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장독 묻어 김장하던 부부, 모교 식공과에 10억 묻은 이유

유지상 기자

cnc01@hnf.or.kr | 2026-07-24 10:07:23

[인터뷰] 고대 식품공학과에 장학기금 낸 김병관·이윤경 부부
"배고픈 후배 밥값 아닌, 제대로 배울 시간을 주고 싶었다"
마주보고 환하게 웃는 김병관·이윤경 부부. 이 부부는 "배고픈 후배의 밥값이 아닌 제대로 배울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안정호 기자

[Cook&Chef = 유지상 기자, 안정호 기자] 계산은 의외로 단순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얼마가 필요할까. 답을 내보니 그리 큰 금액이 필요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럼 남은 건 어떻게 할지 아내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고려대 식품공학과 79학번 김병관 씨가 아내이자 같은 과 80학번인 이윤경 씨에게 건넨 제안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21일 모교 식품공학과 후배들을 위해 장학기금 10억 원을 기부했다. 단일 학과를 지정한 장학기금으로는 손에 꼽히는 규모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심 아니냐는 질문에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상상 못 할 일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다들 마음은 있는데, 정리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정리'라는 이름의 선행

부부에게 이번 기부는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닌 '정리'의 일부였다. 여유가 생기면 뭔가 하자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했지만 언제, 얼마를 기부할지는 정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느꼈다.

"예순이 넘으면 인생을 정리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지금 그 단계에 들어선 겁니다."

아내의 생각도 같았다. "부모님이 떠나시고 그걸 정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우린 직접 하자고 했어요. 살아 있을 때 조금씩 정리하면서, 즐길 것도 즐기고 할 일도 하면서 살자고."

두 사람은 화려한 것에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좋은 차나 명품보다는 차를 빌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면 충분하다는 부부. 그렇게 오래 미뤄둔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아깝지 않았냐는 물음에는 웃음이 돌아왔다. 30여 년간 모교에 꾸준히 기부해 온 학과 선배를 만났을 때 들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이게 중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계속하게 된다고."

지난 20일 고려대학교 본관에서 진행된 식품공학과 장학금 기부식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촬영한 김병관·이윤경 부부. 사진=김병관·이윤경 부부 제공

"유기화학만 나오면 아직도 쪼그라들어요"

왜 학과를 위한 장학기금이었을까. 답은 부부의 유학 시절에 있었다. 8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간 두 사람 곁에는 학과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도 기댈 곳도 없던 시절, 선배들에게 받은 도움을 후배들에게 갚는 일이 자연스럽게 반복됐다.

기부의 성격을 결정한 건 남편의 아쉬움이었다. 그가 학부생이던 시절, 학교는 휴교령으로 문을 닫았다. 그렇게 전공의 뼈대가 되는 유기화학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강의를 한두 번 듣고 못 들었어요. 숙제로 때웠죠. 그래서 지금도 유기화학만 나오면 쪼그라듭니다."

기초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겪었기에, 학부생이 경제적 걱정 없이 기본기를 다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학비 지원 제도는 그동안 많이 늘었으니, 정작 필요한 건 생활을 받쳐주는 쪽이라고 봤다. "식품공학 업계를 끌고 갈 사람은 결국 열정이 있는 소수입니다. '여기선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생겨야 하고, 그래야 좋은 학생들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배고픈 후배의 밥값이 아닌 제대로 배울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옳은 방식의 기부란 설명이다.

배를 채우던 음식에서, 즐기는 음식으로

식품공학을 평생 업으로 삼은 두 사람에게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얼굴을 바꿔왔다. 남편은 이를 단계로 설명했다.

"예전이야 먹는 것이 배를 채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었지만 부족함이 채워진 현재는 즐거움 쪽으로 가는 게 당연합니다."

함께 가난했던 유학생 시절을 지나온 아내에게도 음식은 오랫동안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먹는 즐거움이 인생의 3분의 1, 어쩌면 반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맛있게 먹으면 그게 약이라고 생각해요."

살을 빼야 한다며 좋아하는 음식을 밀어놓는 사람의 표정을 볼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건강 때문에 못 먹고 다이어트 때문에 못 먹는 일 없이, 누구나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이 나왔으면 한다는 것. 그러려면 식품공학이 할 일이 아직 많다고 덧붙였다.

다만 요즘 음식이 소비되는 방식에는 아쉬움도 있다. 남편은 사진 찍기 좋은 음식이 앞세워지는 흐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보여주기 위한 콘텐츠는 생명이 짧아요. 확실히 본연의 맛을 찾는 쪽이 오래갑니다."

이윤경 씨가 미국에서 직접 담근 김치. 사진=김병관·이윤경 부부 제공

김밥을 못 싸가던 유학생, 이젠 냉동김밥이 동나는 시대

두 사람이 미국에 도착한 건 1989년이다. 그때 한국 음식은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유학 시절엔 김밥을 못 싸 갔어요. 냄새난다고. 그 정도로 거부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미국 코스트코 냉동김밥이 없어서 못 먹잖아요."

처음 미국에 갔을 땐 조그만 식료품점에 일본 라면뿐이었다고. 지금 월마트의 그 코너는 한국 라면이 차지하고 있다. "어디서 왔냐길래 한국이라고 하면 '노스코리아?' 하던 시절이었어요."

아내는 미국에서도 매년 김장을 했다. 그것도 옛날식으로 독을 땅에 묻었다. 자녀의 미국인 친구들이 그 맛을 알아버려, 봄이면 와서 물었다. "엄마, 애들이 김치 언제 담그냐고 물어봐."

명절이면 자녀를 불러 전도 부치고, 떡국을 만들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이런 걸 접하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게 안타까웠다"며 지난겨울엔 미국인 며느리가 김장을 배워 지인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재료가 나쁘면 좋은 식품은 나올 수 없어요"

부부는 최근 지방에 머물며 농가의 현실을 가까이서 봤다. 농사짓는 이들은 대부분 고령이고, 주변 어민들은 수온이 올라 예전만큼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내는 식재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식재료는) 잘 먹이고 돌봤는데도 병에 걸려 죽고, 날씨가 안 좋아서 죽어요. 농사짓고 수산업 하시는 분들은 결국 자연과 싸우시는 분들이더라고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재료가 좋지 않으면 좋은 식품이 나올 수 없어요. 그러면 식품공학도 될 수가 없죠. 기본부터 잘 받쳐줘야 합니다."

후배들에게 바라는 것을 묻자, 남편이 답했다. 요즘 학생들이 의대나 전문직 쪽으로 쏠려 있는데, 그 분야도 시대의 변화 앞에서는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결국 사람을 만드는 게 먹는 것 아닙니까. 몸과 마음을 다스릴 좋은 아이디어와 제품을 만들어줄 학생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엔 식품공학이 요리하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게 아니라 하면 할수록 성취감이 있는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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