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티켓 EATIQUETTE] 빈 커피하우스, 얼마나 머물러도 될까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9-28 15:01:54

커피 한 잔으로 누리는 시간과 공간, 유네스코가 인정한 오래된 도시문화
신문을 읽고 대화하며 오래 머무는 사람들…함께 공간을 쓰는 법도 예절
출처 : AI 생성이미지

[Cook&Chef = 정수연 기자] 빈의 오래된 커피하우스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 처음에는 메뉴보다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창가에서는 식어가는 커피 옆에 신문을 펼친 손님이 한 장씩 면을 넘기고 있고, 몇 자리 건너에서는 두 사람이 제법 긴 대화를 이어간다. 책 한 권을 앞에 둔 채 혼자 오후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커피잔은 이미 비어가는데도 신문을 넘기고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는 시간은 그대로 이어진다.

처음 이곳을 찾았다면 한 번쯤 생각하게 될 것이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대체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은 ‘몇 시간’이라는 숫자보다 빈 사람들이 커피하우스를 이용해온 방식 속에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과 함께 신문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때로는 혼자 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생활은 여러 세대를 지나 빈이라는 도시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2011년 오스트리아 유네스코위원회는 ‘빈 커피하우스 문화(Wiener Kaffeehauskultur)’를 국가무형문화유산 목록의 ‘사회적 관습’으로 등재했다.


빈 커피하우스 문화, 무엇이 문화유산인가

문화유산으로 인정된 중심에는 빈 사람들이 커피하우스를 일상의 일부로 사용해온 생활방식이 있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여러 신문을 읽고, 업무를 보거나 글을 쓰고, 혼자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직원은 그 시간을 서비스하고, 단골은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찾으며 자신만의 생활 리듬을 만든다. 여러 손님은 같은 공간과 신문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공간과 사람, 서비스와 행동이 오랜 세월 맞물리며 하나의 도시문화가 형성됐다.

작은 대리석 테이블과 토네트 의자, 벽을 따라 놓인 로게 좌석과 신문 테이블도 공식 등재 자료에 빈 커피하우스의 전형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이 물건들의 의미는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왔는지를 함께 볼 때 선명해진다. 혼자 신문을 펼칠 자리와 오래 대화를 나눌 좌석, 머무는 동안 읽을 거리와 손님에게 시간을 맡겨주는 서비스가 한 공간 안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2011년 등재를 지지한 문화연구자 미하엘 뢰스너는 커피하우스를 18세기부터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도시생활이 겹쳐온 공간으로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 추천서에서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도 집처럼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혼자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머물 수도 있고, 친구를 만나면서 도시의 소식과 신문을 접할 수도 있었다.

당시 개인이 집 안에 넓은 응접실이나 서재, 여러 종류의 신문과 서비스를 갖추기 어려웠던 시대에 커피하우스는 커피 한 잔의 가격으로 이런 공간과 기능을 함께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누군가에게는 약속 장소였고, 누군가에게는 독서실이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작업실이나 혼자 오후를 보내는 자리가 됐을 것이다.

사람들은 세대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곳을 사용하면서도 커피하우스를 자기 일상의 일부로 삼는 생활을 이어왔다. 2011년 오스트리아 유네스코위원회가 중요하게 본 것도 이 문화가 과거의 기록 속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빈의 생활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그렇다면 커피를 파는 장소는 언제부터 이런 생활공간이 되어갔을까.

빈 커피하우스의 시작은 17세기 후반으로 올라간다. 전승 속에서는 게오르크 프란츠 콜시츠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683년 오스만 제국의 제2차 빈 포위가 끝난 뒤 남겨진 커피 자루를 이용해 커피하우스를 열었다는 이야기다. 기록에서 확인되는 핵심 인물은 이스탄불 출신의 아르메니아인 요하네스 디오다토다. 그는 1685년 황제 레오폴트 1세의 허가를 받아 빈에서 커피를 판매했다.

오늘날의 커피하우스 문화는 그 뒤 여러 요소가 하나씩 더해지면서 형성됐다. 특히 1720년에는 빈 중심부의 크라머셰스 커피하우스가 손님을 위해 신문을 비치했고, 이후 여러 신문과 잡지를 갖춘 커피하우스가 늘어났다. 초기부터 카드게임과 당구 같은 활동도 함께 이루어졌다.

신문은 손님이 커피를 마신 뒤에도 자리에 머물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여러 면의 기사를 읽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즐기려면 자연히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커피하우스는 그렇게 한 잔을 마시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조금씩 넓어졌다.

19세기 빈의 도시 성장도 이 문화에 힘을 보탰다. 당시 많은 시민은 작고 붐비는 주거공간에서 생활했다. 넓고 따뜻한 커피하우스에 들어오면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여러 신문을 읽을 수도 있었으며, 일하거나 혼자 오후를 보낼 자리도 생겼다. 빈 시가 당시 커피하우스를 시민들의 ‘확장된 거실’이나 두 번째 집으로 설명하는 이유다.

이곳으로 작가와 예술가, 언론인과 정치인도 모여들었다. 19세기 말 카페 그린슈타이들에는 아르투어 슈니츨러와 후고 폰 호프만스탈 같은 작가들이 드나들었고, 이후 문인들의 주요 거점은 카페 첸트랄과 헤렌호프로 옮겨갔다. 커피하우스가 작업실과 사교장의 역할을 함께 맡으면서 ‘커피하우스 문학’이라는 표현까지 생겨났다.

