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논에서 건져 올린 추어탕 한 그릇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08-14 15:05:02

늦여름 살 오른 미꾸라지, 지역마다 다른 맛으로 이어진 보양식 [추어두부는 미꾸라지와 두부를 함께 끓여 두부 속에 미꾸라지가 박혀있는 추두부를 만든 다음 이것을 참기름에 지져 국을 끓여먹는다/ 사진=궁중음식연구원]

[Cook&Chef = 서진영 기자] 입추가 지났지만 한낮의 더위는 여전하다. 말복이면 삼계탕과 장어가 먼저 생각나지만, 펄펄 끓는 추어탕도 여름철 보양식이다. 작은 민물고기를 뼈째 이용하고 시래기와 우거지, 부추 같은 채소를 듬뿍 넣어 끓인다.

남원에서는 된장을 풀어 구수하게 끓이고, 원주에서는 고추장으로 얼큰한 맛을 내고 서울에서는 고기 육수에 통째로 넣어 ‘추탕’을 끓인다. 같은 재료지만 지역의 장과 채소, 조리법에 따라 맛은 달라진다.

가을이 오기 전 살 오르는 ‘추어’

추어탕은 한자로 ‘鰍魚湯’이라 쓴다. 추(鰍)는 미꾸라지를 뜻한다. 《동의보감》에도 ‘추어(鰍魚)’와 당시 우리말인 ‘믜꾸리’가 함께 기록돼 있다. 논과 도랑, 농수로처럼 바닥에 진흙이 깔린 얕은 물에서 주로 살아 농촌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 식생활에 등장한 기록으로는 12세기 《고려도경》에 사람들이 먹던 수산물 가운데 추(鰍)가 기록돼 있으며, 조선 후기 《난호어목지》에는 맑은 물에 두어 진흙을 토하게 한 뒤 죽으로 끓여 먹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19세기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추두부탕(鰍豆腐湯)’은 두부와 살아 있는 추어를 솥에 넣어 가열한 뒤 두부를 썰어 참기름에 지지고 다시 탕으로 끓인다. 《해동죽지》에는 굳기 전 두부에 넣어 함께 굳힌 다음 얇게 썰어 생강과 천초 등을 더하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지금은 추어튀김과 숙회, 만두 등으로 조리 범위가 넓어졌다. 바삭하게 튀긴 작은 추어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먹기도 하고, 갈아 만든 소를 만두피에 채우기도 한다. 남원의 전문점에서는 탕과 함께 튀김과 숙회를 한 상에서 맛볼 수 있다.

[남원의 새집추어탕 / 사진=새집추어탕]

남원은 된장, 원주는 고추장

남원식 추어탕은 삶은 추어를 뼈째 갈거나 으깬 뒤 된장을 풀고 시래기나 우거지를 넣어 끓인다. 국물은 진하고 구수하다. 여기에 마늘과 고춧가루, 부추를 넣고 기호에 따라 들깨를 더한다.

광한루원 주변에는 추어탕 전문점이 모여 있다. 1959년 문을 연 새집추어탕도 이곳을 대표하는 오래된 식당이다. 탕과 함께 숙회와 튀김을 내며 남원에서 발달한 다양한 추어요리를 함께 보여준다.

원주는 보리고추장을 풀어 국물을 내기 때문에 된장을 사용하는 남원식보다 붉고 칼칼하며, 감자와 미나리, 부추, 버섯 같은 채소도 함께 들어간다. 갈아서 끓이기도 하고 통째로 넣기도 한다.

대복추어탕은 직접 담근 보리고추장을 장기간 숙성해 사용하며 갈추어탕과 통추어탕을 함께 낸다. 부드럽게 풀어진 국물을 좋아하면 갈추어탕을, 재료의 형태와 식감을 그대로 즐기려면 통추어탕을 고를 수 있다.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은 배추와 우거지의 비중이 높다. 삶은 것을 으깨 체에 거른 뒤 배추, 숙주, 부추 등을 넉넉히 넣어 끓인다. 국물은 남원식보다 비교적 맑고 채소 맛이 더해진다. 먹기 직전 초피가루를 조금 넣으면 코끝에 알싸한 향이 올라온다.

대구 중구의 상주식당은 1957년부터 영업을 이어왔는데, 갈아낸 추어와 배추를 넣고 집간장으로 간한 국물은 담백한 대구식 추어탕의 특징을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추어탕’보다 ‘추탕’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왔다. 추어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고 쇠고기나

[1932년에 영업을 개시한 오랜 전통의 추어탕 전문점 용금옥]

곱창으로 낸 국물에 두부와 버섯, 유부와 채소를 더한다. 국물에서는 육향이 먼저 올라오고 그 안에 통추어가 그대로 들어 있다.

1932년 문을 연 용금옥은 서울식 추탕을 이어온 대표적인 노포로, 남원의 걸쭉한 된장 국물과 비교하면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맛과 형태가 다르다.

남원에는 된장과 시래기, 원주에는 보리고추장, 대구에는 배추와 초피, 서울에는 고기 육수가 있다. 지역에서 즐겨 사용한 장과 채소가 각기 다른 추어탕을 만들었다.

여름의 끝에서 먹는 추어탕은 든든한 한 끼다. 지역마다 다른 맛이 있고, 한 그릇 안에는 단백질과 칼슘, 여러 채소가 함께 들어 있다. 말복에 추어탕을 찾는 이유도 어렵지 않다. 더위에 지친 몸을 채우기 위해 먹어온 우리 보양식이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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