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한복·판소리로 다시 읽는 한창기…‘한국다움’을 묻다
송미연 기자
cnc02@hnf.or.kr | 2026-10-08 15:02:03
잡지와 생활문화, 기록으로 돌아본 한창기의 문화적 시선
[Cook&Chef = 송미연 기자] ‘뿌리깊은나무 발행인 한창기 학술대회’가 7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뿌리깊은나무』 창간 50년과 한창기 탄생 90년을 기념한 이번 학술대회는 ‘한창기와 한국다움의 발견-한글·한복·판소리·공예로 다시 읽는 한국의 미의식’을 주제로 진행됐다.
1976년 창간된 『뿌리깊은나무』는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도입하고, 당시 잡지에서 쉽게 주목하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민속, 생활문화를 지면에 담았다. 한창기는 이후 1984년 『샘이깊은물』을 창간하며 이러한 관심을 생활문화 전반으로 넓혀갔다. 판소리 감상회와 음반 제작, 민속품 수집 등을 통해서도 우리 문화의 가치를 기록하고 알렸다.
기조발제를 맡은 백동민 한국잡지협회 회장은 ‘한창기와 잡지혁명: 한국 잡지사적 의미’를 통해 한창기가 잡지의 언어와 내용, 편집 방식, 독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바꿨는지 살폈다. 한글과 가로쓰기를 도입해 읽는 방식을 바꾸고, 유명 인물보다 생활과 전통에 주목했으며 사진과 활자, 여백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백 회장은 정보가 넘쳐나는 AI 시대에도 이러한 편집 철학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정보를 더 많이 전달하기보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려내고, 흩어진 사실에 맥락을 부여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제발표에서는 한창기가 한글과 한복, 판소리, 공예 등 우리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록했는지를 분야별로 살폈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한창기의 한글 전용 정신을 한글서예의 가치와 연결했다. 한글과 한국어의 표현력을 살리려 했던 한창기의 태도를 전통을 지키면서도 오늘의 방식으로 이어가려는 실천으로 해석했다.
송미경 서울여대 명예교수는 한복의 생활화와 문화정체성에 주목했다. 한창기는 전통 한복을 전시하거나 보존하는 데 그치는 옷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입고 이어가는 문화로 바라봤다. 『뿌리깊은나무』 지면에서는 전통 직조와 염색, 침선 장인의 삶을 기록하고 계절별 한복과 생활 속 복식을 소개했다.
판소리 분야에서는 기록과 전승의 의미가 강조됐다.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대표는 1970년대 판소리 감상회가 공연에 그치지 않고 해설과 기록을 통해 판소리 전승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감상회는 1974년부터 1978년까지 100회 이어지며 판소리와 명창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배 대표는 종합토론에서 “판소리가 조선시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만 판소리는 언제나 현대 음악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판소리 역시 언어처럼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해 왔다며, 오늘날 판소리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1970년대 기록물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예와 생활문화에 대한 한창기의 시선은 식생활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목수현 미술사학자는 한창기가 짚신과 반짇고리 같은 생활용품뿐 아니라 소반과 밥그릇, 놋그릇, 항아리, 채반, 다식판과 떡살 등 일상의 식생활 도구를 폭넓게 수집했다고 설명했다.
목 미술사학자는 한창기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았던 기억도 소개했다. 손님에게 큰 상 하나를 차리는 대신 1인용 소반에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을 따로 내는 방식이었다. 한창기가 물건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식사 예법과 생활방식까지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잡지에서는 음식과 함께 놋그릇과 사기그릇, 자배기, 항아리, 채반 등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옛 물건이 현재의 생활에서 다시 바라보게 했다. 목 미술사학자는 종합토론에서 한창기의 수집을 돌아보며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진 가치를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살았던 삶이 버려질 필요가 없다. 얼마든지 가치를 살려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유정 성북문화재단 2030문화비전사업팀장은 앞선 사례 발표에서 ‘성북 신문인사 프로젝트’를 통해 한창기가 남긴 기록과 사물, 장소를 동시대 예술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 작업을 소개했다. 종합토론에서는 한창기가 한 시대에 갇히지 않고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되고 표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에서는 전통을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재의 삶에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한글은 읽고 쓰는 언어로, 한복은 입는 옷으로, 판소리는 변화하는 음악으로, 생활도구는 다시 쓰이는 물건으로 바라본 한창기의 시선도 여기에 닿아 있었다.
반세기 전 한창기가 주목했던 것은 우리 곁에 있던 언어와 옷, 소리와 생활도구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가 남긴 기록과 실천을 통해 ‘우리 것’을 오늘의 삶에서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다시 묻는 자리였다.
Cook&Chef / 송미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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