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균의 ‘역사 속 음식이야기’] (7) 한창기와 징광문화

염상균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9-30 15:03:51

‘뿌리 깊은 나무’ 발행인이 이어온 전통의 가치
7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글날 기념 학술대회
우리 밥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릇마다 제 몫이 다르다. 백자 반상기에는 흰 쌀밥과 맑은 국이 어울리고, 유기그릇에는 따뜻한 밥과 국의 온기가 깃든다. 작은 종지에는 간장과 초장이 담기고, 사발에는 국수와 막걸리가 담긴다. 시루에서는 떡이 익고, 장독에서는 된장과 간장이 계절을 건너며 맛이 깊어진다.  사진 = 염상균 칼럼니스트 

그릇에 담긴 우리 것

[Cook&Chef = 염상균 칼럼니스트] 옛 그릇들을 오래 바라본다. 생김새며 쓰임새가 눈에 들어온다. 누가 만들었을까? 밥을 담는 사발, 국을 담는 대접, 차를 우려내는 다관, 장을 익히는 항아리…. 적당한 크기와 편리한 구조 아름다운 모습도 보인다. 저런 그릇에 음식을 먹었던 사람들의 생활과 시대의 풍경도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잡지사에 큰 획을 짙게 그은 『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은 한창기(1936~1997)였다. 그는 바로 그 그릇에서도 우리 삶의 뿌리를 바라본 사람이었다.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난 한창기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브리태니커 대표를 지냈다. 사업가로 성공한 뒤 그가 마음을 기울인 곳은 우리말과 우리 문화였다. 50년 전인 1976년 창간한 『뿌리깊은나무』를 통해 한글과 판소리, 민속과 생활문화, 장인들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눈길은 이름난 예술품은 물론, 사람들이 날마다 쓰던 밥그릇과 찻잔, 유기와 옹기 같은 생활용품에서 우리 문화의 깊은 뿌리를 찾아냈다. 그가 수집한 6,500여 점의 유물은 낙안읍성 남문 앞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서 온전히 보존한다.

밥상 위에서 발견한 우리 문화

우리 밥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릇마다 제 몫이 다르다. 백자 반상기에는 흰 쌀밥과 맑은 국이 어울리고, 유기그릇에는 따뜻한 밥과 국의 온기가 깃든다. 작은 종지에는 간장과 초장이 담기고, 사발에는 국수와 막걸리가 담긴다. 시루에서는 떡이 익고, 장독에서는 된장과 간장이 계절을 건너며 맛이 깊어진다.

그릇은 음식을 담고 보관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밥상의 역사와 질서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다. 한창기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평범한 삶이었다. 화려한 궁중음식이나 이름난 도자기만이 문화유산이 아니라, 어머니가 매일 밥을 담던 사발과 마당 한쪽 장독대의 항아리에도 우리 음식문화의 역사가 깃들었다고 보았다. 차도 마찬가지다. 찻잎만으로 차 문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물을 끓이는 주전자와 차를 우려내는 다관, 향을 음미하는 찻잔과 차를 보관하는 항아리가 함께해야 한다.

차와 옹기로 이어진 징광의 뿌리

한창기의 문화적 소양은 동생 한상훈에게도 깊이 이어졌다. 한상훈은 『뿌리깊은나무』의 문화사업에 참여해 잎차를 담당하면서 우리 차를 찾아 나섰다. 1979년에는 보성 벌교 징광리 옛 징광사터 주변 자생하던 차밭에 재래종 차씨를 더 심어 차밭을 일구었고, 1980년에는 징광문화의 터를 마련해 전통 옹기와 유기 제작에도 힘을 기울였다. 하늘빛을 닮은 쪽 염색을 본인이 직접 하느라 그의 손과 손톱 역시 늘 쪽빛이었다.

징광리에는 차밭과 옹기막, 전시장과 차음식체험장 등을 두루 갖추었다. 차와 옹기는 서로 다른 물건처럼 보이지만 음식문화라는 공통의 뿌리를 갖는다. 특히 옹기는 한국 음식문화에서 각별한 그릇이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비롯한 발효음식은 시간이 빚어내는 음식이다. 김치와 젓갈, 곡식과 소금 역시 옹기와 만나 저장과 숙성의 시간을 이어왔다. 그러므로 옹기를 살린다는 것은 음식을 저장하고 발효시키던 우리 생활방식까지 함께 이어가는 일이다.

한 사람의 뜻에서 가족의 손으로

한상훈은 1998년 세상을 떠났지만 징광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아내 차정금은 뿌리깊은나무 재단 이사장으로서 시숙 한창기의 유업을 돌보는 한편, 남편이 남긴 차밭과 옹기, 공간을 보듬으며 징광의 맥을 이어간다. 아들 한무논은 큰아버지 한창기와 아버지 한상훈의 뜻을 이어 징광문화를 이끌고, 며느리 인나영도 가족과 함께 그 삶의 풍경을 가꿔간다. 특히 한무논은 징광문화의 대표이자 징광옹기의 전통을 이어가는 옹기장인이다. 그의 작업은 기계로 찍어낸 제품과 달리 흙과 불의 성질을 읽어가며 손끝으로 완성하는 고된 일이다.

‘한창기―뿌리, 깊은, 나무’ 전시회와 학술대회

올해는 한창기를 다시 만나는 특별한 자리도 마련됐다. 성북문화재단은 『뿌리깊은나무』 창간 50주년을 맞아 9월 9일부터 10월 10일까지 서울 성북구 최순우 옛집에서 ‘한창기―뿌리, 깊은, 나무’ 전시를 연다. 10월 7일 오후 1시 30분부터 5시까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제580돌 한글날 기념 뿌리깊은나무 발행인 한창기 학술대회’도 연다. 학술대회에서는 한창기와 『뿌리깊은나무』가 우리 문화에 남긴 발자취를 한글·한복·판소리·공예 등으로 살펴본다. 한글에서는 우리 글과 서체의 아름다움 및 세계화 가능성을, 한복에서는 생활 속 전통과 문화정체성을 짚는다. 판소리에서는 『뿌리깊은나무』가 펼친 100회 공연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공예에서는 한창기가 수집한 생활공예품을 통해 우리 물건에 담긴 문화사적 의미를 살핀다. 

전시와 학술대회가 건네는 물음은 하나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것을 얼마나 제대로 바라보는가. 한창기는 우리 땅에서 나고 우리 손으로 만들며 삶 속에서 이어온 것들의 가치를 발견했다. 『뿌리깊은나무』가 기록한 것은 우리 생활의 풍경이었고, 그의 동생인 한상훈이 지켜낸 그릇과 옹기와 차와 음식은 오늘까지 이어지는 문화의 뿌리가 됐다.

이번 전시와 학술대회가 한창기를 과거의 인물로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상훈과 징광문화로 이어진 우리 전통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무심히 지나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오래된 것에서 오늘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사진 = 염상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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