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탐구] 옛 기록으로 읽는 가을 잔치상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10-13 15:01:17

신라의 보름 잔치부터 고려의 다식, 조선의 국화전까지
무용총의 악무도.-아래 줄지어 앉은 이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해석되어 악기 연주, 춤, 노래가 어울린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악도로 꼽히고 있다.  출처=우리역사넷

[Cook&Chef = 서진영 기자] 선선한 바람이 불고 산과 들이 다채로운 색으로 물드는 가을, 탐스러운 과실이 풍성해지면 전국의 특산물 축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모인 사람들은 음식을 맛보며 그 고장의 계절을 맛과 색으로 경험한다. 선조들은 어떤 때에 모여 무엇을 하고 나눠 먹었는지, 기록 속 잔치를 들여다본다.

옛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제사와 놀이, 음식이 함께 있었다. 하늘에 평안을 빌고, 일을 마친 뒤 성과를 겨루고, 계절의 풍경을 즐기는 자리마다 음식이 마련됐다. 음식을 준비한 사람과 대접받는 사람, 먹는 순서도 행사에 따라 달랐다. 삼국시대의 보름 잔치와 고려의 국가 행사, 조선의 가을 나들이와 집안 의례를 따라가면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관계까지 살펴볼 수 있다.

길쌈의 승부가 끝나면 잔치가 시작됐다
고구려에서는 음력 10월에 동맹(東盟)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에는 이를 나라의 큰 모임으로 기록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치렀다는 내용은 남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먹은 음식의 이름까지 전하지는 않는다. 음식의 종류를 알기 전에, 사람들이 해마다 일정한 때에 모여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을 먼저 만난다.

신라의 가배(嘉俳)에서는 음식을 마련한 사람과 대접받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 이사금 9년조에 따르면 왕은 여섯 부를 두 편으로 나누고, 왕의 딸 두 사람에게 각각 여자들을 이끌게 했다. 음력 7월 16일부터 사람들은 큰 마당에 모여 삼베를 짰다. 아침 일찍 시작한 길쌈은 밤까지 이어졌다.

음력 8월 15일이 되면 한 달 동안 해놓은 일의 많고 적음을 비교했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마련해 이긴 편을 대접했다. 이어 노래와 춤, 여러 놀이가 벌어졌다. 일을 겨루고 그 결과에 따라 음식을 차리는 것까지가 가배의 한 과정이었다. 승부가 끝난 뒤에도 두 편은 같은 자리에 남아 잔치를 즐겼다.

가배의 기록에서 눈여겨볼 것은 먹거리를 나누는 방식이다. 왕실이 길쌈의 편을 조직했지만 음식을 마련하는 책임은 진 편에 있었다. 이긴 사람을 대접한 뒤 모두가 놀이에 참여했다. 함께 일한 사람들이 성과를 확인하고 다시 어울리는 과정에 음식이 놓인 셈이다.

박탁(餺飥)은 고대 동아시아의 밀가루 반죽 음식(현대 수제비나 칼국수의 원형)이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아쉽게도 이 기록에는 잔치에 올린 음식의 종류가 나오지 않는다. 구체적인 이름은 9세기 신라인들의 보름 명절 기록에서 만난다. 일본 승려 엔닌은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839년 8월 15일 절에서 박탁(餺飥)과 병식(餠食) 등을 마련해 명절을 지냈다고 적었다. 장소는 당나라에 있던 신라인 사찰 적산 법화원이었다. 기록에는 이곳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며 명절을 지냈다는 내용이 있다. 낯선 땅에서 마련한 명절 음식은 고국의 풍속을 함께 지키는 매개가 됐다.

