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로맥주'인데, 왜 맛은 다를까
송미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9-30 15:03:45
알코올을 빼기도 하고, 만들 때 조절하기도
[Cook&Chef = 송미연 기자] 요즘 제로맥주의 인기가 뜨겁다. 마트나 편의점 진열대마다 ‘제로’를 내세운 캔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막상 마셔보면 어떤 제로맥주는 진짜 맥주 맛이 나는데, 어떤 건 보리음료처럼 느껴진다. 한 모금 넘기는 순간 입안에 남는 향과 묵직함도 천차만별이다. 같은 제로맥주인데, 왜 맛은 이렇게 다를까.
단순히 브랜드나 홉의 차이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차이는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알코올을 줄이고 맛을 만드는 방식은 제품마다 다르다.
제로맥주는 모두 맥주에서 알코올만 뺄까
가장 익숙한 방식은 맥주를 양조한 뒤 알코올을 제거하는 것이다. 카스 0.0은 오비맥주의 ‘스마트 알코올 분리 공법’을 통해 알코올을 추출한다. 하이네켄 0.0은 하이네켄 오리지널과 기본적으로 같은 양조 과정을 거친 뒤 진공 증류 방식으로 알코올을 제거한다.
문제는 알코올만 걷어내고 맥주의 맛과 향을 그대로 남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발효 과정에서는 알코올뿐 아니라 맥주 특유의 향과 맛도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 관계자는 “발효는 단순히 알코올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맥주의 맛과 향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효모가 맥아즙 속 당을 소비하면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과일향이나 꽃향처럼 느껴지는 다양한 향미 성분도 생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맥주에서 알코올을 다시 제거하면 일부 향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 알코올 자체도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풍미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도수가 크게 낮아지면 바디감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진공 증류나 여과 등 어떤 방식으로 알코올을 제거하느냐에 따라서도 최종 향과 맛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발효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맥주 맛이 날까
반대로 처음부터 발효하지 않는 방식도 있다. 테라 제로는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맥아 농축액 등을 활용해 맥주 특유의 풍미를 구현하고, 제조 단계에서부터 알코올이 생기지 않도록 만든다. 완성된 맥주에서 다시 알코올을 제거할 필요가 없는 방식이다.
대신 다른 숙제가 생긴다. 맥주에서 발효는 알코올만 만드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플레이그라운드 관계자는 “비발효 방식은 효모가 만들어주는 발효 향미가 부족하고 맥아즙의 단맛이나 곡물 맛이 남기 쉬워 일반 맥주와 비슷한 맛을 만드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단맛을 조절하면서 홉의 쓴맛과 향, 산미, 탄산감 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맞추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비발효라는 차이는 생산 방식에도 이어진다. 일반 맥주처럼 발효조와 숙성 설비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어서 음료 생산라인을 활용할 수 있다. 같은 ‘제로맥주’라도 어떤 제품은 맥주공장에서, 어떤 제품은 음료공장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다.
발효는 하되, 알코올은 적게
두 방식 사이에는 발효는 하면서 알코올 생성을 낮추는 방법이 있다. 논알코올 맥주 제조업체 어프리데이는 맥아와 홉, 효모, 물을 사용해 직접 발효한다. 대신 일반 맥주 효모가 아닌 논알코올용 특수 효모를 사용한다.
어프리데이 관계자는 “논알코올용 효모는 알코올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효모의 특성을 이용해 알코올이 극소량만 만들어지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원리는 효모가 먹을 수 있는 당의 종류에 있다. 일반 맥주 효모는 맥아즙 속 여러 당을 폭넓게 발효하지만, 논알코올용 효모는 이용할 수 있는 당의 범위가 제한돼 있다. 일부 당만 소비한 뒤 발효가 크게 진행되지 않아 알코올 생성량도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그렇다고 발효의 역할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짧은 발효 과정에서도 에스테르나 페놀 같은 향미 성분이 만들어져 비발효 제품과는 다른 풍미를 낼 수 있다. 대신 효모가 소비하지 못한 당은 맥주 안에 남는다. 제한 발효 방식에서 맥아의 단맛이나 엿기름 같은 풍미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는 이유다.
결국 발효 후 알코올 제거, 비발효, 제한 발효의 차이는 단순히 술을 ‘빼느냐 안 빼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플레이그라운드 관계자는 이를 “발효를 통해 맥주다운 맛을 얼마나 만들 것인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알코올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제한 발효, 관리도 더 까다롭다
제한 발효 방식에서는 알코올 함량이 낮고 효모가 소비하지 못한 당이 남을 수 있어 미생물 오염 관리도 중요하다. 어프리데이 관계자는 “미세한 오염만으로도 산미가 튀거나 이취가 발생할 수 있어 양조 설비 세척부터 포장과 살균까지 높은 수준의 위생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맛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도 더 세밀하다. 잔류당에서 오는 단맛을 줄이기 위해 홉의 쓴맛을 조절하고, 알코올이 주던 묵직한 질감을 보완하기 위해 맥아의 종류나 양조용수의 미네랄 구성까지 손본다. 알코올 함량을 낮추는 것만큼, 그 과정에서 달라지는 맛과 질감을 보완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제조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맛
제조 방식의 차이는 결국 한 모금에서 드러난다. 비발효 제품은 발효에서 만들어지는 향미 대신 맥아와 홉, 산미와 탄산감 등을 조절해 맥주다운 맛을 구현한다. 제한적으로 발효한 제품은 효모가 소비하지 못한 당이 남아 맥아의 단맛이나 곡물 풍미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다. 반대로 발효 후 알코올을 제거한 제품은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진 향을 갖고 출발하지만, 알코올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일부 향이나 질감이 달라질 수 있다. 알코올 자체도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풍미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알코올 함량이 낮아지면 묵직함이나 마신 뒤 남는 여운도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제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그 맛을 만드는 과정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맥주를 만든 뒤 알코올을 빼기도 하고, 처음부터 발효하지 않기도 하며, 발효는 하되 알코올이 적게 생기도록 조절하기도 한다. 같은 제로맥주인데 맛이 달랐던 이유는 결국 ‘맥주다운 맛’을 만드는 방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 한 모금의 차이에는 알코올은 줄이면서도 맥주다운 맛은 남기려는 만드는 이들의 기술적 고민이 담겨 있다.
Cook&Chef / 송미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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