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재료와 전통 방식이 핵심"
조연정 기자
cnc02@hnf.or.kr | 2026-08-31 15:14:19
[Cook&Chef = 조연정 기자] 국수는 남녀노소 좋아하는 음식이다. 면을 삶아 육수를 붓거나 양념에 비벼서 먹으면 그 자체로 맛있다. 사실 국수는 육수나 양념도 중요하지만, 맛의 본질은 ‘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면의 굵기, 탄력, 표면의 매끄러움에 따라 국수의 전체 맛과 완성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지난 8월 28일 한식문화공간 이음에서 열린 ‘8월 한식콘서트’에서는 40년 국수 장인이 국수의 재료, 제면, 건조 과정, 맛의 기준 등을 알려주는 강의가 있었다. 거창한국수 김현규 연구소장과 김상희 대표를 만나 맛있는 국수의 비결과 국수에 대한 철학을 직접 들어봤다.
아버지와 딸이 전통방식으로 함께 만드는 국수
거창한국수는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국수 공장에서 아버지 김현규 연구소장과 딸 김상희 대표, 그리고 가족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40년 동안 오직 ‘국수’라는 외길을 걸어온 아버지의 노하우에 딸의 남다른 마케팅 실력이 합쳐져 지금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김상희 대표는 거창한국수의 핵심은 좋은 원재료와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제조법에 있다고 말한다. “국수에 색을 내기 위해 분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식재료의 고유한 물성에 맞춰 가공법을 달리해요. 사과는 직접 갈아서 소금을 넣어 잼처럼 만들고, 여주는 손으로 직접 파내서 반죽에 섞는 거죠.” 이렇게 만든 국수는 식재료의 맛과 향, 그리고 색이 잘 살아나서 국수 맛의 깊이를 더한다. 반죽은 여러 번 감고 펴는 과정을 반복해서 미세한 기포를 살리는데, 그래야 치감과 탄력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 다음 유리 온실 환경에서 48시간 동안 저온 숙성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치면 면의 조직이 단단해지면서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저희 국수를 처음 맛보면 짠맛이 많이 난다고 하는데, 반죽 속에 천일염을 넣기 때문이에요. 면에 점성과 끈기가 생겨 삶았을 때 퍼지지 않고 은은한 감칠 맛이 돌아요.”
거창한국수는 다양한 식재료를 배합해 색다른 국수를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연의 색감을 담아낸 오방색 국수는 제주 비트, 거창 부추, 진도 흑미 등 지역에서 찾아낸 식재료를 사용했다. 또 월간 거창한국수 프로젝트를 통해 제철 식재료로 국수를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메밀을 맷돌 방식으로 갈아 만든 메밀 수제비를 출시할 예정이다.
40년을 이어온 국수 연구의 결실
지금의 거창한국수를 만드는 과정에는 김현규 소장의 오랜 연구와 수많은 시행착오가 담겨있다. 어떻게 하면 소화가 잘되고, 영양에도 좋고, 맛있는 국수를 만들지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고, 테스트하면서 발전해온 것이다. “밀가루에는 글리아딘과 글리테인 두 가지 성분이 있는데, 반죽할 때 소금물을 넣으면 성분이 합쳐져 글루텐이 됩니다. 글리아딘은 점성을 만들고 글루테인은 탄성을 만들어 반죽이 되는 거죠. 글루텐이 없으면 국수를 만들 수 없어요. 거창한국수는 밀가루와 국내산 쌀을 10%로 섞어서 반죽하고 있습니다.” 김현규 소장은 밀가루에 대한 영양학적 분석은 물론 우리나라 국수와 일본 국수의 차이점도 얘기했다. “일본은 족타를 통해 반죽 속 기포를 완전히 빼내어 매끄럽고 탱탱해서 후루룩 삼키기 좋죠. 우리나라는 반죽 내에 미세한 기포를 남겨 국물이 잘 배어들고 양념이나 고명, 김치 등과 함께 씹었을 때 잘 어우러지는 맛이 납니다.” 40년 동안 국수를 연구한 김현규 연구소장의 연구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저는 될 때까지 계속하는 사람입니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생각하는 목표가 있다면 끝까지 해보는 거죠. 그래야 자신만의 것을 만들 수 있어요.”
