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탐구] 고명에 담긴 한식의 정갈한 예의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10-20 15:00:43

[『이조궁정요리통고』를 바탕으로 차린 대하찜과 유자화채, 유자단자. 유자화채에 띄운 석류알과 잣이 빛깔을 더하고, 가지런히 담은 음식들이 정갈한 차림새를 이룬다. 사진=서진영기자]

[Cook&Chef = 서진영 기자] 음식의 간을 맞췄다고 상에 낼 준비가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단을 가지런히 얹고 실고추 몇 가닥을 놓는 손길이 남아 있다. 먹기에 충분한 음식에 한 번 더 수고를 들이는 일. 한식의 고명에는 맛과 모양을 살피는 감각과 함께, 이를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다.

잘 차린 음식 앞에서는 첫술을 뜨기 전부터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그릇에 담긴 모양과 재료의 어울림에서 준비한 이의 정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지런히 놓인 고명에서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정갈한 차림으로 온전한 한 그릇을 건네는 것이다.

맛을 갖춘 뒤에도 손이 가는 이유

고명은 적은 양으로 음식의 매무새를 바꾼다. 흰 국수에 황백지단과 푸른 호박채를 얹고 실고추와 석이를 더하면 재료의 색과 맛이 살아난다. 국물과 함께 부드럽게 넘어가는 면 사이에서 채소와 달걀의 감촉도 느껴진다. 보기 좋은 차림이 먹는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수장국에 올리는 쇠고기와 볶은 표고버섯은 면과 함께 씹는 맛을 더한다. 건진국수에는 채 썰어 볶은 쇠고기와 호박, 황백지단과 실고추가 어우러진다. 같은 국수라도 어떤 재료를 얹느냐에 따라 한입의 맛과 감촉이 달라진다. 그릇 위에 조금씩 놓인 재료들이 저마다 제 몫을 하는 셈이다.

그 몇 가닥을 준비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를 나누어 얇게 부치고, 석이버섯은 이물질을 씻어낸 뒤 곱게 채친다. 각각 손질한 재료가 음식의 크기와 담음새에 어울려야 한다. 상에 오르는 양은 적어도 그 안에 들어간 수고까지 적은 것은 아니다.

같은 달걀지단도 길게 채 썰었을 때와 작은 마름모로 썰었을 때의 쓰임이 다르다. 가는 지단은 면이나 채소 사이에 어우러지고, 조각으로 썬 지단은 음식 위에서 노란색과 흰색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고명을 준비할 때는 얹을 음식의 모양과 먹는 방식까지 함께 살피게 된다.

잣 역시 놓이는 음식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통째로 띄우기도 하고, 얇게 저며 비늘잣으로 쓰거나 곱게 다져 뿌리기도 한다. 육포와 약포에는 비늘잣으로 모양을 내고, 전복초와 홍합초에는 잣가루를 더한다. 얇은 조각은 표면에 무늬를 만들고, 고운 가루는 촉촉하게 조린 음식에 묻어 고소함을 보탠다.

이러한 마무리는 옛 조리법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의 수증계(水蒸鷄)는 닭요리에 달걀 고명을 얹고 생강과 후춧가루를 더해 낸다. 익힌 닭 위에 색과 향을 더해 상에 내는 것이다.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내놓을 것인지까지 조리에 포함한 셈이다.

궁중의 기록에서 살핀 고명(糕銘)

궁중의 잔칫상에 오른 음식에서도 고명의 쓰임을 살필 수 있다. 다만 의궤에 적힌 재료가 모두 고명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달걀은 재료에 입히는 옷이 되기도 하고 지단으로 부쳐 위에 얹히기도 한다. 재료의 이름과 함께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살펴야 음식의 모습이 드러난다.

화양적(花陽炙)은 이러한 차이를 보여준다. 연향 의궤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1765년부터 1829년까지의 사례에 쓰인 달걀을 재료에 입히는 옷으로, 1873년과 1877년, 1887년 사례에서는 고명으로 풀이한다. 뒤 시기의 화양적은 쇠고기와 파, 도라지 등을 익혀 꼬치에 꿰고 접시에 담은 다음 달걀지단채로 마무리하는 형태다. 같은 이름의 음식에서도 달걀이 놓이는 자리에 따라 차림새가 달라졌다.

