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에 ‘벨기에’라는 이름이 붙기까지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8-25 15:01:02

중세 장터에서 세계박람회까지, 브뤼셀 와플이 ‘Belgian’이라는 이름을 얻은 시간
출처 : 위키백과

[Cook&Chef = 정수연 기자] 브뤼셀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달콤한 냄새가 먼저 발걸음을 붙잡는다. 철판이 열리면 깊은 격자무늬를 가진 와플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위로 슈거파우더가 내려앉는다. 관광객이 모이는 거리에서는 딸기와 초콜릿, 휘핑크림과 아이스크림을 풍성하게 올린 와플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게마다 적힌 ‘벨기에 와플’이라는 이름은 이제 벨기에 여행을 상징하는 풍경의 일부가 됐다.

와플의 역사는 오늘날의 벨기에라는 국가보다 훨씬 오래됐다. 중세 유럽 여러 지역에서 이미 철판에 반죽을 넣어 굽는 음식이 이어졌고, 오늘날 벨기에가 자리한 저지대 역시 그 오랜 와플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그렇다면 수많은 유럽의 와플 가운데 왜 벨기에의 이름이 세계에 남게 됐을까. 그 답은 중세의 축제와 장터에서 시작해 브뤼셀의 거리와 20세기 세계박람회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축제에서 퍼진 와플

와플을 뜻하는 프랑스어 ‘고프르(gaufre)’의 오래된 형태인 ‘왈프르(walfre)’는 12세기 무렵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어원은 벌집을 뜻하는 게르만계 언어와 이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격자무늬가 벌집을 연상시키는 오늘날 와플의 모습에서도 그 오래된 어원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중세에는 긴 손잡이가 달린 두 장의 금속판 사이에 반죽을 넣고 직접 불 위에서 와플을 구웠다. 브뤼헤의 그루트후스 박물관이 소장한 15세기 와플·웨이퍼용 철판에는 부르고뉴 공작의 문장과 종교적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철판을 맞물려 구우면 새겨진 문양이 반죽 표면에도 그대로 찍혔다.

이렇게 구운 와플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 더욱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15~17세기의 회화와 판화에는 카니발과 장터, 민속축제에서 와플을 굽고 파는 장면이 반복된다. 주현절과 부활절, 새해를 맞아 와플을 준비하는 풍습도 이어졌으며, 서플랑드르에서는 얇고 바삭한 ‘루켄’을 새해에 나누고 집에서 쓰던 철판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축제를 구경하다 철판에서 막 구운 와플을 받아 들고 다시 거리로 움직였다. 반죽이 익는 모습과 주변으로 퍼지는 냄새까지 와플을 먹는 경험의 일부였다. 와플은 그렇게 축제와 장터를 따라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퍼져나갔다.


브뤼셀과 리에주, 도시마다 달라진 와플

19세기에 들어서면 오늘날 브뤼셀 와플로 이어지는 형태와 이름이 한층 선명해진다. ‘브뤼셀 와플’이라는 명칭은 19세기 전반의 기록에서 확인되며, 1840년대에는 브뤼셀의 제과점에서 기술을 익힌 플로리안 다허가 겐트에서 ‘두꺼운 브뤼셀 와플’을 광고했다.

1874년 겐트의 요리사 필리프 코들리에가 펴낸 제과서에는 브뤼셀 와플의 초기 레시피가 실렸다. 버터와 우유, 밀가루, 달걀을 사용하고 흰자를 충분히 거품 내 반죽을 가볍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브뤼셀 와플의 특징인 바삭한 겉면과 공기감 있는 속도 이 시기 레시피에서 이미 확인된다.

브뤼셀 와플은 공원과 산책로, 유원지와 카페 주변의 노점으로 퍼지며 근대 도시의 여가 속에도 자리를 잡아갔다. 한편 리에주에서는 효모를 넣은 브리오슈 계열 반죽에 굵은 설탕을 섞어 굽는 방식이 발전했다. 펄 슈거가 열을 받아 캐러멜화되면서 표면에는 달콤하고 바삭한 층이 생겼다.

브뤼셀과 리에주에서는 반죽과 식감, 형태가 서로 다른 와플이 각각 지역의 이름을 달고 자리 잡았다. 훗날 세계에서 ‘벨기에 와플’로 널리 알려진 형태는 이 가운데 크고 가벼운 브뤼셀 와플 계열이었다. 그리고 이 지역의 와플을 벨기에 밖으로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세계박람회였다.


장터에서 세계박람회로

19세기 후반부터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각국의 산업과 기술, 생활문화를 한자리에 소개하는 국제박람회가 이어졌다. 벨기에 역시 앤트워프와 브뤼셀, 리에주와 겐트 등에서 대규모 박람회를 열며 자국의 문화를 세계 각국의 관람객에게 선보였다.

박람회장에는 각 나라의 거리와 마을을 재현한 공간이 들어섰고, 전통 의상과 공연뿐 아니라 음식과 술도 함께 소개됐다. 관람객은 전시관을 오가며 여러 나라의 문화를 보고 직접 맛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구워 따뜻하게 건넬 수 있는 와플 역시 박람회에서 소개하기 좋은 음식이었다.

