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연의 맞춤 양념] 소금② 맛을 돋우는 조력자
신혜연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7-23 15:04:33
단맛은 더해주고 쓴맛은 덜어주는 효과도
[Cook&Chef = 신혜연 칼럼니스트]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요리할 때 퍼포먼스 하듯 소금을 뿌리면서 셰프테이너 시대의 시작을 알린 셰프가 있다. 이후 ‘소금 뿌리는 셰프’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사실 그 셰프는 이전부터 소금에 관심이 많았다.
2010년 가로수길에 ‘엘본 더 테이블’을 개업했을 때 첫 번째로 내놓은 건 소금이었다.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제대로 맛볼 수 있도록 그는 당시에는 보기 드문 스타일로, 다섯 가지 맛의 소금을 함께 준비했다. 녹차 소금, 장미 소금, 송로버섯 소금, 레몬 소금, 페퍼민트 소금. 다섯 가지 소금을 접시 위에 조금씩 올려놓고,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맛보게 했다.
같은 고기인데도 녹차 소금에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더 올라왔고, 레몬 소금에 찍어 먹으면 후반의 달큰한 육즙 맛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소금이 다른 재료와 어우러졌을 때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그 경험은 내게 일종의 식문화 충격이었다. 벌써 15년 전 이야기다.
굳이 바다 건너 외국에 가지 않아도 문화 충격은 수시로 일어난다. 이웃집에 갔는데 노란 참외에서 씨를 긁지 않고 통째로 잘라서 먹으라고 주었을 때, 중국집에서 탕수육이 나왔는데 어르신이 물어보지도 않고 소스를 확 부어버렸을 때, 일본에서 살다 온 친구가 팥죽에 설탕을 큰 숟가락으로 퍼서 넣을 때 등등.
내 기억의 가장 놀라운 음식 문화 충격은 친구 집에 갔을 때 친구 엄마가 토마토에 소금을 살짝 뿌려서 주신 것이다. 단맛을 좋아하는 엄마 취향에 따라 대부분 음식에 설탕이 우선이었던 나에게 그 토마토는 완전히 다른 토마토였다. 이전에는 몰랐던 토마토 자체의 새콤달콤한 맛이 확 느껴졌다. 토마토가 아주 맛있다고 하자 친구 엄마는 우유에도 소금을 살짝 넣어주며 마셔보라고 하셨다. 우유에서도 이전에 몰랐던 고소한 맛이 올라왔다. 그 기억이 남아서 나는 요즘도 새로운 식재료를 만나면 그냥 먹어보고, 소금을 뿌려 먹어보곤 한다.
날 고기를 먹던 인류가 불을 발견해 구운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첫 성취라면, 소금의 발견은 두 번째로 꼽을 만한 성취가 아니었을까? 구운 고기에 소금 한두 알을 올려 먹었을 때 올라오는 풍미와 감칠맛은 마법 같았을 테니.
‘맛있다’는 뜻으로 ‘간이 좋다’는 말이 있다. 소금이나 간장으로 하는 염도가 맛의 기본이란 뜻이다. 간이 좋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소금은 혼자만으로도 짭조름한 맛을 내고, 식품의 부패를 늦춰주는 등 맏이처럼 든든하게 제 역할을 다하면서 조용히 주변을 돕는다.
특히 양념을 할 때 가장 먼저 소금으로 시작하는 것은 소금이 짠맛을 내는 것뿐 아니라 단맛은 더 강하게, 향은 더 풍부하게, 쓴맛은 없애고, 잡내는 줄여주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고기에 넣으면 감칠맛을 올려주고, 단백질을 분해해서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채소에 뿌리면 삼투압 현상으로 수분을 빼내서 채소 자체의 아삭함을 유지하게 해준다. 수박, 딸기, 토마토 등 과일이나 채소에 소금을 살짝 뿌려 먹는 건 아주 똑똑한 방법이다. 소금이 식품 자체가 갖고 있는 단맛을 끌어 올려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음식에 신맛이 강할 때는 소금을 치면 신맛이 부드러워진다. 초무침을 할 때 신맛이 강하면 소금을 살짝 쳐서 맛을 잡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고문헌에 나오는 약재 중에 ‘염매鹽梅’가 있다. 매실을 소금에 절인 것으로 갈증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짠맛이 나는 소금과 신맛이 나는 매실이 상생 효과를 내는 것이다. 나중에 이 말은 임금이 선정을 베풀도록 신하가 잘 보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서로 조화가 좋다는 의미로 쓰였다.
고깃집이나 횟집에 가면 늘 안타까운 것이 어렵게 예약하고 줄까지 서 가며 소문난 맛집에 와서는 정성 들여 구운 고기나 싱싱한 회를 첫입부터 쌈장이나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 먹는 것이다. 그 식당에서 공들여 준비한 식재료 자체의 순수한 그 맛을 보기보다 자극적인 맛의 소스 맛을 더 즐기는 모양새다.
요즘 유명하다는 돼지고기 식당에서도 그렇다. 할머니가 물려준 수십 년 된 씨간장, 제주 멜젓, 말차 소금, 와사비 등 한 번씩 찍어 먹기도 버거울 정도로 다채로운 소스를 펼쳐놓는다. 그 수고로운 정성은 박수받을 만하다.
그렇더라도 첫입에는 그냥 고기나 회만, 다음에는 소금만 살짝, 그리고 조금씩 소스를 바꿔 가면서 어떤 소스와 재료의 맛이 어울리는지 맛보는 건 어떨까? 소금 몇 알이 재료의 맛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경험하고 나면 다음에는 절대로 처음부터 쌈장에 고기를 푹 빠뜨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소금은 어느 양념보다도 힘이 세다. 소금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으면 짠맛을 내는 양념이지만 고기나 채소 등의 다른 재료나 설탕이나 식초 등의 다른 양념과 어우러지면 서로의 맛을 더욱 붇돋워 주는, 마치 응원단장처럼 모두를 기꺼이 일으켜 세우는 게 바로 소금이다. 성경에서 ‘빛과 소금’을 일컫는 것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이면서 주변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게 바로 소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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