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는 한국에 와서 한식을 듣지 않았다 – 질문을 차단한 '미식 권력'의 민낯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0-29 19:44:04
[Cook&Chef = 이경엽 기자] 오늘, 나는 질문 하나를 하지 못한 기자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점심시간, 페란 아드리아는 대기업 매체와 마주 앉아 긴 인터뷰를 이어갔다. 나는 같은 공간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밖에서 대기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다가가자 통역은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지금은 쉬셔야 합니다. 나중에.”
그러나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오후 강연 직후 다시 시도했을 때, 통역은 이번엔 이렇게 말했다. “셰프님이 화가 나셨습니다. 더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마당 너머로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배제된 것이 아니라, ‘한식의 목소리 자체’가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페란 아드리아는 세계 미식계를 바꾼 인물로 추앙받는다. 그는 조리법을 과학으로 전환했고, ‘창의성’을 요리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그날 현장에서 드러난 것은 창의성이 아니라 창의성을 통제하는 권력의 실체였다.
대기업 매체의 질문에는 길고 진지한 답을 주었지만, 미식 전문 매체의 질문은 ‘휴식’이라는 이유로 차단되었다.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질문자의 소속이 그 기준을 갈랐다. 그의 창의성은 모든 질문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질문만을 허락했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셰프님은 ‘창의성은 기존 시스템의 해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철학이 전 세계에서 기술 모방 중심의 ‘형식적 창의성’을 확산시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한식이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창의성에는 어떤 기준과 책임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AI가 음식을 설계하고 로봇이 요리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셰프님은 AI가 만든 음식도 ‘요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요리의 본질은 인간의 감각과 철학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 질문들은 공격이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 요리계가 직면한 핵심 주제다. 그러나 그는 이 질문이 던져질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창의성을 말하는 자가 창의성의 본질인 ‘대화와 질문’을 봉쇄한 것이다.
페란 아드리아에게 한식은 ‘영감의 원천’으로서만 존재했다. 그는 한식의 발효와 조리 체계를 칭찬했지만, 그것은 ‘존중’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서의 평가였다. 한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한국 요리사가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그의 담론에 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는 한식을 말했지만, 한식을 듣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미식 권력의 폭력성’이다. 질문을 통제하는 자가 담론을 통제하고, 담론을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권력은 기술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떤 목소리를 들을 것인지, 어떤 목소리를 지울 것인지 결정하는 권리에서 나온다.
문화적 식민주의는 더 이상 무력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침묵’이라는 형태로 온다.
그는 한국의 음식을 자신의 시스템 안에 수용하려 했지만, 그 시스템 밖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배제했다. 한식은 그의 창의성을 빛내는 배경음악으로서는 환영받았지만, 스스로 발언하려는 순간, 그 목소리는 ‘나중에’라는 말로 지워졌다.
나는 결국 질문하지 못한 기자로 그 자리에 남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포기’였던 것은 아니다. 그날의 침묵은 질문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질문할 수 있는 자리가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기자의 무능이라 말한다면, 나는 그 비판을 피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왜 질문할 수 있는 자리는 오직 몇몇에게만 열려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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