중세와 근세의 카니발과 장터에서 지역 사람들에게 팔리던 와플은 20세기에 들어 세계박람회에서 각국의 관람객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갓 구워 판매한다는 방식은 이어졌지만, 와플을 맛보는 사람들의 범위는 지역에서 세계로 크게 넓어졌다.


브뤼셀에서 시애틀까지

그 흐름이 본격적으로 국경을 넘은 계기 가운데 하나가 1958년 브뤼셀 세계박람회였다. 6개월 동안 4천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이곳을 찾았고, 발터 클레이먼도 박람회장에서 와플을 판매했다. 몇 년 뒤 그는 벨기에에서 사용하던 가스식 와플 철판과 굽는 방식을 들고 미국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1962년 시애틀 세계박람회였다.

시애틀에서 클레이먼이 내놓은 와플은 가벼운 반죽에 딸기와 휘핑크림을 올린 형태였다. 깊은 홈이 찍힌 커다란 와플은 박람회가 열린 6개월 동안 50만 개 이상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당시 미국에서도 와플은 이미 익숙한 음식이었다. 클레이먼의 와플이 새로웠던 것은 음식의 종류보다 크기와 식감, 먹는 방식이었다. 기존 와플보다 크고 홈이 깊었으며, 겉은 바삭하고 속은 가벼웠다. 딸기와 휘핑크림을 풍성하게 올린 모습까지 더해지면서 시애틀의 관람객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시애틀에서 브뤼셀식 와플의 맛과 형태가 미국인의 눈에 들어왔다면, 2년 뒤 뉴욕에서는 그 와플을 어떤 이름으로 기억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변화로 이어진다.


‘브뤼셀’에서 ‘벨기에’로 바뀐 이름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는 벨기에 자체가 하나의 국가 이미지로 소개됐다. 박람회장에는 18세기 플랑드르의 모습을 재현한 ‘벨기에 마을’이 들어섰고, 교회와 시청, 운하와 다리, 상점과 음식점을 통해 벨기에의 생활문화를 한 공간에서 보여줬다. 이런 환경에서는 브뤼셀이라는 도시명보다 벨기에라는 국가명이 관람객에게 훨씬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모리스와 로즈 베르메르슈 가족도 이곳에서 브뤼셀식 와플을 판매했다. 딸기와 휘핑크림을 올린 와플에는 ‘벨젬 와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미국인에게는 브뤼셀이라는 도시명보다 벨기에라는 국가명이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때 브뤼셀이라는 지역의 이름으로 불리던 와플은 미국에서 ‘벨기에 와플’이라는 더 넓은 이름으로 소개되기 시작한다. 시애틀에서 와플의 형태와 맛이 먼저 알려졌다면, 뉴욕에서는 그 음식과 벨기에라는 국가명이 본격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세계박람회 이후 미국의 식탁으로

박람회가 끝난 뒤에도 벨기에 와플이라는 이름은 미국에 남았다. 음식점과 호텔 조식, 브런치 메뉴로 퍼졌고 버터와 메이플시럽, 과일과 크림을 곁들이는 방식도 자리를 잡았다. 가정용 와플 기계와 냉동제품에도 ‘벨기에’라는 이름이 사용되면서 박람회에서 소개된 와플은 미국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벨기에에서는 브뤼셀 와플과 리에주 와플이 각자의 형태와 먹는 방식을 이어갔다. 해외에서는 크고 깊은 홈과 가벼운 식감을 가진 브뤼셀 계열의 와플이 ‘벨기에 와플’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다. 브뤼셀이라는 한 도시의 음식이 해외에서 벨기에 전체를 대표하는 와플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와플의 역사는 중세 유럽 여러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오랜 음식에 ‘벨기에’라는 국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각인시킨 계기는 20세기 세계박람회였다. 브뤼셀에서 지역의 이름으로 불리던 와플은 1958년 브뤼셀 세계박람회를 거쳐 시애틀과 뉴욕으로 이동했고, 수많은 미국인에게 소개되는 과정에서 점차 ‘벨기에 와플’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세계박람회가 끝난 뒤에도 이 이름은 음식점과 호텔, 가정용 제품으로 이어지며 미국의 식생활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과정에서 브뤼셀이라는 한 도시의 와플은 벨기에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지역에서 이어온 조리법과 식감은 세계박람회를 통해 새로운 소비자를 만났고, 해외에서는 도시명보다 국가명이 앞에 붙으면서 하나의 독립된 와플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됐다.

오늘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벨기에 와플’이라는 이름에는 바로 이 이동의 역사가 담겨 있다. 중세의 축제와 장터에서 이어진 와플 문화가 19세기 브뤼셀에서 도시의 이름을 얻고, 20세기 세계박람회를 통해 국경을 건넌 뒤 미국에서 ‘벨기에’라는 국가의 이름으로 다시 불리기 시작했다. 벨기에와 와플을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한 것은 한순간의 발명이 아니라, 지역의 음식이 세계를 이동하며 이름과 의미를 넓혀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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