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이블]<걸어도 걸어도> 옥수수 알처럼 하나인듯 따로인 가족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10-22 15:01:22

장남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하루
같은 밥상이지만 서로 다른 감정
영화 <걸어도 걸어도> 포스터

[Cook&Chef = 조소현 기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는 장남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하루를 그린다.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내 '유카리(나쓰카와 유이)'와 그녀의 아들 '아츠시(타나카 쇼헤이)'를 데리고 고향집을 찾는다. 딸 '지나미(에하라 유키코)'도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를 방문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가족의 만남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얽혀있다.

영화는 부엌에서 채소 껍질을 벗기는 소리로 시작한다. 어머니 도시코(키키 키린 분)와 딸 지나미는 가족을 위한 음식을 준비한다.

니쿠자가(일본식 소고기 감자조림)와 감자샐러드, 청콩과 양하를 넣은 밥, 옥수수 튀김까지. 도시코는 가족을 위해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한다. 그래도 부족할까 초밥까지 배달시키고는 “차린 게 없어서 어떡하니”라고 말한다. 풍성한 밥상에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스틸컷

옥수수 알갱이처럼, 하나인 듯 따로인 가족
도시코가 직접 고안한 옥수수 튀김은 가족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가족들은 옥수수 알갱이를 하나씩 떼어내며 튀김을 준비하고, 도시코는 남편 교헤이가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를 훔쳤던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스틸컷

훔친 옥수수로 튀김을 만들던 날, 밭 주인이 찾아와 맛있는 옥수수를 수확했다며 선물로 건넸다. 당황한 가족들 사이에서 준페이는 “엄마, 이럴 줄 알았으면 채소가게에서 안 살걸 그랬어”라고 재치 있게 말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준페이의 재치를 칭찬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료타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스친다.

옥수수 알갱이는 하나의 속대에 붙어 자라지만, 하나하나는 저마다의 모양을 지닌다. 영화 속 가족도 그렇다. 같은 집에서 자라고 같은 기억을 공유해도 각자가 품은 감정과 상처는 다르다.

도시코는 제각각인 옥수수 알갱이를 반죽으로 엮어 한 덩어리의 튀김으로 완성하듯, 서로 다른 가족을 음식으로 한자리에 모은다. 하지만 하나의 튀김이 되었다고 알갱이 각각의 모양이 사라지지 않듯, 한 식탁에 둘러앉았다고 가족의 상처와 서로의 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옥수수 튀김이 익는 소리만 들리면 가족들이 부엌으로 모여들어 갓 튀긴 음식을 먹었다는 기억은, 이 음식이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매개였음을 보여준다. 도시코는 어쩌면 준페이의 기일마다 옥수수 튀김을 만들며, 익숙한 튀김 소리에 이끌려 아들이 다시 부엌으로 달려오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일찍 철든 아이, 아츠시
마당에서 사촌 아이들이 수박 깨기 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노는 동안, 아츠시는 쉽게 섞이지 못한다. 발랄하게 노는 아이들과 달리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는 모습은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신이 이 가족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 어린 나름대로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츠시는 새아버지 료타를 '료짱'이라고 부른다. 아직 친아버지의 기억을 간직한 아이에게 료타는 선뜻 아버지라 부르기 어려운 존재다.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이전의 가족을 완전히 놓지 못한 아츠시의 모습은,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놀이와 어른들의 식사 사이, 아츠시는 가족 안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겉돌고 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스틸컷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걸어도 걸어도>에서 음식은 가족을 한자리에 모으지만, 서로의 마음까지 하나로 만들지는 못한다. 옥수수 튀김에 얽힌 추억은 누군가에게 그리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서운함으로 남고, 같은 밥상에 앉은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감정을 품는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별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스틸컷

그럼에도 가족은 다시 모여 밥을 먹고, 누군가를 기억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옥수수 알갱이를 하나씩 떼어내 튀김을 만들듯, 가족의 시간도 서로 다른 순간과 기억이 쌓여 만들어진다. 고레에다 감독은 평범한 여름날의 밥상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면서도 끝내 서로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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