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부산 촌사람이 ‘돼지국밥’ 대신 찾은 것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8-24 15:06:17

낯선 타향에서 만난 진한 국물(汁)… 벤또집 ‘톤지루’와 부산 ‘돼지국밥’의 평행이론

[Cook&Chef = 이승우 기자] 타국에서 장기간 학업이나 업무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종종 고향 음식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끼곤 한다. 나 또한 부산 출신으로서 일본 거주 기간 중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돼지국밥’과 ‘밀면’이었다.

작정하고 한인 타운에 가면 어찌어찌 비슷한 맛을 내는 가게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바쁜 일상 속 평범한 거리에서 가볍게 들르기에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쌀쌀한 기운이 옷깃을 파고들 무렵, 따끈한 돼지국밥을 향한 나의 오랜 갈증을 달래주었던 것은 뜻밖에도 동네 〈오리진 벤또(Origin Bento)〉에서 파는 소(小)자 ‘톤지루(豚汁·돼지고기 된장국)’였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당시 오리진 벤또의 톤지루는 손님이 직접 국자로 퍼 담는 방식이었다. 그 덕분에 가장 작은 소(小)자 용기를 주문해 놓고 꾹꾹 눌러 건더기만 산더미처럼 듬뿍 채워 담았던 나의 소박하고도 작은 치사함을 이 자리를 빌려 뒤늦게 고백해 본다.

돼지국밥을 쏙 빼닮은 묵직한 한 그릇, ‘톤지루’

일본의 밥상에 흔히 오르는 국민 국물 요리인 ‘미소시루(된장국)’와 톤지루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미소시루가 미역이나 두부 등을 넣어 가볍게 끓여낸 맑고 산뜻한 곁들임 찬에 가깝다면, 톤지루는 얇게 썬 돼지고기와 무, 당근, 우엉, 곤약 등 뿌리채소를 듬뿍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이른바 기름지고 묵직한 ‘요리’다.

채소에서 우러나온 은은한 단맛과 돼지고기 특유의 고소한 지방이 미소(된장)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진득하고 깊은 국물 맛. 그것은 뚝배기에서 펄펄 끓어오르며 식도를 뜨겁게 데워주던 고향의 돼지국밥을 떠올리기에 충분할 만큼 든든하고 위안이 되는 맛이었다.

가혹한 환경이 빚어낸 서민들의 소울푸드

톤지루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메이지 시대 이후 육식 금지령이 해제되면서 적은 양의 고기로 영양과 열량을 든든하게 채우기 위해 발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홋카이도나 도호쿠 같은 추운 지방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기름지고 따뜻한 국물이 필요했던 서민들의 치열한 지혜가 담겨 있다.

이는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모여들며, 비교적 구하기 쉬웠던 돼지 뼈와 부산물을 푹 고아내어 주린 배를 채웠던 돼지국밥의 역사적 서사와 묘하게 겹쳐진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단한 삶을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장 치열하고 따뜻한 ‘생존의 미식’이라는 점에서 두 음식은 국경을 초월해 타향살이 중인 한 부산 남자에게 짙은 유대감을 안겨주었다.

미소시루와는 다른, 기름지고 투박한 위로

정갈하고 가벼운 미소시루가 일본 미식 특유의 단정한 맛을 대변한다면, 투박하고 기름진 톤지루는 지친 하루 끝에 허기진 속을 묵직하게 채워주는 뚝배기의 돼지국밥 그 자체이다.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국물을 들이켜다 보면, 뭉텅하게 썰어낸 곤약과 우엉, 그리고 간간이 씹히는 돼지고기가 전해주는 식감 역시 투박하지만 직설적이다.

무더위가 가시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때, 톤지루는 허기진 몸은 물론 가벼워진 지갑 사정까지 든든하게 달래줄 굉장히 적합한 선택이다(오리진 벤또 기준 단돈 157엔). 낯선 타국의 거리를 걷다 문득 진득하고 든든한 부산의 돼지국밥 한 그릇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부산 사람이라면 가까운 도시락 전문점이나 식당에 들러 톤지루를 주문해 보자. 미소와 돼지기름이 완벽하게 융화된 투박한 한 그릇이 당신의 스산해진 마음과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다정하게 녹여줄 것이다.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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