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인문학] 와인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7-24 15:02:19

조지아에서 기원전 6000년 와인의 토기 발견 엠버와인과 음식들 / 사진 = wine of GEORIGIA

[Cook&Chef = 신현우 기자] 와인을 떠올리면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먼저 생각난다. 세계적인 와인 산지와 유명 품종, 오랜 양조 전통을 가진 두 나라는 오늘날 세계 와인 산업과 문화를 대표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포도 와인의 흔적을 따라가면 유럽 서쪽이 아닌 남캅카스의 작은 나라 조지아에 도착한다.

조지아에서는 기원전 6000년 무렵 포도 와인을 담았던 것으로 해석되는 신석기시대 토기가 발견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포도 와인의 화학적 증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례다. 그렇다면 조지아에서는 언제부터 와인을 빚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조지아 와인은 다른 나라의 와인과 무엇이 다를까.

이란에서 조지아로 바뀐 와인의 역사

조지아 가다크릴리 고라(Gadachrili Gora) 유적 발굴 현장. 이곳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토기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포도 와인의 화학적 증거가 발견됐다. / 사진=Stephen Batiuk, University of Toronto

조지아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 와인의 흔적으로 알려진 곳은 이란 북서부 자그로스산맥의 하지 피루즈 테페(Hajji Firuz Tepe)였다.

이곳에서 출토된 기원전 5400~5000년경 토기의 잔류물에서는 포도와 와인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주석산과 테레빈스 나무 수지 성분이 확인됐다. 연구자들은 이 토기에 포도 와인이 담겼으며, 나무 수지는 술의 변질을 늦추는 보존재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고, 향미를 더하기 위한 용도였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하지만 2017년 국제 공동연구진이 발표한 연구를 통해 와인의 역사는 다시 쓰이게 됐다.

연구진은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남쪽의 가다크릴리 고라(Gadachrili Gora)와 슐라베리 고라(Shulaveris Gora)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대형 토기를 분석했다. 토기에서는 포도와 포도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석산을 비롯해 사과산, 숙신산, 구연산 등 여러 유기산이 확인됐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유적의 시기는 기원전 6000~5800년경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토기에서 확인된 화학적 잔류물과 당시의 기후·식생, 고고식물학 자료를 종합해 이 토기에 포도 와인이 담겼던 것으로 해석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포도 와인의 화학적 증거가 조지아에서 발견된 것이다.

물론 이 발견이 인류 최초의 와인이 조지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영원히 확정한 것은 아니다. 고고학에서 ‘최초’는 현재까지 발견된 증거를 기준으로 한 표현이다. 앞으로 더 오래된 유적이 발견된다면 와인의 기원에 관한 기록 역시 다시 바뀔 수 있다.

땅속 항아리에서 익어가는 조지아 와인

조지아의 풍경과 크베브리 / 사진 = wine of GEORIGIA

조지아가 특별한 이유는 가장 오래된 와인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조지아에서는 흙으로 만든 대형 항아리인 크베브리(Qvevri)를 이용해 와인을 발효하고 숙성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크베브리는 와인의 발효와 숙성, 저장에 사용하는 달걀 모양의 대형 토기로, 전통적으로 땅속에 묻어 사용한다. 카헤티 지역의 전통 양조에서는 포도를 압착한 뒤 포도즙과 껍질, 씨, 줄기를 크베브리에 넣어 발효한다. 알코올 발효가 끝나 포도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용기를 밀폐하고 이듬해 봄까지 침용과 숙성을 이어가기도 한다. 다만 포도 고형물의 사용 비율과 발효·숙성 기간은 지역과 생산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

현대 양조와 전통 양조가 섞여진 양조장 실내 사진 / 사진 = wine of GEORIGIA

이처럼 포도 재배부터 크베브리의 제작과 관리, 와인의 발효와 숙성에 이르는 지식은 가정과 공동체를 통해 세대를 거쳐 전승돼 왔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2013년 ‘고대 조지아 전통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다만 신석기시대에 출토된 토기를 오늘날의 크베브리와 동일한 용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 약 8천 년 전 조지아에서 포도 와인의 흔적이 남은 토기가 발견됐다는 사실과, 오늘날 조지아 전역에서 크베브리를 이용한 전통 양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렌지 빛, 앰버 와인

오렌지 빛이 나는 엠버와인 / 사진 = wine of GEORIGIA

크베브리 방식으로 만든 조지아 와인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술 가운데 하나가 앰버 와인이다.

