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인문학] 모주의 시작은 전주가 아니란 설(說)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7-31 15:00:27
술지게미를 활용한 전통 식문화와 만나 탄생
[Cook&Chef = 신현우 기자] 전주를 대표하는 향토음료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콩나물국밥과 단짝 같은 한 잔, 바로 모주(母酒)다. 계피와 생강, 대추, 감초 등을 넣고 오랫동안 달여 만든 모주는 은은한 단맛과 향긋한 향신료의 풍미를 지녀 콩나물 국밥과 잘 어울린다. 지금은 ‘전주의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모주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제주를 배경으로 한 한 편의 설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날 전주의 대표 향토음료로 이어졌다.
유배지 제주에서 시작된 ‘대비모주’ 설화
모주의 유래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광해군 대(代)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씨 부인과 관련된 설화다.
광해군 대 폐모론으로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면서, 그의 어머니 노씨 역시 제주로 유배를 떠났다고 전해진다. 낯선 섬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노씨 부인은 술을 빚고 남은 술지게미를 얻어 모주를 만들어 팔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알려진 이 이야기는 1946년 홍기문의 『조선문화총화』에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졌으며, 오늘날 ‘대비모주’ 설화의 바탕이 됐다.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는 이 술을 ‘대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는 뜻에서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불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대비’ 두 글자가 생략돼 오늘날의 모주라는 이름만 남았다고 한다.
다만 이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정사에서 확인되는 기록은 아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후대에 형성된 구전과 스토리텔링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전주의 지역 정체성을 설명하는 문화적 서사 가운데 하나로 해석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모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버려지는 술에서 탄생한 삶의 지혜
설화의 진위와 별개로 모주가 담고 있는 음식문화의 가치는 분명하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술을 빚고 남은 술지게미를 쉽게 버리지 않았다. 막걸리를 걸러낸 뒤에도 술지게미에는 풍미와 영양 성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냈고, 모주 역시 이러한 생활의 지혜에서 발전한 음식문화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전주 모주는 막걸리나 술지게미에 계피와 생강, 대추, 감초 등을 넣고 오랫동안 달여 만든다. 긴 시간 끓이는 과정에서 술의 자극적인 맛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향신료의 은은한 향과 단맛이 더해져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료가 된다. 버려질 재료를 새로운 음식으로 되살린 절약 정신과 발효를 끝까지 활용하는 지혜가 모주 한 잔에 담겨 있는 셈이다.
전주에서 새로운 향토음료가 되다
오늘날 전주 모주는 대비모주 설화와 전주의 음식문화가 어우러지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70~80년대 전주 원도심에서는 술자리를 마친 뒤 모주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따뜻한 모주는 속을 편안하게 달래주는 해장술 역할을 했고, 자연스럽게 콩나물국밥집에서 함께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전주의 음식문화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모주는 콩나물국밥과 함께 즐기는 대표적인 향토음료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이후 한옥마을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모주는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맛보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됐다. 병 제품이 출시되면서 기념품 시장으로도 확대됐고, 전주를 대표하는 특산 음료로 성장했다.
모주의 역할도 시대와 함께 달라졌다. 과거에는 술을 마신 뒤 속을 달래기 위한 해장술의 성격이 강했다면, 오늘날에는 알코올 도수가 매우 낮아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기는 전통음료이자 관광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전통은 시간이 빚어낸 문화다
음식은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두 전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세대를 거쳐 이어지며 새로운 의미를 얻을 때 비로소 전통이 된다.
모주 역시 마찬가지다. 인목대비 어머니의 유배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지는 ‘대비모주’ 설화는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모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하나의 문화적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전주의 해장 문화와 콩나물국밥 문화, 관광산업이 더해지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주 모주’라는 지역의 대표 음식문화가 완성됐다.
최근 연구에서도 현재의 전주 모주는 오래된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결과라기보다 지역의 역사와 기억, 음식문화, 관광이 결합하며 끊임없이 재해석된 향토음식으로 평가한다.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더하며 이어진다는 사실을 모주는 잘 보여준다.
따뜻한 한 잔의 모주에는 단순한 술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주 유배지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설화와 버려지는 술지게미를 다시 살려낸 생활의 지혜, 그리고 그 위에 전주의 음식문화가 더해져 하나의 향토음료로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문화가 되고, 현재의 문화가 다시 미래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과정. 모주는 그 긴 시간을 가장 따뜻하게 품고 있는 우리 음식문화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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