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맛있는 약속] (14) 금호동 뒷골목의 작은 프랑스
김대식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10-22 15:01:31
[Cook&Chef = 김대식 칼럼니스트] 금호사거리에서 신금호 아파트 단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작은 뒷길.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동네에 프랑스 가정식을 내는 ‘오부이용’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낯선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부이용(bouillon)’은 프랑스어로 육수를 뜻하며, 파리에서는 서민적인 대중식당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름처럼 이 집은 격식보다 편안함이 먼저 다가온다.
“프랑스의 어느 가정집에 온 것 같네요.”
파스텔 톤 가구와 앤티크 소품이 아기자기하게 놓인 실내는 식당이라기보다 프랑스 친구의 거실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테이블 사이도 여유로워 마주 앉은 사람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좋다.
이곳은 주인장 이성대 셰프가 파리에서 경력을 쌓은 뒤 2020년 이곳에 문을 열었다. 미쉐린 가이드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공간의 분위기는 동네 단골집처럼 느긋하다. 종업원들의 접객도 다정하고 세심해 처음 온 손님도 어색하지 않다. 어떤 음식이 나와도 완벽해질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식사는 직접 구운 바게트로 시작된다. 따뜻한 빵의 껍질을 뜯자 고소한 향과 함께 김이 오른다. 버터만 발라도 접시가 금세 비어 간다. 프랑스 식탁에서 빵이 왜 중요한지 자연스레 알겠다.
프랑스식 식사는 앙트레, 메인, 디저트 순으로 이어진다. 둘이 방문한다면 앙트레와 메인, 디저트를 적절히 나눠 주문하는 것도 좋다.
첫 접시는 파테 드 캄파뉴(Pâté de campagne)다. 오리 어깨살과 간, 피스타치오를 넣은 시골풍 파테에 무화과 잼을 곁들여 바게트에 올리면 짭짤함과 달큼함이 번갈아 입안을 채운다. 부르고뉴식 에스카르고(Escargots à la bourguignonne)에서는 잘 구워진 달팽이에 마늘 향이 슬며시 올라오고, 남은 소스에는 자연스레 빵을 가져가게 된다.
양파 수프(Soupe à l’oignon)는 이 집의 얼굴이다. 달큰하게 볶아 낸 양파에 치즈가 어우러져 국물은 진하고 깊다. 한 숟갈 뜨던 일행들이 말을 건넨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다시 올 이유네요.”
주문한 메인은 뵈프 부르기뇽(Bœuf bourguignon)과 코코뱅(Coq au vin)이다. 와인에 푹 조린 소고기는 부드럽고, 코코뱅은 닭고기의 담백함에 와인 소스의 깊이가 더해진다. 퍼프 페이스트리에 토종닭과 당근 크림소스를 채운 블랑케트도 인기 메뉴다.
부야베스식 생선 수프(Soupe de poisson façon bouillabaisse)나 라따뚜이처럼 프랑스 식탁에서 익숙한 요리도 메뉴에 오른다. 익숙한 음식일수록 기본기가 드러나는 법이다. 이 집은 그 시험을 기분 좋게 통과한다.
가격은 다소 부담스럽지만 음식과 공간, 접객을 함께 생각하면 납득할 만하다. 점심은 단품 위주로 선택 가능하고, 디너 코스는 6만 원대 중반에서 9만 원대까지 3가지가 있다. 프랑스 음식은 무조건 비싸다는 선입견도 슬며시 풀린다. 음식 하나하나에 들인 손길과 식탁을 대하는 태도가 가격 이상의 경험을 만든다.
골목을 나서는 길, 뒤돌아보니 작은 간판의 불빛이 따뜻하다. 누군가의 인생 맛집을 묻는 일이 결국 그 사람의 시간을 묻는 일이라면, 오늘은 나 역시 한 곳을 더 보태게 됐다. 금호동 골목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게 새삼 고맙다. 어느샌가 기념일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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