박탁은 수제비로 풀어 소개되기도 하는 밀가루 음식이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주석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떡의 일종으로 설명하며, 병식은 곡물가루를 반죽해 찌거나 구운 음식으로 풀이한다. 지금의 수제비와 떡을 떠올릴 수 있지만 당시의 반죽과 익히는 방식이 같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재료의 성격은 짐작할 수 있어도, 그날 절에서 만든 음식의 모양과 조리법까지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고려의 큰 잔치, 다식 한 조각에도 예법이 있었다

송화다식  출처=풍석문화재단


고려의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는 왕과 신하들이 참여하는 국가 행사였다. 연등회에는 등을 밝혀 부처를 기렸고, 팔관회에는 불교 의례와 함께 하늘과 산천 등 나라를 지키는 신에게 평안을 빌었다. 팔관회는 서경에서 음력 10월, 개경에서 11월에 열렸다. 행사장에는 채색으로 꾸민 공연 무대가 세워지고 음악과 춤, 여러 놀이가 펼쳐졌다.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도성을 메웠다는 기록도 있다.

나라 밖에서 온 손님도 참여했다. 송나라 상인과 여진·탐라의 사신 등이 왕에게 축하의 선물을 올렸고, 왕은 음식 등을 내려 대접했다. 나라의 안녕을 비는 행사에 지방의 관리와 외국 손님이 모였다. 왕이 자리를 내주고 음식을 베푸는 일은 고려의 위상을 보여주는 접대이기도 했다.

이 잔치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다식(茶食)은 이름과 먹는 순서가 함께 남아 있다. 고려에서는 중요한 국가 행사에 차를 올리는 진다(進茶) 의식이 있었다. 팔관회에서도 다식을 먹은 뒤 차를 받았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왕에게 다식을 올린 뒤 태자와 신하들에게도 차려주는 과정이 나온다. 집례관의 안내에 따라 두 번 절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받았다. 먹기를 마치면 일어나 읍했다. 읍은 두 손을 맞잡아 올리고 몸을 굽혀 공경을 표하는 인사다. 이어 차를 받고 마신 뒤에도 예를 갖췄다. 자리에 따라 앉아서 먹거나 서서 받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함께 먹는 자리였지만 참석자의 신분과 위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에게 먼저 음식을 올리고, 어느 자리에 앉히며, 언제 먹도록 하는지가 정해져 있었다. 다식을 나누는 절차에는 왕과 신하 사이의 예법이 담겼다.

고려 말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에는 이러한 다식의 맛이 시로 남았다. 『목은시고(牧隱詩藁)』 권30에 실린 「종덕 부추가 팔관회의 바뀐 예복과 다식을 보내왔기에(種德副樞送八關改服茶食)」다. 아들 종덕이 보내온 다식을 맛본 이색은 “細嚼微甘生齒舌”, 곧 “잘게 씹으니 은은한 단맛이 이와 혀에 감돈다”고 적었다. 이어 예전에 여러 사람을 따라 팔관회에 참여했던 일을 떠올렸다. 다식을 씹는 순간, 지난 잔치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고려의 다식에 어떤 가루를 썼고 어떤 모양으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해당 의례 기록은 먹는 순서를, 이색의 시는 맛과 회상을 전하지만 재료의 배합이나 만드는 과정은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의 다식은 곡물이나 깨 등의 가루에 꿀 또는 조청을 섞어 다식판에 눌러낸다. 판에서 꺼내면 꽃이나 글자 무늬가 표면에 드러난다. 검은깨 다식은 고소한 맛이 짙고, 송화다식은 노란빛을 띤다. 재료를 곱게 갈수록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도 부드러워진다. 조선의 혼례와 제례에 쓰였던 다식은 지금도 다과상에 오른다. 고려의 다식과 조리법이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옛 잔치에 등장하는 이름을 지금도 맛볼 수 있다.

