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노트] 익힌 은행도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송자은 기자

cnc02@hnf.or.kr | 2026-09-30 15:03:21

열을 가해도 메틸피리독신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과다 섭취 주의
쫀득하고 고소한 가을 별미, 어린이 2~3알·성인은 10알 이내
사진 = 위키미디어

[Cook&Chef = 송자은 기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를 걷다 보면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거리에서는 독특한 냄새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단단한 껍데기 안의 연둣빛 알맹이는 이야기가 다르다. 불에 구우면 쫀득해지고 고소한 맛이 살아나 꼬치와 볶음, 영양밥의 별미가 된다.

그러나 은행은 밤이나 땅콩처럼 한 움큼 집어 먹어도 되는 식재료가 아니다. 특히 아이가 잘 먹는다고 계속 건네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익힌 은행도 어린이는 하루 2~3알, 성인은 10알을 넘기지 않도록 안내한다. 여기서 ‘2~3알’은 건강을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권장량이 아니라, 과다 섭취를 피하기 위한 안전 수칙에 가깝다.

작고 고소하지만, 반드시 개수를 세어야 하는 열매

은행을 많이 먹으면 구토와 복통, 어지럼증, 떨림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하면 의식이 흐려지거나 경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원인은 은행에 들어 있는 메틸피리독신, 이른바 ‘긴코톡신’이다. 이 물질은 몸속에서 비타민 B6의 작용을 방해해 신경 전달의 균형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

비타민 B6는 뇌 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조절하는 물질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 메틸피리독신이 이 과정을 방해하면 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하면서 경련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 의학계에는 은행을 다량 섭취한 뒤 구토와 발작 증상을 보인 사례가 보고돼 있다. 어린이는 체중이 적고 독성 성분에 민감할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은행 중독은 몇 알부터 반드시 발생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섭취한 양뿐 아니라 나이와 체중, 건강 상태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익히면 괜찮다? 독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 = [픽사베이]

은행은 반드시 충분히 익혀 먹어야 한다. 날것이나 덜 익은 은행에는 메틸피리독신과 청산배당체 등 자극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 가열하면 일부 유해 성분이 줄고 소화하기도 쉬워지지만, 모든 독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메틸피리독신은 열에 비교적 안정적인 성질을 지닌다. 삶거나 볶은 은행도 한꺼번에 많이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익혔으니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생각보다 “익힌 은행을 정해진 수만큼 먹는다”는 원칙이 중요하다.

은행을 먹은 뒤 반복해서 토하거나 심하게 어지럽고, 몸을 떨거나 경련하는 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119에 연락하거나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억지로 토하게 하면 토사물이 기도로 넘어갈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의료진에게는 은행을 먹은 시각과 대략적인 개수를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기름진 견과류와 다른 ‘전분 많은 씨앗’

은행은 호두나 아몬드처럼 견과류로 묶여 불리지만, 영양 구성은 조금 다르다. 지방보다 탄수화물, 특히 전분의 비중이 커서 익히면 밤과 비슷한 쫀득한 식감이 난다.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비롯해 엽산, 비타민 B2, 베타카로틴 등도 들어 있다. 탄수화물은 신체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엽산과 비타민 B군은 정상적인 세포 형성과 에너지 대사에 관여한다.

다만 은행의 영양성분을 100g 단위로 소개하는 자료를 실제 섭취량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안전을 고려하면 은행을 100g씩 먹을 일은 없어야 한다. 은행은 많은 양으로 영양소를 채우는 식품이라기보다, 밥이나 반찬에 몇 알 더해 계절의 맛과 식감을 즐기는 재료로 보는 편이 알맞다.

은행잎 추출물이 들어간 건강기능식품과 식용 은행도 구분해야 한다. 은행잎 추출물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은행 열매의 효능으로 그대로 옮겨 설명할 수는 없다. 가을 은행 몇 알을 먹는다고 특정 질환을 치료하거나 기억력이 좋아진다고 기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살아 있는 화석’이 차린 가을 식탁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병충해와 공해에 비교적 강하고 수명이 길어 사찰과 향교, 마을 어귀를 지키는 나무로도 사랑받아 왔다. 은빛 살구를 닮은 씨앗이라는 뜻에서 ‘은행(銀杏)’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우리 식문화에서는 은행을 주재료보다 귀한 고명으로 활용해 왔다. 신선로나 전골, 찜에 넣어 색을 더하고, 약밥과 영양밥에 섞어 쫀득한 식감을 살렸다. 여러 재료 사이에 황금빛 은행 몇 알을 올리는 방식은 맛과 모양을 모두 챙기면서 자연스럽게 섭취량도 조절하는 지혜였다.

가정에서는 단단한 겉껍데기를 깨고 속껍질까지 벗긴 뒤 충분히 익혀 사용한다. 마른 팬에서 굴리듯 볶거나 끓는 물에 익히면 껍질을 벗기기 수월하다. 소금을 많이 뿌리기보다는 버섯·대파와 함께 꼬치로 굽거나, 영양밥과 닭찜에 두세 알씩 넣으면 은행 특유의 고소함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껍질을 벗긴 은행은 쉽게 마르고 변질될 수 있으므로 한 번 먹을 양씩 나눠 밀폐해 냉동하는 것이 편리하다. 색이 지나치게 검게 변했거나 물러진 것, 곰팡이가 피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은 버려야 한다.

은행의 매력은 많이 먹는 데 있지 않다. 쫀득한 식감과 은은한 고소함을 몇 알로 즐기는 데 있다. 아이에게는 하루 2~3알 이내로 익혀 주고, 어른도 10알을 넘기지 않는다면 은행은 가을 밥상에 계절감을 더하는 알찬 식재료가 될 수 있다.

Cook&Chef / 송자은 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