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타르트의 기원으로 읽는 포르투갈의 역사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9-01 15:02:51

수도원의 제과에서 벨렝의 명물을 거쳐 아시아의 익숙한 디저트가 되기까지
출처 : AI생성이미지

[Cook&Chef = 정수연 기자] 에그타르트는 이제 한국에서도 이름만으로 충분히 통하는 디저트가 됐다. 이토록 익숙한 음식의 출발점이 포르투갈이라는 점은 그 유래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먹는 에그타르트가 왜 포르투갈에서 시작됐고, 어떻게 이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했을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수도원의 조리실에서 시작해 대서양의 설탕과 아시아의 계피, 19세기 벨렝의 정치와 관광, 다시 마카오를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긴 이동이 이어진다.

수도원에서 이어진 제과의 계보

에그타르트의 역사가 수도원의 조리실에서 시작되는 데에는 당시 포르투갈 수도원이 지닌 사회적·경제적 배경이 있었다. 특히 여성 수도원에는 상류층 가문의 여성들이 지참금을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고, 귀족 가문과의 후원 관계나 토지에서 얻는 수입도 공동체의 생활을 뒷받침했다. 집에서 누리던 식생활과 조리 경험도 함께 들어오면서 수도원의 주방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식 기술이 축적됐다.

그중 제과는 수도원 안팎을 잇는 중요한 기술로 성장했다. 수녀들은 축일이나 혼인, 세례처럼 특별한 날에 쓰일 과자를 만들었고, 선물하거나 판매한 수익은 공동체 운영에도 보탬이 됐다. 자연스럽게 맛과 완성도를 높이는 조리법이 세대를 거쳐 다듬어졌으며, 달걀과 설탕을 중심으로 한 포르투갈 특유의 수도원 제과도 이 과정에서 풍성해졌다. 1729년 산타클라라 수녀원의 조리책이 과자 레시피로 채워지고, 마지막에 제조법을 외부로 넘기지 말라는 당부까지 적힌 것도 제과가 당시 수도원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같은 기록에는 오늘날 에그타르트의 계보와 직접 이어지는 음식도 등장한다. ‘Pastelinhos de Natta(파스텔리뉴스 드 나타)’라는 이름 아래 생크림과 달걀노른자, 설탕을 섞어 반죽에 채운 뒤 오븐에 굽는 방법이 적혀 있다. 이보다 앞선 17세기와 18세기 초 문헌에서도 나타를 넣은 파이류가 확인된다. 에그타르트로 이어지는 제과가 포르투갈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지던 가운데, 훗날 가장 널리 이름을 알린 장소가 리스본 벨렝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이었다.

설탕과 계피는 어디에서 왔을까

수도원에서 달걀과 설탕을 활용한 제과가 활발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포르투갈이 바다를 통해 확보한 재료도 있었다. 특히 설탕의 공급이 크게 늘어난 시기는 포르투갈이 대서양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기 시작한 15세기와 겹친다.

당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북서쪽 대서양에 있는 마데이라섬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다. 따뜻한 기후가 재배에 잘 맞으면서 생산량은 빠르게 늘었고, 15세기 후반 마데이라는 유럽에 설탕을 공급하는 주요 생산지로 성장했다. 포르투갈에서 설탕을 활용하는 환경도 함께 넓어지면서 수도원의 과자와 크림, 푸딩을 비롯한 제과 역시 한층 다양해졌다.

에그타르트 위에 뿌려 먹는 계피도 포르투갈의 해양교역과 연결된다. 16세기 포르투갈은 당시 실론이라 불리던 현재의 스리랑카에서 이루어진 계피 교역에 깊게 관여했다. 대서양의 섬에서 생산량을 늘린 설탕과 인도양을 건너온 계피가 포르투갈의 식탁에 들어오면서, 훗날 에그타르트에서도 두 재료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제과의 역사와 포르투갈의 바다 이야기가 리스본의 한 지역에서 다시 겹친다는 데 있다. 바로 오늘날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벨렝이다. 이곳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502년부터 건설됐으며, 새로운 항로를 찾아 바다로 떠나던 선원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인근 벨렝탑 역시 당시 포르투갈의 항해와 해외 진출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에그타르트의 대표적인 장소가 된 벨렝에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포르투갈의 바다와 교역의 역사가 쌓이고 있었다.

수도원 제과가 상품이 된 이유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이어지던 제과가 일반 사람들에게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포르투갈의 정치 변화와 관련이 있다. 1834년 정부가 종교 수도회를 해산하면서 제로니무스 수도원 역시 문을 닫았고, 수도원과 함께 생계를 이어오던 사람들은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원에서 만들던 달콤한 제과가 벨렝의 거리로 나왔다. Pastéis de Belém(파스테이스 드 벨렝)에 전해지는 역사에 따르면 수도원과 관계된 사람이 인근 사탕수수 정제소의 상점에서 이 제과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1837년에는 정제소 옆 건물에서 ‘Pastéis de Belém’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됐다. 수도원의 조리법이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돈을 내고 사 먹는 상품으로 바뀐 시점이었다.

