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열의 '음식잡설(雜說)'] (13) 밥장사 안 망하는 법
신상열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9-28 15:02:19
매일 똑같은 음식을 내는 게 장사다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15년쯤 전, 5년 동안 정육식당을 운영했다. 일산에 있던 1호점이 제법 입소문을 타 강남까지 진출했으니 장사는 제법 되었다.
당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다.
지금 다시 장사를 한다면 그때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입맛’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사람들의 입맛은 정말 다 다르다.
라면만 봐도 그렇다.
가장 맛있는 라면이 있다면 편의점 매대에는 그 라면 하나만 놓여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라면도 있고 진라면도 있다. 삼양라면도 있고 안성탕면도 있다. 굵은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너구리가 있고, 컵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왕뚜껑도 있다.
각자 좋아하는 이유도 다르다.
누군가는 매운맛 때문에 신라면을 먹고, 누군가는 진라면의 맛(순한맛과 매운맛도 중요하다)이 더 입에 맞는다. 안성탕면의 구수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구리의 굵은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라면 종류를 고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같은 라면도 끓이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나는 성미 때문인지 덜 끓인 라면을 좋아한다. 면이 아직 조금 덜 익었다 싶을 때 먹는다. 물도 봉지 뒷면에 적힌 양보다 항상 조금 덜 넣는다.
컵라면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냥 먹는다.
반면 어머니는 푹 익은 라면을 좋아하신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
오래 끓여서 푹 익은 것은 좋아하시는데, 끓이지 않고 그냥 놔둬서 푹 퍼진 라면은 싫다고 하신다. 같은 푹 익은 면인데도 다르단다.
스프를 먼저 넣느냐, 면을 먼저 넣느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더 복잡해진다.
계란을 풀어야 맛있다는 사람이 있고 국물이 탁해진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파를 넣는 사람도 있고 마늘까지 넣는 사람도 있다.
냄비도 중요하다.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이 이상하게 더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화력과 냄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노란 양은냄비에 끓여야 라면 맛이 난다는 이야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환경이나 조리도구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으니 굳이 양은냄비를 고집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라면 한 그릇에도 경우의 수가 엄청나다.
사람의 입맛이라는 게 이렇게 제각각이다.
그러니 식당을 하는 사람이 모든 손님의 입맛을 맞춘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정육식당을 할 때도 그랬다.
누군가는 지방이 적당히 섞인 고기를 좋아했고 누군가는 담백한 고기를 좋아했다.
된장찌개도 마찬가지였다.
진하고 짭짤해야 맛있다는 사람이 있었고 조금만 짜도 숟가락을 내려놓는 사람이 있었다(맛이 없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일부러 짜게 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가게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맛을 계속 맞추었어야 했다.
손님이 어느 날 우연히 가게에 들어왔다.
고기가 맛있다. 된장찌개가 자기 입맛에 딱 맞는다.
파절이도 맛있고 김치도 괜찮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온다.
두 번 오고 세 번 오다 보면 단골이 된다.
그 손님에게는 이미 ‘우리 가게의 맛’이라는 기준이 생긴 것이다.
우리 가게는 그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정육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고기의 품질부터 들쭉날쭉했다.
어떤 날은 정말 좋은 고기가 들어왔고 어떤 날은 그보다 못했다.
반찬은 더 어려웠다.
식당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주방에서 반찬을 해주는 이모들이 자주 바뀐다.
대체로 찬모라는 이분들은 성격이 불같다. 그리고 자주 그만둔다.
이모가 바뀔 때마다 된장찌개 맛도 바뀌었다.
지난달에는 구수했던 된장찌개가 이번 달에는 짜다.
김치 맛이 달라지고 파절이 양념이 달라지고 밑반찬의 간도 조금씩 달라진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 차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손님은 안다.
특히 자주 오는 손님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사장님, 오늘 고기가 지난번하고 다른 것 같은데요?”
“된장찌개 맛이 바뀌었네요.”
“반찬하시는 분 바뀌셨어요?”
그때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귀찮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손님들이었다.
맛이 달라졌다고 말해주는 손님은 그래도 우리 가게에 계속 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말 무서운 손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고기가 지난번보다 못해도 말하지 않는다.
된장찌개 맛이 달라져도 따지지 않는다.
그냥 먹고 계산한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는다.
지난번에 맛있었던 음식이 오늘은 그 맛이 아니었던 것이다.
맛은 취향이다.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대신 한 번 우리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다음에 왔을 때도 똑같이 맛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게 장사다.
지금 다시 식당을 한다면 가장 먼저 된장찌개부터 계량할 것 같다.
된장 몇 그램.
물 몇 밀리리터.
고춧가루 몇 그램.
두부는 얼마나 넣을지.
몇 분을 끓일지.
고기도 마찬가지다.
그날그날 ‘좋은 고기’를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가게에서 내놓을 수 있는 고기의 기준부터 정할 것이다.
반찬도 이모의 손맛에만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주방에 들어와도 어제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어야 한다.
15년 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한 번 맛있게 만드는 것은 솜씨지만, 매일 같은 맛을 내는 것은 장사다.
누군가 식당을 시작한다고 하면 말해주고 싶다.
항상 같은 음식을 내어놓자.
엄청나게 맛있지 않아도 된다.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해도 된다.
우리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제 먹었던 그 맛을 오늘도 내어놓고, 오늘 먹었던 그 맛을 다음 달에도 내어놓을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만 해도 단골이 생긴다. 그리고 그 단골이 쉽게 떠날 이유 하나는 없어진다.
그러면 최소한, 맛이 변해서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점심으로 내 입맛에 맞게 진라면 순한맛을 꼬들하게 먹을 것이다. 다행히 라면은 아무 곳이나 가서 사면된다. 장사는 생각할수록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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