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뉴욕 지하철역 문 너머 펼쳐지는 한식의 신세계… 'Noksu NYC' 한형주 셰프를 만나다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6-03-27 14:21:45
낯선 겉모습 속 숨겨진 진짜 한국의 맛… "고요리서로 글로벌 K-푸드 새 지평 열 것"
[Cook&Chef = 이경엽 기자]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헤럴드스퀘어 지하철 32번가 입구 인근. 수많은 인파가 바쁘게 오가는 평범한 출퇴근길 지하철역 안, 예약자에게 당일 전달되는 출입 코드를 입력하고 문을 여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가스조차 사용할 수 없는 좁고 제한적인 주방 환경을 극복하고, 최고급 요리를 선보이며 미슐랭 1스타를 획득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Noksu NYC(이하 녹수)'의 이야기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녹수의 메뉴 개발에 참여한 한형주 셰프로부터 이 공간의 조리 철학과 운영 이야기를 서면으로 들었다.
공학도를 꿈꾸던 소년, 누나를 따라 뉴욕의 '멜팅 팟'에 뛰어들다
한형주 셰프의 시작은 흔한 '요리 영재'의 서사와는 달랐다. 어릴 적 친누나가 집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그는 자연스레 요리에 흥미를 느꼈지만, 본래 아버지를 따라 공대로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꾼 것은 TV 속 화려한 셰프들의 모습이었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결심에 부모님의 반대가 따랐지만, 그는 18살의 나이에 첫 아르바이트를 고집스레 시작하며 한식, 양식, 일식당을 두루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이후 누나가 조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그 역시 요리 공부를 위해 누나의 발자취를 따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많은 도시 중에서도 뉴욕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미국 요리 학교에서 수학한 뒤 특정 분야에 얽매이기보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고자, 전 세계의 사람과 음식이 모이는 '멜팅 팟(Melting Pot)'이자 세계 최대의 파인다이닝 시장인 뉴욕을 택한 것이다. 한 셰프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과 음식, 식재료 환경, 시스템을 경험하기에 뉴욕은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고 회상한다. 일본에서의 경험과 뉴욕의 레스토랑 'Jua(주아)'를 거친 그는 운명처럼 녹수에 합류하게 된다.
원팀(One-Team)으로 움직이는 치열한 주방과 소통의 리더십
녹수에서의 시작은 강렬한 끌림에서 비롯됐다. 녹수를 찾아가 직접 스테이지(Stage, 견습)를 해본 그는 모두가 한 팀이 되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아주 작은 레스토랑의 역동적인 모습에 매료되어 이곳에서 오래 헌신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프렙(Prep) 등 간단한 업무부터 시작해 점차 영역을 넓혀간 그는, 헤드 셰프가 교체되는 과도기에 한식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자신의 아이디어로 오너와 동료 셰프들을 설득해 내며 녹수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셰프로 자리 잡았다.
현재 녹수의 주방은 한국, 미국, 과테말라,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뛰어난 셰프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셰프가 이 다국적 팀을 이끄는 핵심 동력은 단연 '커뮤니케이션(소통)'이다. 매일 서비스 시작 전 예약자의 알레르기 등 특이사항을 꼼꼼히 숙지하고, 서비스가 끝난 후에는 그날 하루 동안 실수한 점, 부족한 점, 잘한 점을 가감 없이 복기하는 회의를 어김없이 진행한다. 짧게는 10분 이내로 끝나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에는 2시간 넘게 치열한 회의가 이어지기도 한다. 서로의 의견과 문화를 존중하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조직 문화야말로 녹수가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고 미슐랭 별을 빛나게 하는 숨은 원동력인 셈이다.
겉모습은 낯설어도, 한 입 베어 물면 '한국'
녹수는 컨템포러리 다이닝을 표방하지만, 그 중심에는 흔들림 없는 '한국 식당'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다. 뉴욕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전 세계의 다채로운 식재료와 조리법을 융합하여 다양한 입맛을 아우르면서도, 중심에는 항상 한국의 식재료와 조리법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한 셰프는 "플레이팅은 한식이 아니지만, 먹어보면 한식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요리를 제공한다"며, 한국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그들이 한국적 감각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조리 철학은 시그니처 메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첫 코스로 제공되는 에피타이저 'Butterfly'는 나비 모양의 크래커에 계절과 메뉴, 재료에 따라 매번 다른 속을 채워 넣어 튀김의 고소함과 함께 고객들에게 시각적인 재미와 흥미를 선사한다. 첫 번째 디저트인 'Yuza, Makgeolli sorbet'는 막걸리 특유의 톡 쏘는 탄산감과 은은한 효모 향을 차가운 소르베 제형으로 가두고, 유자의 향긋한 산미와 쌉쌀함을 더해 특별한 미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트러플, 캐비어, 성게알(우니), 푸아그라 등 최고급 식재료를 적극 활용한다. 이는 특별한 미식 경험을 갈망하며 녹수를 찾는 관광객, 현지인, 비즈니스 고객 등 미드타운의 다양한 고객층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최고급 파인다이닝을 경험하게 하려는 영리한 메뉴 전략이다.
K-파인다이닝의 눈부신 성장, 그리고 남겨진 뼈아픈 과제
한국, 미국, 일본의 주방을 두루 섭렵하며 글로벌 감각을 키운 한형주 셰프는 글로벌 다이닝 시장에서 한식, 특히 한식 기반 요리가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한국 고유의 '채식 요리'와 독창적인 발효 기술, 그리고 특유의 식재료들은 늘 새로운 고객 경험이 요구되는 파인다이닝 시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세계화의 이면에는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뼈아픈 현실도 존재한다. 한 셰프는 한국의 재료와 발효, 조리 방법에 대한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짚었다. 무엇보다 식재료 수급의 벽이 가장 높다. "일본 식재료는 현지 직배송으로 단 하루면 뉴욕으로 최상의 퀄리티로 도착하지만, 한국 식재료는 한국 현지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거나 아예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K-푸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묵직하게 시사한다.
고요리서에서 발굴하는 한식의 무한한 미래
뉴욕 한복판에서 다양한 손님들에게 '한식의 다양성과 맛'을 전파하고 있는 한형주 셰프의 시선은 이제 더 깊은 뿌리를 향하고 있다. 그의 장기적인 비전이자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바로 '한국의 전통 궁중 음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아직 한식 하면 떠오르는 정해진 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요리서를 들여다보면 정말 특이하고 재미있는 요리들이 무궁무진해요. 이를 저만의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표현하여,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의 옛 궁중 음식이 얼마나 새롭고 매력적인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평범한 지하철역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가스조차 쓸 수 없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창의적인 발상과 단단한 팀워크로 뉴욕 다이닝 씬을 매료시킨 한형주 셰프. 옛 요리서의 지혜를 빌려 그가 뉴욕의 접시 위에 새롭게 펼쳐낼 한식의 다음 장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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