1902년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에 기록된 생복화양적(生鰒花陽炙)에는 전복과 쇠고기, 도라지 등 여러 재료와 함께 달걀과 실백자(實栢子), 곧 깐 잣이 들어간다. 이 음식을 풀이한 조리 해설에서는 각각 익힌 재료를 꼬치에 꿰고 가장자리를 다듬어 담은 뒤, 잣가루와 달걀지단채를 뿌려 마무리한다. 여러 재료를 한데 모은 뒤에도 고소함과 빛깔을 보태는 손길이 이어진다.

신선로(神仙爐)에서는 재료를 갖추는 일과 고명을 얹는 일이 한 그릇 안에 펼쳐진다. 고기와 여러 전을 담고 황백지단과 미나리초대, 버섯 등을 빛깔에 맞추어 놓은 뒤 호두와 은행, 잣과 고기완자를 더한다. 길이를 맞춘 재료 사이로 둥근 완자와 작은 잣알이 어우러지고, 밝은 빛과 짙은 빛이 서로를 드러낸다.

신선로의 아름다움은 여러 재료를 따로 손질한 수고에서 비롯된다. 지단과 전을 부치고, 채소를 다듬고, 견과의 껍질을 벗기는 과정이 모여 하나의 차림을 이룬다. 그 위에 육수를 부어 끓이면 가지런히 담긴 재료들은 국물과 함께 맛을 나눈다. 눈으로 먼저 맛보고 한술씩 떠보게 되는 것이다.

[『규합총서(閨閤叢書)』 규장각본의 「어채」 일부. 음식 위에 올린 재료의 빛깔을 “오ᄉᆡᆨ이 영농ᄒᆞ야 죠흐니라”라고 표현해, 고명으로 갖춘 차림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출처=서울대규장각]

어느 빛깔을 위에 놓을 것인가

고명을 어디에 놓는지까지 살핀 조리법도 있다. 1892년 『임진진찬의궤(壬辰進饌儀軌)』에는 어채(魚菜)와 각색어채가 등장한다. 숭어와 전복, 해삼 등의 어육류에 버섯과 채소, 달걀과 잣이 쓰였으며, 빛깔을 내는 치자와 연지도 재료에 포함돼 있다. 궁중의 어채에서는 음식의 색을 갖추는 데에도 여러 재료가 동원되었다.

궁중 기록과 별개로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어채를 만드는 법이 전한다. 규장각본의 「어채」에서는 손질한 재료를 한꺼번에 삶으면 뒤섞이므로, 한 가지씩 체에 담아 차례로 삶아 내도록 했다. 각 재료의 모습을 살피는 일은 익히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담는 순서도 구체적이다. 어육과 채소는 아래에 놓고 황백지단과 석이, 대하, 국화잎, 붉게 물들인 무채 등은 위에 담도록 했다. 그 빛깔을 두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ᄉᆡᆨ이 영농ᄒᆞ야 죠흐니라”

오색이 영롱하여 좋다.
무엇을 넣을지에 더해, 조화로운 음식의 색을 담을지도 조리의 한 부분이었다. 아래에 놓인 재료와 위에 올린 재료가 함께 한 접시를 이루되, 눈에 먼저 색으로 따로 살핀 것이다. 고명에는 재료를 다루는 솜씨뿐 아니라 음식의 어울림을 살폈다.

이처럼 기록에 남은 고명은 가느다란 지단이나 잣 몇 알에만 그치지 않고, 음식에 따라 해산물과 채소도 위에 놓여 맛과 빛깔을 더한다.

떡 한 조각과 다과에도 이어지는 손길

고명의 자리는 찬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규합총서』의 증편 조리법에는 대추를 가늘게 썰고 잣을 쪼개어 떡 위에 박는 과정이 남아 있다. 작은 재료를 손질해 놓는 자리까지 살핀 기록에서, 맛과 함께 모양을 갖추려는 수고를 엿볼 수 있다.