이 변화는 에그타르트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수도원 안에서 이어지던 제과가 벨렝이라는 장소의 이름을 달고 판매되면서, 이제 그 명성을 키우는 주체도 수도원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옮겨갔다.

방문객이 키운 벨렝의 명물

그 사람들의 상당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을 보기 위해 벨렝을 찾던 방문객들이었다. 19세기 벨렝은 두 건축물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꾸준한 지역이었고, 수도원 밖에서 에그타르트가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새로 상품이 된 제과도 자연스럽게 이들의 여행 동선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원과 탑을 둘러본 사람들은 인근에서 갓 구운 에그타르트를 맛봤고, 그 경험을 벨렝이라는 장소의 기억과 함께 가져갔다. 같은 경험이 여러 세대의 방문객에게 반복되면서 ‘Pastéis de Belém(파스테이스 드 벨렝)’이라는 이름도 점차 지역의 명물로 굳어졌다.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던 제과가 상품이 된 데 이어, 이제는 사람들이 일부러 기억하고 다시 찾는 여행지의 음식으로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이 흐름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리스본을 찾은 여행객들은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을 둘러본 뒤 Pastéis de Belém을 찾아 에그타르트를 맛본다. 19세기에 형성된 여행의 동선이 세대를 건너 반복되면서, 에그타르트의 명성도 벨렝이라는 장소와 함께 커져왔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다

벨렝을 찾은 사람들과 함께 커진 에그타르트의 명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의 경계를 넘어섰다.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 장면이 2011년 국민투표로 선정된 ‘포르투갈 미식 7대 불가사의’다. Pastel de Belém(파스텔 드 벨렝)은 칼두 베르드와 정어리구이, 세라 치즈 등 포르투갈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19세기 벨렝을 찾은 방문객들이 맛보던 제과가 이제 포르투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에그타르트를 둘러싼 관심은 지금도 이어진다. 2009년부터 리스본에서는 ‘O Melhor Pastel de Nata(우 멜료르 파스텔 드 나타·최고의 파스텔 드 나타)’ 대회를 열어 여러 제과점의 에그타르트를 블라인드 심사로 평가한다. 오래된 수도원 제과가 관광객이 찾는 명물을 넘어, 오늘날에도 제과사들이 실력을 겨루고 사람들이 최고의 맛을 논하는 음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처럼 포르투갈 안에서 에그타르트의 위상이 커지는 동안, 바다 건너 아시아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시간을 20세기 후반으로 돌려 마카오로 향해야 한다.

에그타르트가 아시아로 퍼진 계기

당시 마카오는 이미 포르투갈과 수백 년의 교류를 이어온 도시였다. 16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정착하면서 두 지역의 생활문화가 오랫동안 겹쳐졌고, 이런 배경은 훗날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가 현지에서 받아들여질 토대가 되어 준 것이다.

실제 확산의 계기는 20세기 후반에 마련됐다. 1979년 마카오로 이주한 영국 출신 약사 앤드루 스토는 포르투갈 여행에서 맛본 에그타르트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리법을 개발했고, 1989년 콜로안에 ‘로드 스토스 베이커리’를 열었다. 그가 만든 에그타르트는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마카오를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고, 포르투갈의 제과가 아시아에서 새로운 소비층을 넓혀가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마카오에서 얻은 인기는 1990년대 후반 홍콩과 대만,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이어졌다. 포르투갈에서 출발한 에그타르트가 마카오에서 다시 해석되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아시아 여러 도시에서 친숙한 디저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흐름은 오늘날 한국의 카페와 베이커리에서도 에그타르트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풍경을 이해하는 하나의 배경이 된다.

에그타르트 하나에 담긴 역사

에그타르트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하는 과정에는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선택, 시대의 변화가 오랜 시간 함께 쌓였다. 수도원의 생활에서 시작된 제과가 교역과 정치, 여행을 거치며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그렇게 지금의 에그타르트가 완성됐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익숙한 에그타르트 한 조각에서도 맛과 함께 그 음식이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위에 뿌린 계피에서는 먼 바다를 오간 교역의 시간을, 벨렝에서는 수도원 밖으로 나온 제과를, 아시아에서 익숙해진 모습에서는 마카오를 거쳐 다시 이동한 음식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평소 접하던 디저트 한 조각이 한 나라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은 창이 되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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