고기가 사라진 자리를 다른 보양식이 빠르게 채웠다. 흑염소다. 언제부터인가 동네마다 흑염소집이 생겼다. 흑염소탕, 흑염소전골, 흑염소수육, 흑염소진액. 보신탕이라는 간판이 사라진 자리에 흑염소라는 간판이 들어섰다. 사진 = 쿡앤셰프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복날이 지났다.
예전 같으면 삼계탕이니 보신탕이니 하며 뭘 먹어야 이 여름을 잘 넘길까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몸’보신보다 ‘정신’보신, 즉 정신 수양이 더 필요한 나이가 된 것 같다. 나이가 드니 몸이 아픈 것보다, 정신이 혼란스러운 것이 더 힘들다.
개고기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가끔 손질된 개를 사다가 보신탕을 끓였다.
나는 또래보다 체구가 작았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많이 먹어라. 이거 먹으면 힘 난다.” 개고기인 것을 숨기고 먹이기는 했다. 어린 기억인데, 동생은 눈치를 채고 먹지 않았다. 아무렴, 고기는 부드러웠다.
내가 먹었던 것은 보신탕이 아니라 아버지가 믿었던 몸보신이고, 그 시대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넬 수 있었던 사랑의 한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음식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거나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버지와 닮았다.
세상이 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개고기는 국제적인 논란의 대상이 됐다. 외국인의 시선을 의식해 보신탕집은 큰길에서 골목 안으로 들어갔고, 보신탕이라는 이름 대신 영양탕, 사철탕 같은 이름들이 등장했다.
음식은 그대로인데 이름이 달라졌다. 어제까지 몸을 보하는 음식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감춰야 할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개식용종식법」이 제정됐다. 2027년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하고 도살하고 유통·판매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식문화 하나가 그렇게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개고기를 안 먹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잘못된 개념은 바로잡고 가자. 문화의 반대말을 미개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문명과 문화라는 말을 비슷하게 사용한다.
문명화되었다고 하면 발전한 사회를 떠올리고, 문화적이라고 하면 세련되고 교양 있는 모습을 생각한다. 반대로 그 반대편에는 야만, 미개, 후진 같은 단어를 너무 쉽게 세워놓는다.
문화는 어느 민족과 공동체가 오랜 시간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생활의 방식이다.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장례를 치르는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동물을 가족으로 여기고 어떤 동물을 식량으로 생각하는지까지도 문화의 일부다.
그래서 문화의 반대편에 미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화와 미개를 하나의 직선 위에 놓고, 미개 → 야만 → 문화 → 문명이라는 식으로 인간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근대 서구가 만들어낸 오래된 관념에 가깝다.
한때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문명이라고 불렀고 자신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인이라 불렀다. 그러나 인류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다름이 곧 뒤떨어짐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바라본 문화도 그런 것이었다.
아마존의 원주민 사회를 연구했던 그는 소위 문명사회와 원시사회를 단순히 우열의 관계로 놓는 시선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와 다르게 먹고, 다르게 가족을 이루고, 다르게 자연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으로서 우리보다 덜 발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왜 그런 방식을 선택했고 그것이 어떤 관계와 질서 속에서 유지되어 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개고기의 문제도 조금 복잡해진다.
나는 이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 식용을 다시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수성이 달라졌고 사회가 새로운 합의를 만들었다면 그것 역시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어제 그것을 먹었던 사람들의 삶까지 미개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한 시대의 문화를 오늘의 잣대로 평가하는 일에는 조금의 겸손이 필요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개고기가 사라진 자리를 다른 보양식이 빠르게 채웠다. 흑염소다.
언제부터인가 동네마다 흑염소집이 생겼다. 흑염소탕, 흑염소전골, 흑염소수육, 흑염소진액.
보신탕이라는 간판이 사라진 자리에 흑염소라는 간판이 들어섰다.
사람들이 몰리니 가격이 올랐다. 가격이 오르니 농가가 늘었다. 돈이 된다고 하니 사육 마릿수도 늘었다. 그리고 수입산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2020년 1,161톤이던 염소고기 수입량은 2024년 8,142톤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1만 톤을 넘어섰다. 결국 공급이 넘쳤다. 2024년 한때 50kg 거세 흑염소 한 마리에 100만원가량 하던 산지 가격이 2026년에는 37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불과 2년 만에 60% 넘게 무너졌다. 농가에서는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참 인간답다는 생각이 든다.
잘 팔린다고 하면 너도나도 만들고, 가격이 오른다고 하면 너도나도 키우고,
돈이 된다고 하면 멈출 때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넘칠 때까지 간다.
사람의 손을 거치면 욕망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개고기보다 오히려 이 대목에서 문명과 야만을 생각하게 된다.
개를 먹는 사람은 야만인이고 개를 먹지 않는 사람은 문명인이라는 식의 구분은 너무 쉽다.
그렇다면 가격이 오른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으로 동물을 사육하고, 값싼 고기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공급과잉으로 가격을 무너뜨리고, 결국 농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우리의 시장은 문명적인가.
반대로 어느 산골에서 자신이 기른 동물 한 마리를 잡아 가족과 나누어 먹었던 옛사람은 미개한가.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것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욕망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깨끗하게 먹는다.
냉장고가 있고, 식품위생법이 있고, 원산지 표시가 있고, 동물복지를 이야기한다.
분명 문명은 발전했다.
그런데 욕망도 함께 발전했다.
더 싸게, 더 많이, 더 빠르게.
수요가 생기면 생산하고, 돈이 되면 몰려들고, 유행하면 넘치도록 만들어낸다.
그러고는 가격이 무너지면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 떠난다.
문명은 발전했는데 인간의 욕망까지 문명화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문화와 문명을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우리가 살아온 방식에 가깝고, 문명은 우리가 만들어낸 제도와 기술과 질서에 가깝다.
그리고 야만은 어쩌면 그 반대편에 고정되어 있는 어떤 민족이나 시대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할 때 언제든 다시 나타나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나는 아버지의 보신탕을 야만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였고 하나의 시대였다.
그 문화가 이제 사라지는 것 또한 시대의 변화다.
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인다.
다만 사라지는 문화를 향해 돌을 던지면서 그 자리를 더 거대한 소비와 욕망으로 채우고도 스스로를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문명이란 과거를 비웃는 능력이 아니라 과거를 이해하면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능력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문화란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것도,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화는 태어나고, 변하고, 때로는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다.
복날이 지났다. 올해는 몸보신 대신 조금 늦은 정신수양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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