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白色)의 미학, 떡국: 태양 숭배에서 '곤약'까지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6-02-17 21:00:52

[설 특집 2편] 김정숙 교수가 말하는 절기 음식의 인문학적 의미와 현대적 '떡국 해체론'의 만남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설날 아침, 우리네 식탁에 반드시 오르는 주인공은 단연 떡국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뽀얀 국물, 그 위에 가지런히 뜬 둥근 떡, 그리고 화려한 오색 고명. 떡국 한 그릇을 비워야 비로소 나이 한 살을 먹는다는 말은 한국인에게 일종의 불문율과도 같다. 하지만 이 익숙한 한 그릇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깊은 철학적 함의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영양학적 과제가 공존한다. 김정숙 전남과학대학 명예교수의 저서 『열두 달 세시풍속과 절기음식』을 통해 떡국의 미학을 들여다보고, 쿡앤셰프의 분석을 통해 현대 식문화 속 떡국의 변신을 추적해 본다.


태양을 삼키다: 떡국에 담긴 원형의 철학

[Cook&Chef = 이경엽 기자] 김정숙 교수는 떡국을 단순한 음식이 아닌 '종교적 의미가 담긴 제의 음식'으로 해석한다. 저서에 따르면, 정월 초하루에 떡국을 먹는 풍습은 고대의 '태양 숭배 신앙'에서 유래했다. 떡국의 주재료인 가래떡의 흰색은 때 묻지 않은 순수와 밝음을 상징하며, 이를 둥글게 썬 모양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새해 첫날 흰색의 태양 떡을 먹는 행위는 천지만물의 부활과 신생(新生)을 내 몸안으로 받아들이는 성스러운 의식인 셈이다.

또한 길게 뽑아낸 가래떡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엽전 모양으로 썬 떡은 새해의 재물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교수는 "떡은 쌀을 가장 차지게 한 음식으로, 뭉치는 힘을 통해 추위를 이기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인다. 삼국시대부터 떡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떡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영혼의 음식이다.

풍류와 멋: 세주(歲酒)와 유밀과

설날의 미식은 떡국에서 멈추지 않는다. 김정숙 교수는 설날 아침 마시는 차가운 술, '세주(歲酒)'의 의미를 강조한다. "귀가 밝아진다" 하여 이명주(耳明酒)라고도 불리는 이 술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잔씩 마시며 봄을 맞이하는 뜻을 기렸다. 특히 도라지, 계피, 산초 등 약재를 넣어 빚은 '도소주'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장수를 기원하는 약술의 개념이었다.

여기에 곁들여지는 유밀과(약과)와 유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꿀과 기름이 귀했던 시절, 약과는 최고의 사치이자 정성이었다. 입안에서 눈 녹듯 사라지는 유과의 식감을 두고 김 교수는 "일 년 내내 좋은 일이 실처럼 이어지기를, 혹은 형제간의 불화가 눈 녹듯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전통의 설 음식에는 맛 그 이상의 염원과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현대의 도전: "칼로리 폭탄을 해체하라"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전통은 현대 의학 및 영양학의 관점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탄수화물 과잉과 고열량 탓에 현대인의 식탁에서 전통적인 떡국은 '해체와 재조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맛과 양, 가격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전통 방식대로 끓인 떡국은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혈당 스파이크'의 주범이 될 수 있으며, 소고기 양지 육수의 포화지방 또한 현대인의 혈관 건강에 적신호를 켠다는 것이다.

"이 떡국, 몇 칼로리죠?"라는 질문이 덕담을 대신하는 시대, 셰프와 식품 기업들은 전통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대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 새로운 떡국의 탄생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대체 식재료'다. 전문가들은 흰 쌀 가래떡의 대안으로 '곤약'과 '현미', 그리고 '새송이버섯'을 제시한다. 100g당 170kcal 수준인 곤약 떡이나, 식이섬유가 풍부한 현미 떡은 떡국의 식감을 유지하면서도 칼로리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심지어 새송이버섯을 떡국 떡 모양으로 얇게 썰어 넣는 파격적인 시도까지 등장했다.

이는 단순히 칼로리를 덜어내는 '비움'에 그치지 않는다. 부족한 영양소를 더하는 '채움'의 미학도 함께 적용된다. 제조리 기자는 매생이와 들깨가루를 활용해 부족한 무기질과 오메가-3를 보충하고, 만두와 두부를 넉넉히 넣어 단백질 함량을 높이는 '영양학적 설계'를 제안한다. 이는 김정숙 교수가 언급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만하다. 과거에는 꿩을 구하기 어려워 닭을 썼다면, 지금은 건강을 위해 백미 대신 곤약을, 양지 대신 닭가슴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론: 맛과 숫자가 공존하는 새로운 미식

김정숙 교수가 예찬한 '백색의 태양' 떡국과, 쿡앤셰프가 분석한 '저당·저칼로리' 떡국은 겉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그 지향점은 같다. 바로 '생명'이다. 전통 떡국이 주술적인 의미에서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면, 현대의 떡국은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건강 수명을 늘리려 한다.

"맛의 시대가 가고 숫자의 시대가 온 것이 아니라, 맛과 숫자가 공존하며 새로운 미식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제조리 기자의 통찰처럼, 우리의 설날 식탁은 더욱 지혜롭고 풍성해지고 있다. 올 설날, 당신의 떡국 그릇에는 어떤 철학과 어떤 건강이 담겨 있는가. 그것이 곤약이든 쌀떡이든, 그 안에 담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변함없이 뜨겁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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