찹쌀 반죽에 국화를 더해 지진 국화전. 쫀득한 떡에 꽃향을 담은 중양절 음식이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가을 산에 오른 사람들, 집안에 차린 국화전
궁궐의 큰 잔치 밖에서도 사람들은 계절에 맞춰 모이고 음식을 나누었다. 조선의 세시 기록에는 가을 산에 올라 즐긴 음식과 집안의 평안을 빌며 마련한 음식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는 높은 곳에 올라 풍경을 바라보는 등고(登高)를 즐겼다. 서울 사람들은 남산과 북악에 올라 음식을 먹고 놀았다. 친지들이 모여 국화를 감상하거나 시를 짓는 자리도 열렸다. 관리들에게 이날 하루 휴가를 허락했다는 설명에서도 중양절이 제사와 나들이, 여러 모임을 위한 날이었음을 볼 수 있다.

중양절은 경치를 즐기는 날이면서 햇곡식과 계절 음식을 올리는 때이기도 했다. 추석에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지 못한 집안에서는 중양절에 뒤늦게 새 곡식을 올리기도 했다. 새로 난 곡식이나 과실을 신이나 조상에게 바치는 일을 천신이라 한다. 하늘에 제사하는 제천과는 뜻이 다르다. 같은 가을 음식도 나들이에서는 함께 즐길 먹거리였고, 제사상에서는 새 수확을 알리는 제물이 됐다.

중양절의 음식으로 국화전과 유자화채가 전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왕실 음식 해설 자료에서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들어 두 음식을 중양절의 세시음식으로 소개한다. 계절을 즐기는 음식과 의례에 올리는 음식이 겹쳐 있었던 것이다.

국화전은 찹쌀 반죽을 기름에 지져 꽃의 향을 담은 음식이다. 현재 전해지는 조리법에서는 식용 감국을 사용한다. 둥글납작한 반죽을 지지고 꽃잎을 얹은 뒤 꿀이나 시럽을 곁들인다. 쫀득한 떡에 은은한 꽃향이 남는다. 봄에 진달래를 얹어 화전을 만들었다면 가을에는 국화가 그 자리를 채웠다. 꽃이 피는 때에 따라 떡의 빛깔과 향도 달라졌다.

가늘게 썬 유자와 배를 돌려 담고 석류와 잣을 얹은 유자화채. 가을 과실의 빛깔과 향을 한 그릇에 담았다.  사진 = 서진영기자

유자화채에는 잘게 썬 배와 유자, 석류, 잣 등을 꿀물에 넣었다. 배는 아삭한 식감을, 유자는 향을 더한다. 석류의 붉은 알과 잣이 떠 있는 그릇에는 가을 과실이 모인다. 찹쌀을 지져 만든 국화전과 과실을 꿀물에 띄운 유자화채는 계절의 재료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음식이었다.

음력 시월 상달에는 집안의 평안을 비는 고사가 이어졌다. 산에 올라 즐기는 중양절 나들이와는 성격이 다른 가정의 의례다. 조선의 절식 자료에는 이때 붉은팥시루떡을 만들었다고 나온다. 쌀가루와 팥고물을 켜켜로 안쳐 찐 떡에는 집안에 액이 없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

고사 음식에서 시루는 떡을 찌는 도구이자 음식을 바치는 그릇이었다. 민속 자료에는 성주신과 터주신 등 집안의 신에게 팥시루떡을 시루째 놓는 상차림이 소개된다. 잘라 접시에 담기 전의 떡을 시루째 올렸다는 점에서, 떡과 그릇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팥의 붉은색에는 액을 막는다는 믿음도 담겼다.

시루떡은 지금도 이사나 개업 때 나누는 음식이다. 이웃에게 떡을 돌리는 손길에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사가 실린다. 집안에 올리는 음식에서 주변 사람에게 건네는 음식까지, 시루떡에는 평안을 바라고 관계를 맺는 쓰임이 함께 남아 있다.

가배에서는 일을 겨룬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었고, 팔관회에서는 정해진 자리에 따라 다식을 받았다. 중양절의 국화전과 유자화채에는 계절을 즐기는 맛이, 상달의 시루떡에는 집안을 돌보는 마음이 담겼다. 가을 축제의 먹거리도 무엇을 맛보는지와 함께 누가 마련하고 누구와 나누는지를 살펴보면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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