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사랑방 ‘펍’, 그런데 왜 자꾸 사라질까
송미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8-25 15:00:52
에일부터 진까지… 서순라길 ‘퀸즈 가드’에서 만나는 정통 펍 문화
[Cook&Chef = 송미연 기자] 영국 하면 펍(Pub)을 빼놓을 수 없다. 퇴근길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친구를 만나거나 축구 경기를 함께 즐기는 곳. 영국인에게 펍은 오랫동안 일상과 가장 가까운 사랑방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익숙한 풍경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영국맥주펍협회(BBP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에서 문을 닫은 펍은 161곳이다. 하루 두 곳꼴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늘었다. 높은 세금과 인건비 등 운영 부담이 커지면서 펍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영국 현지에서는 펍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지만, 서울에서는 영국식 펍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종묘 돌담길을 따라 자리한 ‘퀸즈 가드’는 영국 에일부터 사이더와 진을 선보이며 현지의 술과 펍 문화를 소개한다.
술집이 아닌 ‘동네의 거대한 거실’
영국에서 펍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다.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라는 이름처럼 주민들이 모여 하루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에 가깝다. 펍에서는 바 카운터에서 직접 술을 주문하고, 바텐더나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천소민 퀸즈 가드 대표 역시 영국식 펍의 핵심으로 ‘사람’을 꼽았다. 천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영국에서 펍은 단순히 맥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의 거대한 거실에 가깝다”며 “어떤 술을 마시는지도 중요하지만 결국 펍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에게는 축하하고 싶은 날의 장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필요한 날이나 잠시 쉬어가고 싶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며 “결국 좋은 펍은 인테리어나 술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영국 맥주는 정말 미지근할까
영국 펍을 대표하는 주류는 단연 에일(Ale)이다. 차갑고 탄산감이 강한 라거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라면 에일의 향과 질감이 조금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다.
흔히 ‘영국 맥주는 미지근하다’고 하지만, 이는 맥주 고유의 풍미를 살리기 위한 음용 온도 차이에서 비롯된 인식이다. 영국 맥주 소비자단체 CAMRA는 라거의 적정 온도를 4~6℃로 권장하는 반면, 페일 에일과 IPA는 7~10℃로 안내한다. 전통적인 캐스크 리얼 에일과 포터, 스타우트는 11~13℃ 정도로 더 높은 온도에서 즐긴다. 이처럼 라거보다 높은 온도에서 즐기는 에일은 맥아와 홉의 향과 풍미를 보다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국내 손님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천 대표는 “처음 영국 에일을 드시는 분들은 라거와 다른 향과 질감에 놀라곤 한다”며 “몇 가지 스타일을 경험하다 보면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퀸즈 가드는 영국 생맥주를 영국식 파인트(pint, 약 568mL) 단위로 선보이고 있다. 천 대표는 시즈널 영국 생맥주를 꾸준히 소개하는 일을 “영국인인 남편의 고집이자 자부심”이라고 덧붙였다.
취향에 따라 즐기는 사이더와 진
에일과 함께 사이더(Cider)도 영국 펍에서 즐겨 마시는 술이다. 사과를 발효해 만드는 사이더는 드라이한 것부터 달콤한 것까지 종류가 다양해 맥주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비교적 편하게 접할 수 있다.
진(Gin) 역시 영국에서 오랫동안 즐겨온 술이다. 같은 진이라도 어떤 토닉을 사용하고 무엇을 곁들이느냐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진다. 퀸즈 가드에서도 에일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이더와 진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천 대표는 “영국 술 문화의 재미있는 점은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이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날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 에일을 마실 수도 있고 라거나 사이더를 선택할 수도 있고, 진토닉 한 잔을 즐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부터 에일의 스타일이나 진의 보태니컬을 모두 알아야 술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담 없이 한 잔을 주문하고 ‘생각보다 재미있는데?’라고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이어지는 정통 펍의 가치
영국에서는 펍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지만, 서울에서는 그 문화를 경험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퀸즈 가드가 영국 술을 꾸준히 소개하는 것도 단순히 한 잔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는 펍의 문화를 함께 보여주기 위해서다.
천 대표는 “한국 손님들이 영국 술 한 잔을 통해 영국의 펍 문화를 조금이라도 경험하고, ‘런던에 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이런 시간을 즐길 수 있구나’라고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지 펍의 폐업이 늘어나는 가운데, 서순라길에서는 오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영국식 펍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우리가 술 한 잔을 핑계 삼아 정작 찾아 헤매던 것은, 결국 사람의 온기가 오가는 이런 공간이 아니었을까.
• 취재협조 = 퀸즈 가드(The Queen's Gu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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