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엔 갯장어로 더위를 혼내줄까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07-24 15:01:24
회와 샤브샤브 등 다양한 요리로 즐겨
[Cook&Chef = 서진영 기자]7월 25일은 중복이다. 삼복더위가 한복판으로 접어드는 무렵, 남해안의 식탁에서는 갯장어가 제철을 맞는다. 여수와 고흥, 경남 고성 일대에서 즐겨 먹는 갯장어는 살이 희고 담백한 여름 바닷장어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참장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뜨거운 육수에 살짝 익힌 갯장어는 부드럽게 결이 풀리고, 양파와 부추, 버섯을 곁들이면 기름진 보양식과는 다른 산뜻한 여름의 맛을 낸다.
갯장어는 뱀장어목 갯장어과에 속한다. 우리가 장어라고 부르는 생선은 한 가지가 아니다. 강과 바다를 오가는 민물장어, 바다 모래밭과 연안에 사는 붕장어, 남해안 여름 밥상에서 사랑받는 갯장어, 부산의 꼼장어구이로 익숙한 먹장어가 모두 장어라는 이름 아래 놓인다. 그러나 이들은 사는 물길도, 생김새도, 살의 결도 다르다. 같은 장어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지역의 부엌에서는 서로 다른 칼질과 불, 국물과 양념을 만났다.
조선 후기의 어류 기록에도 갯장어로 풀이되는 이름이 보인다. 『자산어보』에는 견아려(犬牙鱺)가 기록되어 있다. 개 이빨을 닮은 장어라는 뜻으로, 속명은 개장어라 했다. 길게 뻗은 주둥이와 사나운 이빨은 갯장어의 생김새를 떠올리게 한다. 『동의보감』의 해만(海鰻) 역시 현대 자료에서 갯장어와 연결해 설명된다. 문헌 속 이름은 갯장어가 오래전부터 우리 연안의 어류 지식 안에 들어와 있었음을 알려 준다. 기록은 생선을 남겼고, 음식은 산지의 손끝과 계절의 입맛 속에서 다듬어졌다.
갯장어는 손질이 맛을 좌우한다. 살은 희고 담백하지만 잔가시가 많아 섬세한 칼질이 필요하다. 촘촘히 칼집을 넣은 살을 뜨거운 육수에 잠깐 담그면 살결이 오그라들며 부드럽게 익는다. 여수와 고흥에서는 갯장어를 회와 데침회, 샤부샤부로 즐겨 먹었다. 데친 갯장어는 양파 위에 얹고, 부추와 버섯을 곁들인다. 초장, 간장 양념, 된장 양념은 지역과 집집의 입맛에 따라 달라진다. 살의 단맛과 채소의 향이 어우러져 더위에 무거워진 입맛을 가볍게 깨운다.
경남 고성의 갯장어는 국물과 향채로 맛을 낸다. 고성식 장어탕은 갯장어에 방아잎, 고사리, 숙주, 어린배추를 넣고 된장과 산초 향을 더해 끓인다. 방아잎은 갯장어의 담백한 살을 산뜻하게 받치고, 된장은 국물에 구수한 맛을 더한다. 산초의 알싸한 향까지 더해지면 바다 생선과 산야의 나물이 한 그릇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고성의 장어탕은 경상도 연안에서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 먹은 향토음식이다.
장어 음식은 남해안 갯장어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해와 강 하구의 민물장어는 숯불 위에서 맛을 냈다. 전북 고창의 풍천장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드나드는 하구의 생태를 품은 장어다. 소금구이는 장어 살의 기름기와 탄력을 곧게 살리고, 양념구이는 담백한 살에 매콤달콤한 맛의 재미를 더했다. 나주 구진포의 장어 역시 영산강 물길과 포구의 기억 속에서 장어구이의 명맥을 지켜 왔다.
부산과 기장에서는 붕장어와 먹장어가 독자적인 맛을 냈다. 기장의 붕장어회는 뼈째 잘게 썬 살을 물에 깨끗이 씻어 핏기와 기름기를 빼고, 수분을 바짝 짜내어 눈꽃처럼 고슬고슬하고 쫄깃한 식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부산에서는 양파에 장을 곁들여 붕장어회를 먹는 상차림도 익숙하다. 붕장어는 회뿐 아니라 장어탕, 소금구이, 양념구이, 조림으로도 먹는다. 갯장어가 부드러운 데침의 맛을 살린다면, 붕장어는 물기를 덜어 낸 회의 식감과 불향이 배어든 구이로 다른 즐거움을 준다.
먹장어는 부산의 시장과 밤 문화를 대표하는 장어 음식이다. 자갈치시장 일대의 꼼장어 골목은 부산을 찾는 이들이 오래도록 기억하는 식탁이고, 부전역 앞 곰장어 거리 역시 양념구이와 석쇠구이, 소금구이, 통구이로 이름나 있다. 철판 위에서 매운 양념에 볶거나 석쇠 위에서 구워 낸 꼼장어는 갯장어의 맑은 데침회와 전혀 다른 맛을 낸다. 항구의 불빛, 시장의 활기, 연탄불의 향이 부산식 장어구이에 짙게 스며 있다.
이처럼 장어는 하나의 보양식으로 묶기 어렵다. 고창과 나주의 장어는 강 하구의 숯불구이로, 여수와 고흥의 갯장어는 데침회와 샤부샤부로, 고성의 갯장어는 방아잎 향이 감도는 장어탕으로 즐겨 먹었다. 기장의 붕장어는 회와 구이로, 부산의 먹장어는 양념과 석쇠의 음식으로 사랑받았다. 어느 물길에서 잡혔는지, 잔가시를 어떻게 다뤘는지, 국물에 익혔는지 불에 구웠는지에 따라 장어의 맛은 지역마다 달라졌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