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quor / 전통주> 전통주의 역사, "술은 마시는 것이 아닌 먹는 것"
나이순
buda2016@naver.com | 2020-07-27 0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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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추억이 된 밀주단속은 88올림픽을 치르고, 우리 술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논하면서 1995년 밀주단속법이 폐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1909년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던 가양주(家醸酒)가 다시금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역마다 집안마다 다양하게 빚던 가양주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가운 일이다.고구려 건국담에 술에 얽힌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 술의 역사는 3000년 넘게 우리네 삶과 함께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좋은 전통인 가양주문화는 일제에 의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일제의 의도는 뻔했다. 그들은 세금수탈을 목적으로 가양주문화가 자리에 일본의 기술과 양조제법을 이식시키는 정책을 폈다. 양조장을 세워 주세를 받으며 술이 필요하면 사서 마시도록 했던 것이다. 결국 가양주문화는 밀주단속이라는 그럴 듯한 명목으로 통제되면서 몇몇 사람에 의해 남모르게 명맥을 유지했을 뿐 대부분이 사라져버렸다.
쌀 문화권인 우리 민족에게 쌀을 빚은 술들이 발달되어 전승된 것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세계 각국의 대표 술을 살펴보면 대부분 그 나라 기후와 풍토에 적합하다. 그리고 가장 많이 생산되는 농산물을 술의 주원료로 삼는다. 영국의 위스키나 독일의 맥주는 보리와 홉을 주로 사용하고, 프랑스의 와인과 브랜디의 경우는 포도를 주원료로 한다. 데킬라는 멕시코의 민속술인데, 주원료는 선인장의 일종인 용설란(龍舌蘭)이다. 이들 모두 그 나라의 대표적인 작물이거나 자연식물이다. 우리나라는 5천 년 동안 농경사회가 유지된 농경국가다. 때문에 쌀을 술의 주원료로 삼은 건 당연한 일이다.
먼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를 살펴보면 대무신왕(大武神王) 11년(AD28년)에 ‘지주(旨酒)’라고 하여 ‘맛 좋은 술’이라는 뜻을 가진 술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미온(美醞)’이라는 술 이름도 보인다. 위지(巍志)의 고구려전에서는 우리나라 술에 얽힌 신화를 소개하면서 제조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다고 전한다. 또한 지주를 빚어 한나라의 요동 태수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보아 술 빚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고구려 여인이 빚은 곡아주(曲阿酒)가 강소성(江蘇省) 일대에서 명주로 알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일본의 고사기(古史記) 응신조(應神條)에는 양주법을 아는 명인 인번(仁番) 등이 왕래하여 수수보리(須須保理)로 빚은 술을 바쳤다는 내용과 본조월령(本朝月令) 6월령에 응신천황 때 수수보리가 참래하여 조주(造酒)가 처음으로 시작되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당시 조주법은 대부분 쌀로 빚었으며, 백제의 양조기술이 일본에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농사는 이미 벼농사 위주로 개편되어 관개공사를 추진하는 등 농업기술 증진책이 주요 국가사업이었다. 농가들은 보리, 밀, 조, 기장, 수수, 콩, 팥, 녹두 등을 재배하였고, 찹쌀의 산출량도 상당했다. 그리고 당시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밀이 우리나라에 정착되었고, 그 농사법을 다시 일본으로 전했다. 그 시기가 3세기 경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삼국시대 초기에 밀의 다양한 이용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시대에는 밀로 만든 누룩과 찹쌀을 주원료로 하여 술을 빚었을 거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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