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셰프 리포트] 이반 랄스톤, ‘재료’로 도시를 해석하는 셰프
허세인 기자
cnc02@hnf.or.kr | 2026-05-09 16:30:13
빠른 성공의 대가, 3개월마다 메뉴를 바꾸는 이유가 되다
사진 = Ivan Ralston 인스타그램
[Cook&Chef = 허세인 기자] 상파울루의 투주(Tuju)는 도시 자체를 해석하는 하나의 실험실에 가깝다. 이곳을 이끄는 셰프 이반 랄스톤은 브라질 미식계에서 ‘재료 중심의 사고’를 가장 극단까지 밀어붙인 인물로 꼽힌다. 2026년, 투주는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하며 그 집요한 접근이 세계적인 평가로 이어졌음을 증명했다.
도시를 요리하는 방식
이반 랄스톤의 요리는 특정 국가의 전통을 재현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의 출발점은 상파울루라는 도시 그 자체다. 상파울루는 이탈리아, 일본, 아랍, 포르투갈 등 다양한 이민 문화가 뒤섞인 도시다.
랄스톤의 요리는 이러한 도시의 복합적인 구조를 닮아있다. 프랑스식 조리 기술, 일본식 재료 관리, 스페인식 서비스 방식 등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한데 섞여 있지만, 접시에 담기는 결과물은 어디까지나 브라질의 재료와 감각에 기반한다.
이 같은 접근은 그의 이력과도 관계있다. 그는 상파울루에 레스토랑 체인을 설립한 집안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외식업 환경을 접했고, 이후 스페인의 엘 셀러 데 칸 로카와 무가리츠, 일본 도쿄의 류긴 등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익힌 기술과 시스템은 그의 요리에 축적됐지만, 그는 이를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상파울루라는 도시의 맥락 안에서 다시 풀어내는 쪽을 택했다.
그의 요리는 화려한 설명보다 구조와 균형에 집중한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재료가 가진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태도는 레스토랑 공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노출 콘크리트 기반의 브루탈리즘 건축처럼, 요리 역시 직선적이고 절제된 형태를 유지한다.
‘계절’을 다시 정의하다
투주의 특징 중 하나는 메뉴가 3개월마다 완전히 바뀐다는 점이다. 단순한 계절 변화에 따른 개편이 아니다.
랄스톤은 2년간의 연구를 통해 상파울루의 계절성이 ‘기온’이 아닌 ‘강우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토양의 수분 함량이 식재료의 맛과 질감, 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레스토랑의 메뉴와 이름은 비, 습도, 강풍, 가뭄과 같은 기후 조건을 기준으로 구성된다. 이는 자연의 변화를 요리의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다.
재료 선택 역시 엄격하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직접 시장을 찾아 생선을 고르고, 지역 농가와 협력해 식재료를 공급받는다. 또한 200종 이상의 식용 식물을 재배하는 야외 정원을 운영하며, 가능한 한 지역 생태계 안에서 요리를 완성하려 한다.
타마린드 소스를 곁들인 산타카타리나산 눈게살 만두. 사진 = Ivan Ralston 인스타그램
재료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
랄스톤의 요리는 재료를 사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재료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토마토를 예로 들면 껍질은 칩으로, 과육은 타르타르로, 내부 조직은 또 다른 재료와 결합해 전혀 다른 질감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해초, 수박 아이스 같은 요소가 더해지며 하나의 요리가 완성된다.
또 다른 요리에서는 숭어알의 질감을 분석해 이를 라비올리 형태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이해하고 그 가능성을 확장하는 접근이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 기존 재료를 끝까지 탐구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과거의 조리 기법 역시 버리지 않는다. 한때 아방가르드로 불렸지만 지금은 클래식이 된 기술을 현재의 맥락 안에서 다시 활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빠른 성공이 남긴 균열
지금의 방식은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다. 투주는 개업 몇 달 만에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며 빠르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 성공은 오히려 레스토랑 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업을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무리한 결정이 이어졌고, 수익성은 떨어졌다. 일정 기간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겪었다.
이 경험은 랄스톤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보여주기 위한 요리’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재 투주가 유지하는 간결한 메뉴 구성, 명확한 타깃 설정, 그리고 고객 경험 중심의 운영 방식은 모두 이 시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결과다.
사진 = Ivan Ralston 인스타그램
요리 그 이상의 구조
투주는 레스토랑을 넘어 하나의 연구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레스토랑 내부에는 연구창작센터가 운영되며, 셰프와 연구자, 생산자들이 함께 식재료와 음식 문화를 탐구한다.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한 메뉴 개발, 빗물 관개 시스템, 폐기물 퇴비화 구조 등도 레스토랑 운영의 중요한 축이다.
또한 5,000병 이상의 와인을 보유한 저장고에서 운영하는 페어링 프로그램을 통해, 음식과 음료의 관계까지 하나의 구조로 설계한다. 이 모든 요소는 요리라는 결과물을 넘어,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환경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경험을 지향한다.
3스타 이후에도 남은 질문
이반 랄스톤과 투주의 미쉐린 3스타 획득은 브라질 미식이 세계 중심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그의 요리는 여전히 완결된 형태라기보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에 가깝다. 3개월마다 메뉴를 바꾸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의 요리는 하나의 답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탐구의 기록에 가깝다. 그리고 그 탐구는 지금도 상파울루라는 도시, 그리고 그 안의 재료들로부터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Cook&Chef / 허세인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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