K-국수로 거듭나는 거창한국수를 꿈꾸며
김상희 대표는 이탈리아하면 파스타, 일본하면 우동이 있듯이 한국 국수하면 거창한국수가 떠올리면 좋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미 K-푸드 열풍에 힘입어 미국, 중국, 네덜란드 등에 수출을 하고 있으며, 여러 곳에서 협업하자는 제안도 많이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은 현지화가 된 경우가 많죠. 하지만 거창한국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바꾸진 않을 거예요. 대신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서 계속 발전해 나갈 겁니다.” 거창한국수가 K-국수를 대표하는 그날까지, 거창한 앞날을 기대해본다.
거창한국수 김상희 대표와의 일문일답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국수 사업을 하기 위해 거창에 내려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와 남편 둘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에 지쳐있을 때였어요. 서울을 벗어나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걸 선택했죠. 당시 아버지가 아프셔서 공장 운영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고요. 어렸을 때부터 국수 만드는 법을 봐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려와서 보니 모든 게 쉽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저희 부부가 고생 좀 했어요.
거창한국수로 브랜딩하며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했는데 반응은 어땠나요?
이전에는 아버지가 개발한 훌륭한 국수가 있었지만, 판매나 마케팅을 전담할 사람이 없어 주문 제작 위주로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었어요. 2020년에 거창한국수 상표권을 내고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운이 좋게도 지인의 소개로 인기 좋은 플리마켓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때 생각보다 훨씬 큰 반응을 얻었어요. 국수를 들기름에 버무려서 시식을 했는데, 그게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거죠. 덕분에 SNS 팔로워가 늘어나고 많은 수익도 냈어요. 이후 <한국기행>, <동네 한 바퀴> 등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와 출연도 하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며 거창한국수를 알리는 데 노력했어요.
거창한국수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는 ‘순환’과 ‘상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 농가에서 농산물을 구입하는데, 크기가 작거나 흠집이 난 못난이 농산물을 제값에 사요. 농부들이 힘들게 농사지은 것들을 깎고 싶지 않아요.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가까운 곳에서 재료를 수급하고 있어요. 밀가루는 인근 함양에 있는 제분소에서 가져오고, 깻잎순이나 고구마순 같이 버려지는 식재료를 활용해 국수를 만들어보기도 해요.
현재 계획중인 일이 있다면 귀띔해주세요.
감사하게도 거창한국수가 조금씩 알려져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거창에 있는 공장에서는 생산하는 양이 정해져 있어 수급을 맞추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내년에는 새로운 공장을 지으려고 해요. 지금 부지는 매입한 상태에요. 여기에는 단순히 제조 시설만 있는 게 아니라 방문객이 직접 국수를 맛보고 체험할 수 있는 복합형 공간을 만들 계획이에요.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창업이래 처음 대출을 고려할 정도로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웃음).
김상희 대표에게 ‘아버지와 국수’란 어떤 의미인가요?
아버지에게 국수는 인생과 다름 없었어요. 국수 공장을 폐업하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시절에도 국수에 대한 집념은 놓지 않았으니깐요. 그 생생한 기록이 아버지의 연구 노트에 적혀 있어요. 10권이 넘는 노트에는 40년 간의 실패와 성공이 촘촘히 기록되어 있는데, 거창한국수를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죠. 학창시절에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지금 같이 일해보니 그 시간의 의미를 알 거 같기도 해요. 저에게 국수는 ‘가족’이에요.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어머니, 그리고 함께 하고 있는 남편이 함께 하고 있으니깐요. 어릴때부터 아버지가 만든 국수를 참 좋아했는데, 지금도 일주일에 두 세 번 먹을 정도로 즐겨 먹어요. 들기름에도 비벼먹고, 국수만 삶아서 먹기도 해요. 앞으로도 제가 맛있게 먹는 국수를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정직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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