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왕실의 그릇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30 18:25:34

세종부터 정조까지, 도자기로 본 조선의 운영 방식 [사진=리움미술관 /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白磁 靑畵梅竹文 立壺)]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조선 왕실의 식탁을 논할 때 음식의 구성과 조리법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그 음식을 담아낸 기명, 특히 도자기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왕실 도자기는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통제한 생산물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려 말 왕실에서 사용된 주요 기명은 청자였다. 상감기법을 통해 문양을 표현한 청자는 장식성과 완성도가 높은 기물로, 왕실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된 이후 이러한 청자 중심의 체계는 점차 변화한다. 조선 전기에는 분청사기와 초기 백자가 함께 사용되며, 도자기 양식은 과도기적 양상을 보인다. 이는 고려의 기술과 양식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왕조의 기준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사진=간송미술관 / 백자 사옹원인 (白磁 司饔院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세종 시기에 나타난다. 세종 대에는 왕실 음식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던 사옹원을 중심으로 도자기 생산 체계가 정비되기 시작한다. 사옹원 산하에는 분원이 설치되어 왕실에서 사용할 기명을 별도로 제작하였으며, 이를 통해 왕실 도자기는 일반 생산과 분리된 구조 속에서 공급되었다. 이는 왕실 기명이 개별 장인의 생산물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체계 안에서 제작된 기물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왕실 도자기의 제작 과정은 단순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기록에서는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는 재료가 엄격히 관리되었으며, 재료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도자기가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라 국가 자원의 일부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제작 과정에 참여한 장인과 인력에 대한 관리 역시 병행되었다. 제작에 동원된 인력의 부담과 상황을 고려하여 일정한 배려가 이루어진 사례도 확인되는데, 이는 통제 중심의 구조 속에서도 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 방식이 함께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에 이르면 왕실 도자기는 백자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백자는 장식이 절제된 형태를 특징으로 하며, 조선 사회의 가치관과 맞물려 왕실 기명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백자 역시 단일한 양식으로 고정된 것은 아니었다. 16세기에는 청화백자가 제작되었으며, 17세기에는 철화백자가 증가하는 등 재료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양식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미감의 변화라기보다, 당시 재료 수급과 제작 환경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왕은 이러한 도자기의 제작과 사용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 영조는 장식성이 강한 청화백자의 제작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는 사치 풍조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도자기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과 윤리의 범주 안에서 관리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조 또한 검소한 기명의 사용을 강조하였으며, 수라를 들 때 수수한 그릇을 사용하는 모습을 통해 이를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과는 별개로, 왕실 의례와 연회에서는 여전히 장식성이 강한 도자기가 사용되었다. 채화갑

[사진=국립중앙박물관 /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粉靑沙器 剝地鐵彩牡丹文 扁甁)]

번과 같은 기물은 왕실 행사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이는 의례와 위계가 요구하는 별도의 기준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정조 연간에는 경제적 여건의 변화와 상품 유통의 확대 속에서 장식적인 도자기의 제작이 계속 이루어졌으며, 이는 당시 사회 전반의 소비 양식과도 연결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조선 왕실의 도자기는 단순한 생활 기물이 아니라, 생산과 재료 관리, 그리고 사용 기준이 모두 국가 체계 안에서 운영된 대상이었다. 도자기의 형태와 재질은 장식성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사용 목적과 상황에 따라 선택되었으며, 제작 과정에서는 재료 관리와 인력 운영이 함께 이루어졌다. 또한 왕의 정책과 실제 왕실 운영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도자기가 단일한 기준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왕실의 식탁 위에 놓인 그릇은 음식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이다. 그릇의 형태와 제작 방식, 그리고 사용 방식에 담긴 요소들은 조선 왕실이 물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기준으로 일상을 운영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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