유명 작가들의 아지트는 이 문화의 한 장면이었다. 커피하우스를 빈의 생활공간으로 만든 것은 매일 신문을 읽으러 오는 단골, 친구와 약속한 시민,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카드게임을 즐기는 손님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사람들의 반복된 사용이었다.


한 잔으로 누리는 시간과 공간

이제 처음 보았던 커피하우스의 풍경도 조금 다르게 읽힌다.

오스트리아 유네스코위원회는 빈 커피하우스를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고 계산서에는 커피가 올라가는 곳’이라는 취지로 설명한다. 커피 한 잔의 가격에는 음료와 함께 자리를 사용할 시간, 신문을 읽을 기회, 사람을 만날 장소와 서비스를 누리는 경험까지 겹쳐 있는 셈이다.

이 오래된 성격은 현재의 업종 설명에도 남아 있다. 빈 상공회의소는 ‘커피하우스’를 테이블과 로게형 좌석, 여러 종류의 신문과 잡지, 게임을 위한 공간 등을 갖추고 손님에게 긴 체류를 권하는 업종으로 설명한다. 빠르게 커피를 마시는 에스프레소 업종과는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부터 달라진다.

그래서 빈의 전통적인 커피하우스에서 머무는 시간을 정하는 기준은 몇 시간이라는 숫자보다 그날의 혼잡도와 공간의 상황에 있다. 한 잔을 주문한 뒤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며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이곳의 오래된 이용법에 속한다.

이 관습은 오늘날의 커피하우스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현지 취재에서 카페 란트만은 손님의 평균 체류시간을 약 1시간 30분으로 설명했고, 여러 시간을 보내는 손님도 있다고 밝혔다. 카페 슈페를에는 반나절을 보내며 중간에 친구나 사업 상대를 만나고 다시 혼자 책을 읽거나 일을 이어가는 손님도 있었다. 카페 훔멜에서는 혼자 온 손님이 붐비는 시간에 넓은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을 경우 작은 자리로 옮겨 계속 머물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빈 커피하우스의 예절도 드러난다. 긴 시간을 누리는 만큼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감각이 따라온다. 매장이 붐비기 시작하면 자신이 사용하는 자리의 크기를 살피고, 여러 사람이 함께 보는 신문은 읽은 뒤 다른 손님도 이용할 수 있게 돌려놓는다. 노트북처럼 오늘날 새롭게 들어온 이용방식은 각 커피하우스의 운영방침에 맞춰 사용하면 된다.


물 한 잔과 신문, 오래 머물게 하는 공간

처음 테이블 위에 놓였던 물 한 잔과 신문도 이 문화를 알고 나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커피와 함께 물을 내는 관습은 빈 커피하우스의 오래된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신문은 더욱 직접적으로 ‘머무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1720년부터 기록에 등장한 손님용 신문은 이후 빈 커피하우스의 대표적인 풍경이 되었고, 오늘날 공식 무형문화유산 설명에도 신문 테이블이 전형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작은 대리석 테이블과 토네트 의자, 벽을 따라 마련된 로게 좌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혼자 신문을 펼칠 자리가 생기고, 둘이나 몇 사람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자리도 마련된다.

빈 커피하우스의 물건들은 장식보다 사용법에서 의미가 드러난다. 신문은 읽을 시간을 만들고, 작은 테이블은 혼자 머물 자리를 마련하며, 직원의 서비스는 손님이 그 시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오늘의 빈에도 이어지는 문화

지난 몇 세기 동안 커피하우스의 모습은 시대에 맞춰 계속 달라졌다. 전쟁과 사회 변화가 이용자와 공간의 풍경을 바꾸었고, 20세기 중반에는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바가 새로운 도시의 속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종이신문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어떤 손님은 노트북으로 일을 한다. 커피하우스마다 현대적인 이용법을 받아들이는 정도도 서로 다르다. 그 사이에서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읽고, 일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왔다.

세대를 지나며 달라진 것은 도구와 생활의 모습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매개로 자리를 얻고 자기 시간을 보내는 공간의 성격은 오늘날의 빈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빈 커피하우스에서는 얼마나 오래 머물러도 될까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커피잔은 이미 비어 있고, 신문을 읽던 사람은 다음 면을 넘긴다. 창가에서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으며, 혼자 온 손님은 책의 다음 장을 펼쳤다. 이제 그 풍경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커피의 양보다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빈의 전통적인 커피하우스에서는 한 잔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연스럽다. 실제 머무는 시간은 그날의 혼잡도와 좌석 상황, 각 업장의 운영방식에 맞춰 조절하면 된다. 자신의 시간을 누리면서 다른 사람도 같은 공간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살피는 것이 이곳의 예절과 맞닿아 있다.

커피를 주문하고 신문을 읽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혼자 오후를 보낸다. 커피잔이 비어진 뒤에도 한동안 자기 시간을 이어간다. 빈에서는 이런 평범한 행동이 몇 세대에 걸쳐 반복되며 하나의 도시문화가 되었다.

처음에는 ‘한 잔을 마시고 이렇게 오래 있어도 될까’ 싶었던 풍경이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빈 커피하우스에서 이어져온 것은 한 잔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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