증편은 조리를 마친 뒤에만 꾸미는 음식이 아니다. 반죽 위에 대추와 석이, 밤과 잣 등을 놓고 함께 찌면서 떡과 고명이 한데 익는다. 희게 부푼 바탕에 놓인 작은 조각들은 빛깔을 뽀얗게 빛나고, 한입 베어 물면 포슬포슬한 떡 사이에서 부드러운 감촉을 남긴다.

백편(白片)에도 대추와 밤, 석이와 잣을 올려 함께 찐다. 혼례와 회갑, 제례 등에 쓰인 백편은 고명의 줄과 색을 맞추어 놓는 방식이 전한다. 흰 바탕에 재료를 어울리게 놓는 일까지가 떡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 있다. 같은 재료라도 놓인 간격과 방향에 따라 매무새가 달라진다.

약과와 산자, 강정 또한 잣은 다양하게 고명으로 쓰인다. 비늘잣은 약과뿐 아니라 매화산자와 매화강정 등을 꾸미는 데에도 쓰고, 윤기 도는 표면이나 고물이 붙은 바탕 위에 작은 잣 조각을 더하면, 빛깔과 모양에 또 하나의 변화가 생긴다. 잣 하나를 저미고 놓는 데에도 음식에 어울리는 모습을 헤아리는 손길이 필요하다.

떡을 괴어 올린 상에서는 ‘웃기’라는 차림도 볼 수 있다. 지단과 실고추처럼 음식의 일부를 꾸미는 고명에 비해, 웃기는 윗부분을 덮어 모양을 갖추는 음식이다. 떡 위에 올리는 주악과 화전, 전유어 위를 꾸미는 알쌈이 여기에 든다. 작은 재료를 얹는 일에서 별도의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일까지, 차림을 완성하는 방법도 여러 모습으로 이어진다.

음청류(飮淸類)에서는 통잣 몇 알이 그 몫을 한다. 수정과의 짙은 국물에서는 잣의 밝은 빛이 도드라지고, 화채에서는 과실의 빛깔과 어우러진다. 마시던 중 함께 씹히는 잣은 부드럽게 부서지며 고소함을 남긴다. 식사를 마친 뒤 내는 한 잔에도 정성을 들이는 손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화려함보다 중요한 조화

한식의 고명에는 식재료가 지닌 자연색이 쓰인다. 미나리와 오이의 푸른빛, 실고추의 붉은빛, 달걀의 노란색

[여러 재료의 빛깔에 잣과 호두, 은행 고명이 어우러진 신선로. 오방색의 조화를 담은 정갈한 차림에서 궁중음식의 멋과 맛을 한 그릇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서진영기자]

과 흰색, 석이의 검은빛이 대표적이다.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의 오방색(五方色)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관점과 연결되며, 서로 다른 재료를 한 그릇 안에서 조화시키는 바탕이 된다.

다만 모든 음식에 다섯 색을 채우는 것은 아니어서, 한두 가지로 마무리할 때도 있다. 수정과에는 잣 몇 알로 충분하고, 여러 재료를 배열하는 떡에서는 색의 간격과 놓인 모양이 중요해진다. 많이 얹는 것보다 바탕이 되는 음식을 잘 드러내는 일이 먼저다.

맛도 그러하다. 잣은 밝은 빛깔과 고소함을 더하지만, 양이 지나치면 음식 본래의 맛을 가릴 수 있다. 지단 역시 두께와 크기에 따라 다른 재료와 어우러지는 정도가 달라진다. 고명을 고르는 일에는 색뿐 아니라 한입에 함께 먹었을 때의 맛과 질감을 헤아리는 마음이 함께한다.

이처럼 차림의 균형을 살피는 데서도 환대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손님을 존중하는 마음은 귀한 재료를 많이 쓰는 데서만 드러나지는 않는다. 먹기 좋은 크기로 다듬고, 필요한 만큼 얹으며, 상에 내기 전 그릇을 한 번 더 살피는 데에도 있다.

고명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곧 다른 재료와 어우러진다. 음식의 매무새는 잠시지만, 그것을 갖추는 수고는 생략되지 않는다. 맛있게 만든 것을 정갈하게 건네는 일까지가 대접이기 때문이다. 한 그릇 위에 놓인 작은 고명은 그 마지막 예의를 느끼게 해 준다.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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