일반적인 화이트와인은 포도 껍질과 씨를 제거한 뒤 즙만 발효한다. 반면 조지아의 전통적인 크베브리 양조에서는 백포도의 즙을 껍질과 함께 장기간 침용하고 숙성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껍질과 씨에서 색과 페놀성 성분, 탄닌이 추출되면서 와인은 황금색에서 짙은 호박색을 띠고 일반 화이트와인보다 뚜렷한 질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와인을 조지아에서는 주로 ’앰버 와인(Amber Wine)’이라고 부른다. 국제 와인 시장에서는 ’오렌지 와인(Orange Wine)’이라는 명칭도 널리 사용된다.

앰버 와인은 일반적인 화이트와인보다 색이 짙고 탄닌감이 뚜렷하다. 품종과 양조 방식에 따라 말린 과일이나 견과류, 허브, 차와 향신료를 떠올리게 하는 복합적인 풍미가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조지아 와인이 앰버 와인이거나 크베브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조지아에서는 스테인리스 탱크와 오크통을 활용한 현대식 양조법도 널리 사용된다. 전통적인 크베브리 방식과 현대식 양조법이 공존하며, 같은 품종이라도 양조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토착 포도가 만드는 조지아만의 맛

조지아 지역별 생산되는 포도품종을 정리한 그림 / 사진 = wine of GEORIGIA

조지아 와인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토착 포도 품종에 있다. 조지아에는 500종이 넘는 토착 포도 품종이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가 현재 주요 와인 생산에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백포도 품종은 르카치텔리(Rkatsiteli)다. 조지아 동부를 중심으로 널리 재배되며 현대식 양조법으로 화이트와인을 만들기도 하고, 크베브리에서 껍질과 함께 발효해 탄닌과 질감이 뚜렷한 앰버 와인을 빚기도 한다.

적포도 품종으로는 사페라비(Saperavi)가 대표적이다. 사페라비는 조지아어로 ‘색을 입히다’ 또는 ‘물들이다’는 의미와 연결되는 이름을 지녔다. 일반적인 적포도는 껍질에 색소가 집중돼 있지만, 사페라비는 과육에도 붉은 색소를 가진 테인튀리에(Teinturier) 품종이다.

이 때문에 사페라비는 짙은 색과 비교적 높은 산도, 풍부한 탄닌을 지닌 와인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드라이 와인뿐 아니라 세미 스위트와 스위트 와인 등 다양한 형태로 생산되며, 크베브리 방식과 현대식 양조법 모두에 활용된다.

과거의 흔적이 현재의 문화가 되다

조지아의 다양한 와인. 좌측부터 Giuaani Kindzmarauli 2023, Dugladze Mukuzani 2020, Chateau Mukhrani Shavkapito 2021, Georgeous Amber 2018, Anemo Rkatisteli, Royal Khvanchkara Tsitska Tsolikouri 2022 / 사진 = 신현우 기자

조지아를 와인의 고향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가장 오래된 포도 와인의 증거가 발견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약 8천 년 전 포도 와인의 흔적이 확인된 땅에서 지금도 포도를 재배하고, 크베브리에 와인을 담아 발효하고 숙성하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오래된 고고학적 증거와 오늘날의 양조 전통이 한 나라 안에서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 조지아 와인을 특별하게 만든다.

물론 그 전통이 8천 년 동안 한 번의 단절도 없이 동일한 형태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신석기시대의 토기와 현재의 크베브리 사이에는 긴 시간과 수많은 변화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포도를 술로 빚고 이를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문화는 오늘날까지 조지아 사회의 중요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오늘날 세계 와인 산업과 문화를 대표한다면, 조지아는 와인이 인류의 삶 속에서 얼마나 오래전부터 자리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나라다.

잔에 담긴 조지아 와인은 단순히 오래된 술이 아니다. 그 안에는 포도와 흙, 발효와 시간, 그리고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온 한 지역의 문화와 삶이 함께 담겨 있다.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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