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탐구] 신선이 먹고, 귀신이 피한 복숭아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08-04 15:03:09

넷플릭스 〈동궁〉의 동도지에서 왕실의 유월도와 봄술 도화주까지 보물 제1442호 〈일월반도도 병풍〉,해와 달(일월)을 배치해 왕권의 존엄과 나라의 영원한 태평성대와 신선의 복숭아(반도)를 통해 왕실의 불로장생(만수무강)과 악귀·액운을 몰아내는 벽사의 염원을 담았다.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국가유산청 

[Cook&Chef = 서진영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에서 남주혁이 연기한 구천은 귀의 세계를 넘나들며 궁궐에 깃든 저주를 파헤친다. 귀신과 맞서는 그의 손에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가 들려 있다. 칼 대신 나뭇가지를 사용하는 장면은 오컬트 사극의 기묘한 설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옛사람들은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에 귀신과 부정을 물리치는 강한 양기가 깃든다고 믿었다. 이를 동도지(東桃枝)라 불렀다.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에서 남주혁이 연기한 구천은 귀의 세계를 넘나들며 궁궐에 깃든 저주를 파헤친다. 귀신과 맞서는 그의 손에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가 들려 있다.  사진 = 넷플릭스

복숭아는 중국 황허강과 양쯔강 유역에서 시작된 과일이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 재배되며 수밀도와 천도, 납작한 반도 등 여러 형태로 갈라졌고, 기원전 4세기부터 1세기 사이 실크로드를 따라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로 전해졌다. 페르시아 복숭아라는 뜻을 품은 학명 Prunus persica에는 이러한 전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도 복숭아의 역사는 깊다. 충주 조동리 선사유적의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쌀과 보리, 밀, 조, 도토리와 함께 복숭아씨가 출토됐다. 집터와 불을 피운 자리에서 측정된 연대는 약 2700년에서 3000년 전이다. 당시 남한강 유역에 살던 사람들은 농경과 어로를 병행하며 여러 곡물과 열매를 이용했다. 그들의 생활 터전 안에 복숭아도 있었다.

복숭아씨는 생활유적뿐 아니라 무덤에도 남았다. 김해 대성동 10호분에서는 복숭아씨 65개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가야의 장송 의례에서 복숭아를 무덤에 넣은 사례로, 죽은 이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고 악귀를 물리치려는 뜻을 담았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먹을거리였던 복숭아가 죽은 이를 위한 의례물로도 쓰인 것이다.

문헌에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복숭아가 등장한다. 온조왕 3년인 기원전 16년 겨울, 우레가 치고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었다는 기록이다. 봄에 피어야 할 꽃이 겨울에 핀 일을 이변으로 적었으니, 당시 사람들은 복사꽃의 개화 시기를  알고 있었을것다.

조선시대에는 복숭아의 품종도 세분됐다. 허균이 1611년 무렵 집필한 『도문대작』에는 다섯 품종이, 18세기 농서인 『해동농서』에는 아홉 품종이 기록됐다. 오늘날처럼 품종명과 당도, 식감을 세밀하게 구분하지는 않았어도 산지와 생김새, 숙기에 따라 서로 다른 복숭아를 가려 먹었다.

복숭아나무의 강한 벽사력은 민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1506년 『연산군일기』에는 해마다 늦봄과 가을에 역질 귀신을 쫓을 때 복숭아나무로 만든 칼인 도검(桃劍)과 판자인 도판(桃板)을 사용하라는 명이 실려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역귀를 몰아내는 국가 의식에도 복숭아나무가 동원됐다.

그중에서도 동도지는 특별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방향으로 여겼으며, 그쪽으로 자란 가지는 축귀와 벽사에 알맞은 재료가 됐다. 무당은 동도지로 악귀를 내쫓았고,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인 도부를 문에 붙여 액운을 막았다. 〈동궁〉에서 구천이 복숭아 가지를 퇴마의 무기로 사용하는 장면에는 이 오래된 믿음이 배어 있다.

