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상차림은 메뉴마다 다른 그릇

허지은 기자

heoxjieun@gmail.com | 2026-09-18 15:01:28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 변화를 음식으로 표현
그릇은 음식을 담는 액자...또 하나의 식재료

[Cook&Chef = 허지은 기자] 일본의 식탁을 처음 보면 음식보다 먼저 그릇이 눈에 들어온다. 밥을 담은 작은 그릇, 국이 담긴 칠기 그릇, 생선구이를 올린 기다란 접시, 조림을 담은 깊은 사발, 채소무침이 담긴 손바닥만 한 접시까지. 왜 일본에서는 음식마다 다른 그릇을 쓰는 걸까. 단순히 식기가 예쁘거나 반찬 가짓수가 많아서만은 아니다.

일즙삼채(一汁三菜), 그릇의 개수부터 다르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와쇼쿠(和食)의 기본 식사 형태로 '일즙삼채(一汁三菜)'를 소개한다. 밥과 국에 주찬 하나, 부찬 두 가지를 곁들이는 구성이다. 이 한 끼에는 밥공기와 국그릇뿐 아니라 크고 작은 평접시, 작은 사발, 뚜껑 있는 그릇까지 음식마다 다른 식기가 동원된다.

이 식문화는 2013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내세운 근거는 지역마다 다양한 식재료를 살리는 조리법이 발달했다는 점과 일즙삼채를 기본으로 한 이상적인 영양 균형이었다. 여기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 변화를 음식으로 표현한다는 점도 함께 꼽혔다. 일본의 식탁에서 그릇은 음식을 나누고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식재료에 가깝다.

그릇은 음식을 담은 액자
일본에서는 한 상의 식기가 똑같은 디자인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서로 다른 형태와 재질의 그릇을 의도적으로 조합한다. 기본이 되는 무늬 없는 그릇부터 시작해 점차 소재와 무늬, 장식을 더해가며 변화를 준다.

이는 플레이팅에서 음식과 그릇의 색·형태를 조화시키고, 여백을 남기며 입체적으로 배치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둥근 그릇과 사각 그릇을 나무 쟁반이나 매트 위에 함께 놓고 색 조합까지 고려하면 시각적으로 풍성한 식사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그릇을 음식의 배경이 아니라 일부로 보게 되는 지점이다.

계절을 담은 그릇

일본의 식기 브랜드 MIWA's Tableware에서 판매하고 있는 마메자라 세트이다. 사진=MIWA's Tableware

와쇼쿠에서 계절은 단순히 제철 식재료를 먹는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봄에는 꽃을 연상시키는 문양을, 여름에는 유리나 시원한 색감의 식기를, 가을에는 단풍이나 열매를 떠올리게 하는 그릇을 쓰는 식이다. 식기와 담음새를 통해 계절의 변화와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까지 함께 전달하는 셈이다. 식재료와 그릇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하나의 계절이 완성된다.

손바닥만 한 그릇, 마메자라

이런 특징을 가장 작은 형태로 보여주는 식기가 '마메자라(豆皿)'다. 말 그대로 '콩 접시', 지름 6~10cm 안팎의 아주 작은 접시를 가리킨다. 소금이나 조미료를 담는 반찬 접시보다도 작은 크기로, 절임이나 곁들임 음식은 물론 디저트와 화과자를 담는 데도 두루 쓰인다.

amabro에서 판매하는 사용법이 다양한 작은 접시들이다. 사진=amabro

마메자라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작아서가 아니다. 동그랗거나 네모나고, 꽃 모양을 닮거나 물결치는 가장자리를 가진 접시까지 형태와 문양이 저마다 다르다. 크기가 작으니 여러 개를 한 상에 늘어놓을 수 있고 각각에 다른 음식을 조금씩 담을 수 있다. 많이 담는 대신 조금씩 다양하게 담고 그 차이를 그릇으로 드러내는 것. 일본 식탁의 미감이 손바닥만 한 접시 하나에 압축돼 있다.

요즘 일본인의 식탁은
그렇다고 오늘날 일본 가정에서 매 끼니 이런 상차림을 지키는 건 아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단신 세대와 맞벌이 세대의 증가 등 사회 여건의 변화와 함께 식생활의 외부화·간편화가 진행되고 있다. 식탁도 조금씩 단순해졌다. 큰 접시 하나에 주식과 반찬을 함께 담는 ‘원플레이트’ 식사는 1인 가구를 위한 식생활 정보에서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반찬 두세 가지를 각각 다른 그릇에 담던 방식 대신 접시 하나에 밥과 반찬을 함께 담아 설거짓거리를 줄이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하사미야키(波佐見焼)는 일본 나가사키현 하사미마을(波佐見町)에서 40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가며 만드는 실용적인 도자기이다. 사진=edinburghmercantile

다만 그릇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늬 없이 단순하면서도 전자레인지와 식기세척기에 바로 쓸 수 있는 하사미야키(波佐見焼) 그릇을 파는 브랜드는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형식은 간소해졌지만, 그릇이 음식의 일부라는 감각은 여전히 일본의 식탁 위에 남아 있다. 오늘 우리의 저녁 식탁에 오른 그릇을 한 번 들여다보면, 그 안에도 저마다의 계절과 취향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Cook&Chef / 허지은 기자 heoxjie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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