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미학이 한 꼬치에 피어난 이야기, 화양적

이지헌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1-10 11:11:59

화양적  사진=한식진흥원

‘화양(華陽)’이라는 이름에 깃든 의미

조선의 잔칫상에는 언제나 색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붉고 노랗고 초록빛이 어우러진 화려한 꼬치, 바로 화양적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화양(華陽)’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깊은 뜻을 품고 있다. 언어적으로는 ‘햇살 아래 화려함’, ‘양지바른 온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말의 뿌리는 더 오래전 고대 중국 경전인 『서경(書經)』의 「무성편(武成篇)」에서 찾을 수 있다. “말을 화산 남쪽으로 돌려보내고(歸馬于華山之陽), 소를 도림의 들에 풀어놓았다(放牛于桃林之野), 천하에 무력을 쓰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示天下弗服).”

이는 주(周)나라 무왕이 은(殷)의 폭군 주왕을 멸한 뒤, 전쟁의 종식을 선언하며 평화를 선포한 대목이다. 그때 ‘화산의 남쪽(華山之陽)’은 곧 무력이 아닌 덕으로 다스리는 세상, 즉 조화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결국 화양적은 단지 미색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조화롭게 품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철학을 담고 있다.

오행의 색, 조선 음식의 세계관

조선의 음식 철학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사상 위에 서 있었다. 오행의 색은 방위·계절·덕목과 긴밀히 대응했는데, 청(靑)은 동쪽과 봄, 적(赤)은 남쪽과 여름, 백(白)은 서쪽과 가을, 흑(黑)은 북쪽과 겨울, 황(黃)은 중앙과 균형에 대응한다. 

화양적은 바로 이 오방색의 질서를 한 꼬치에 구현한 음식이다. 『규합총서(閨閤叢書, 1809년경)』에는 “쇠고기를 곱게 저며 간장·참기름·후추로 간하여, 채소를 섞어 꿰어 구우면 색이 화려하여 화양이라 이름한다.”라고 적혀 있다. 즉, 붉은 고기, 노란 달걀 지단, 초록 대파, 흰 도라지, 갈색 표고버섯이 어우러진 한 꼬치는 단순한 색의 조합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품은 작은 우주였다.

왕의 상에 오른 조화의 상징, 화양적

화양적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쓰인 것은 아니다. 18세기 중엽 영조대의 『수작의궤(需酌儀軌, 1765)』에는 “어음적(於音炙)”이라는 이름의 유사한 구이요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약 30년 뒤 정조 19년(1795)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서는 그 이름이 ‘화양적(華陽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변화는 음식의 이름이 단순한 재료 중심에서 상징과 미학 중심의 언어로 바뀐 흐름을 보여준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생저육 7근, 저심육 5근, 양 반부, 달걀 50개, 표고·미나리·당근 각색 채소 다수.”라고 화양적의 재료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화양적의 고임(器物 높이)을 “1자 6치”로 명시했다. 이는 궁중 연회에서 가장 격이 높은 음식에만 허락된 높이였다.

화양적은 왕의 수라상에서 중앙이나 좌반(左盤)에 놓였는데, 이는 단순히 미식의 중심이 아니라 왕이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상징적 위치였다. 오색 꼬치의 질서는 곧 나라의 질서를 상징했고, ‘화양’의 이름은 곧 전쟁 없는 조화의 세상을 상징했다.

여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품격의 음식

궁중 밖에서의 화양적은 사대부가 여인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예의와 품격의 음식으로 이어졌다.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장계향, 17세기)』은 고기를 가늘게 저며 양념에 재운 뒤 채소와 함께 꿰어 굽는 적류(炙類)의 조리법을 전한다. 이는 화양적의 원형적 조리법이다. 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에서는 “혼례상에 적을 올리되, 색을 맞추어 아름답게 하며 이를 화양이라 칭한다.”라고 기록했다. 

즉, 화양적은 가정의 화합과 덕을 기원하는 길상의 음식이었다. 왕의 상에서는 국가의 질서를, 사대부가의 상에서는 가정의 조화를 상징했다. 또한 화양적은 잔칫상의 미학을 넘어, 여성의 섬세함과 교양을 드러내는 음식으로도 여겨졌다. 꼬치 하나에도 예법과 미감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화양적 만드는 방법

1. 당근, 도라지는 6x1x0.6cm로 썰어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구고 수분을 제거한다.

2. 오이는 씨 부분을 제거한 후 6x1x1cm로 썬 후 소금을 뿌려 절인다.

3. 다진 마늘, 다진 파, 간장, 설탕, 참기름, 깨소금, 후춧가루를 섞어 갖은 양념을 만든다. 

4. 마른 표고버섯은 뜨거운 물에 불린 후 기둥을 자르고 6x1cm로 썬다. 갖은 양념으로 간한다. 

5. 소고기는 7x1.5x0.4cm로 썬다. 갖은 양념으로 간한다. 

6. 잣은 고깔을 떼고 다져 잣가루로 만든다. 

7. 달걀은 노른자를 분리해 황색 지단을 만든 후 6x1x0.6cm로 썬다. 

8. 도라지→오이→당근→표고버섯→소고기 순으로 볶는다. 

9. 산적 꼬치에 도라지→표고버섯→황색 지단→오이→소고기→당근 순으로 꽂는다. 꼬치의 양쪽 1cm만 남기고 자른다. 

10. 접시에 화양적을 담고 잣가루를 뿌린다. 

화양적은 조선의 궁중음식 중 가장 시적인 이름을 가진 음식이라 생각된다. 그 한 꼬치에는 오행의 질서와 오색의 미학, 그리고 『서경』의 평화 철학이 함께 녹아 있다. ‘화양’이라는 이름으로 전쟁 없는 세상, 덕으로 다스리는 나라, 다름을 품는 조화로운 사회를 상징했다. 화양적은 색으로 세상을 굽고, 조화로 덕을 구운 음식이었다. 조선의 미식은 혀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음미하는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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