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진열대까지…바르셀로나의 마트 철학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9-15 15:00:45
카탈루냐 숙성 소시지 '푸엣'의 매력
[Cook&Chef = 조소현 기자]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는 손꼽히는 관광도시이다. 카탈루냐 사람들의 약 32%는 스페인어 보다 카탈루냐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그만의 역사와 건축, 생활문화가 뚜렷해 특유의 지역색을 지닌 곳이다.
카탈루냐는 식료품점도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다. 스페인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메르카도나와 달리, ‘아메틀러 오리진(Ametller Origen, 아메예르 오리겐)’은 스페인 내에서 오직 카탈루냐에서만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식료품 체인이다.
아메틀러 오리진은 1830년부터 8대째 농사를 이어온 아메틀러 가문에서 출발했다. 2001년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는 카탈루냐와 안도라에 14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맛은 우리의 것(El gust és nostre)’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자연에서 만들어진 식재료 본연의 맛에 가까운 식품을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카탈루냐 물류 기지에서 신선하게 배달할 수 있는 거리안에서만 매장을 운영하는 '지역 밀착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유통 뿐 아니라, 재배와 가공도 직접 해낸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1,800헥타르가 넘는 자체 농지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며 친환경과 유기농을 추구한다. 자체 가공시설인 ‘오브라도르(obrador)’에서는 토르티야와 수프, 크림, 육수, 요구르트, 신선 치즈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매장에서 판매한다.
한마디로, 식료품의 시작과 끝을 자급자족하는 셈이다.
매장에 들어가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반질반질한 과일과 채소였다. 토마토와 오렌지, 사과 등이 색색으로 진열돼 있었다. 신선하고 윤기나는 식재료를 매장의 중심에 두고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성품 진열대에는 색과 글씨를 절제해 차분한 디자인이 많았다. 화려한 마케팅과 저렴한 가격보다 제품의 품질과 재료를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한 듯 보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며칠을 지낼 예정이라 필요한 식재료들을 샀다. '메르카도나'보다 가격대가 높았지만 제품들을 직접 살펴보니 그 차이가 어느 정도 납득됐다.
전반적으로 제품의 퀄리티가 좋지만 아메틀러 오리진을 방문한 여행객들에게 특히 추천할 것은 '푸엣(fuet)'이다.
푸엣은 직역하자면 '채찍'이라는 뜻으로,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전통 건조·숙성 소시지이다. 스페인 전역에서 즐기는 살치촌과 비슷하지만 푸엣은 더 가늘고 반죽처럼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숙성 과정에서 생긴 식용 곰팡이가 표면을 하얗게 덮고 있으며, 따로 굽거나 삶을 필요 없이 그대로 와인이나 맥주와 곁들이거나 타파스로 즐긴다.
가지런히 썰어 접시에 담아내는 것이 정석이지만, 현지인 친구가 한 손에 들고 그대로 우걱우걱 뜯어 먹는 게 맛있다고 알려줘 따라 해봤다.
한입 가득 베어 물으니 돼지고기의 육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사이사이에 박힌 기름이 고소한 풍미를 더하고, 적당한 지방 덕분에 결결이 살아있는 살코기도 말랑 촉촉했다. 얼핏 육포와 비슷해 보이지만 독창적인 질감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푸엣을 먹어봤지만, 아메틀러 오리진에서 먹은 푸엣이 확연히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여행하며 유명한 음식과 근사한 요리를 많이 맛봤지만, 다시 스페인에 가고싶은 생각이 들게 한 음식은 마트에서 사 먹었던 푸엣이었다. 좋은 식재료의 기준은 거창할 필요 없다. 신선한 식재료를 지역에서 생산하고, 가까운 곳에서 소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메틀러 오리진이 말하는 ‘Origen’, 즉 ‘기원’에 조금 더 가까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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