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셰프 리포트] 루이스 필리페, ‘오리운디’로 경계를 허물다

허세인 기자

cnc02@hnf.or.kr | 2026-05-10 16:30:35

은행원에서 미쉐린 3스타까지, 늦은 출발이 만든 독자적 시선
이탈리아와 브라질을 잇는 요리, 문화의 교차점을 접시에 담다

사진 = Evvai-SP(www.evvai.com.br)

[Cook&Chef = 허세인 기자] 올해 4월, 미쉐린 가이드에 역사적인 방점이 찍혔다. 그동안 주류에서 다소 비켜나 있던 남미 미식이 3스타 선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브라질 상파울루의 레스토랑들이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라틴 아메리카는 더 이상 잠재력 있는 시장이 아닌, 세계 미식의 현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점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루이스 필리페다. 그는 이탈리아와 브라질이라는 두 문화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 온 셰프로, 그가 운영하는 상파울루의 에바이(Evvai)는 특정 국가의 요리로 단정하기 어려운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 요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재료와 해석은 분명 브라질을 향한다.

이 독특한 방향성은 루이스 필리페의 이력에서 비롯된다. 그는 전통적인 요리 교육을 거쳐 성장하지 않았다. 경영을 공부한 뒤 국제 은행에서 신용 분석가로 일하다가 요리로 방향을 틀었다. 칼 잡는 법도 몰랐던 초심자였지만, 이후 상파울루의 파사노(Fasano), 피셀리(Piselli), 이탈리아의 레알레 카사돈나(Reale Casadonna) 등에서 경험을 쌓으며 빠르게 기반을 다졌다.

2017년, 그는 상파울루 자르딘스 지역에 에바이를 열었고, 개업 2년 만에 미쉐린 스타를 획득했다. 이어 2019년에는 ‘라틴 아메리카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이름을 올렸고, 같은 해 세계 최고 권위의 요리 대회인 ‘보퀴즈 도르(Bocuse d'Or)’ 결선에도 진출했다. 2024년에는 미쉐린 2스타를 획득하며 레스토랑의 위상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탈리아도, 브라질도 아닌 ‘오리운디’

에바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오리운디(Oriundi)다. 이탈리아어로 ‘(어디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이 단어는, 루이스 필리페의 요리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그의 요리는 이탈리아를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민자 문화가 만들어낸 혼합의 역사에 주목한다. 브라질, 특히 상파울루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대규모 이탈리아 이민이 이루어진 도시다. 이 문화적 축적은 일상적인 음식부터 고급 요리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반에 깊이 스며 있다.

루이스 필리페는 이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탈리아 조리법 위에 브라질 식재료를 얹거나, 반대로 브라질적 감각으로 이탈리아 요리를 해체한다. 산타카타리나산 송어알을 곁들인 소고기 타르타르, 버팔로 스트라치아텔라와 참치를 결합한 요리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문법을 따르면서도 재료와 구성에서는 브라질의 색을 드러낸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퓨전을 넘어, 두 문화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를 동시에 드러내는 접근에 가깝다.

소꼬리 육수, 물냉이, 프리프리오카를 곁들인 소 혀 라자냐. 사진 = luiz filipe 인스타그램

‘고급’의 기준을 다시 묻는 방식

루이스 필리페의 요리는 재료에 대한 관점에서도 특징이 뚜렷하다. 그는 일반적으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선호되는 부위나 식재료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기피되는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둔다.

대표적인 예가 소 혀를 활용한 라자냐다. 소 혀는 조리 난도가 높고 선입견이 강한 재료지만, 이를 정교한 레이어 구조와 깊은 육수로 풀어내며 하나의 시그니처 요리로 완성했다. 이러한 시도는 ‘고급’이라는 기준을 재료 자체가 아니라 조리 과정과 해석의 깊이로 재정의하려는 접근으로 읽힌다.

에바이의 또 다른 특징은 식사를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한다는 점이다. 단품 요리 중심에서 벗어나, 코스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각 요리는 독립적인 완성도를 갖는 동시에, 전체 서사 안에서 역할을 가진다. 여기에 시각적 요소와 설명 방식이 더해지면서, 식사는 단순히 맛을 소비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고객은 요리를 통해 문화적 맥락과 이야기를 함께 경험하게 된다.

사진 = luiz filipe 인스타그램

실패와 전환이 만든 현재의 형태

에바이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고급 레스토랑을 지향하지 않았다. 개업 당시에는 젊은 층이 쉽게 오갈 수 있는 캐주얼한 공간을 목표로 했지만, 운영 과정에서 방향이 바뀌었다.

이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재정적인 부담, 외부 환경 변화, 팬데믹 등 여러 변수 속에서 레스토랑은 지속적으로 구조를 조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루이스 필리페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보다,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테이스팅 메뉴 중심의 운영 방식과 ‘오리운디’라는 철학이 더욱 분명해졌다.

최근 그의 관심은 더욱 명확하게 브라질로 향하고 있다. 이탈리아 요리에서 출발해 문화적 혼합을 탐구해 온 그는, 이제 브라질의 식재료와 지역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프로젝트를 확장하고 있다. 올해 7월, 그는 인생의 방향을 바꿨던 보퀴즈 도르 아메리카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다. “재능 있는 브라질 셰프들이 세계 미식 대회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며 응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경계 위에서 완성된 하나의 방향

루이스 필리페의 요리는 특정 국가의 정체성에 머물지 않는다. 이탈리아와 브라질 사이, 전통과 현대 사이, 고급과 일상 사이를 오가며 형성된 결과물이다.

그의 레스토랑이 미쉐린 3스타에 도달한 것은 하나의 성과이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가 여전히 경계 위에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지금의 브라질 미식이 어떤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가 되고 있다.

Cook&Chef / 허세인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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