나무가 귀신을 몰아냈다면 열매는 장수를 가져왔다. 중국 신화에서 불로장생을 관장하는 서왕모는 곤륜산 반도원에서 신선의 복숭아를 길렀다. 수천 년 만에 익는 반도(蟠桃)를 먹으면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이야기다. 복숭아는 이 설화를 통해 인간의 수명을 넘어서는 천상의 과일이 됐다.

《평양감사향연도》 중 〈부벽루연회도〉의 헌반도 공연. 네 명의 기녀가 선도반을 올리며 장수를 축원하는 모습으로, 평양 교방에서도 헌반도가 연행됐음을 전한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서왕모가 선도를 바치는 이야기는 고려와 조선의 궁중무용인 헌선도(獻仙桃)로 이어졌다. 선모가 신선의 복숭아를 은쟁반에 담아 잔치의 주빈에게 올리고 장수를 송축하는 춤이다. 왕실의 생신 잔치와 각종 연향에서 기녀와 무동이 공연했으며, 1795년 『을묘정리의궤』에도 헌선도의 유래와 구성이 기록됐다. 복숭아는 왕실 잔치에서 먹는 과일이기 전에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례의 중심물이었다.

왕실은 실제 복숭아도 계절에 맞춰 진상받았다. 1529년 경기 지역의 과수원이 혹독한 추위로 피해를 입자 유월도(六月桃)의 진상이 문제가 됐다. 당시 유월도는 세 차례에 나누어 올리던 과일이었다. 첫 번째 진상은 마쳤지만 두 번째 물량을 마련하기 어려워지자 중종은 더 이상 봉진하지 말라고 명했다. 부족한 복숭아를 억지로 거두면 백성에게 폐가 돌아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음력 6월에 익는 복숭아는 왕실의 제철 과실이면서 산지의 작황과 진상 행정이 얽힌 품목이었다. 

장수를 축원하는 왕실 잔치에는 복숭아가 올랐지만, 민간의 제사상에서는 이를 피했다. 복숭아나무의 기운이 잡귀뿐 아니라 제사를 받으러 온 조상신까지 물러나게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집 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 풍습도 같은 믿음에서 나왔다. 복숭아는 복을 빌 때 가까이 두고 조상을 맞을 때는 물리는 과일이었다.

복숭아의 꽃과 가지는 술독에도 들어갔다. 『증보산림경제』와 『규합총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기록된 도화주는 복사꽃이 피는 때에 맞춰 빚는 계절주다. 정월에 멥쌀가루를 끓는 물로 익혀 누룩과 밀가루를 섞은 밑술을 담그고,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까지 기다렸다.

꽃이 피면 멥쌀과 찹쌀로 고두밥을 찌고, 새 항아리 바닥에 복사꽃을 깔았다. 여기에 밑술과 고두밥을 넣은 뒤 복숭아나무 가지 서너 개를 술독 가운데에 꽂아 익혔다. 술이 발효되면서 항아리 바닥에 깔렸던 꽃은 다시 위로 떠올랐다. 봄의 절정에 핀 꽃과 정월부터 익어 온 밑술이 한 독에서 만나는 술이었다.

<도화주(桃花酒)>란 덧술 때 부재료로서 복숭아꽃을 넣어 빚은 술인데 정월에 밑술을 만들고 복숭아꽃이 필 때 덧술하는 일이다. 사진=램프쿡

도화주는 복숭아 향을 더한 과실주가 아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덧술을 하고, 복사꽃과 나뭇가지를 발효 과정에 직접 사용한 곡주다.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막는 의례의 재료이면서 왕실에 올리는 과실이었고, 봄에는 술의 맛과 계절을 완성하는 재료가 됐다.

복숭아 한 알에는 이 긴 시간이 겹쳐 있다. 식재료의 역사는 조리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무엇을 귀하게 올렸고, 어느 자리에서 피했으며, 꽃과 가지까지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살필 때 음식은 한 시대의 믿음과 생활을 기록한 문화가 된다. 복숭아는 그 역사를 품고 오늘의 여름까지 온 과일이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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