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티켓 EATIQUETTE] 사우디에서는 왜 커피잔을 흔들까?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10-19 15:00:37
오른손으로 받는 첫 잔부터 마즐리스, ‘충분합니다’를 전하는 마지막 몸짓까지
[Cook&Chef = 정수연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손님을 맞는 자리에 앉으면 커피는 대화가 무르익기 전부터 사람 사이를 오가기 시작한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작은 잔에는 몇 모금 분량의 커피가 담기고, 손님이 오른손으로 받아 비운 뒤 돌려주면 기다리던 주전자가 다시 기울어진다. 두 번째 잔도 양은 비슷하다. 한 번 더 비우고 나면 또 커피를 받을 차례가 돌아올 것이다.
처음 경험한다면 슬슬 궁금해졌겠다. 대체 몇 잔까지 마셔야 하는 걸까.
사우디의 전통적인 커피 자리에서는 그 답을 긴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충분히 마신 손님이 빈 잔을 손끝에서 가볍게 흔들면, 커피를 따르던 사람은 그 뜻을 알아본다. 몇 모금씩 이어지던 환대에 “잘 마셨습니다”라고 답하는 작은 몸짓인 셈이다.
첫 잔에는 사람을 대하는 순서가 담긴다
손님이 받아든 작은 잔은 ‘핀잔(finjan)’이라고 한다. 잔을 채우는 것은 긴 주둥이를 가진 전통 주전자 ‘달라(dallah)’다. 사우디의 커피문화에서 두 도구의 이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람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달라를 든 사람이 손님들을 차례로 살피고, 커피를 받은 사람은 오른손으로 핀잔을 받아 몇 모금 마신다.
누구에게 먼저 잔을 건넬지도 자리의 성격에 따라 정해져왔다. 연장자나 귀빈이 함께한 자리에서는 그 사람을 먼저 대접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둘러앉은 자리에서는 오른쪽에서 순서를 시작하는 방식이 이어져왔다. 짧게 지나가는 한 잔의 커피에도 상대를 먼저 살피는 태도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핀잔에 담기는 양 역시 한 번의 음용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는 크기와는 거리가 있다. 유네스코가 2015년 아랍 커피 문화를 기록할 당시에도 잔의 약 4분의 1을 채우고 손님에게 다시 권하는 방식이 소개됐다. 실제 양과 횟수는 사우디 안에서도 지역과 자리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작은 잔을 거듭 채워주는 모습 자체는 오랫동안 환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핀잔 하나를 다 마셨다고 커피 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흐름을 놓치기 쉽다. 빈 잔이 돌아오면 달라가 다시 기울고, 손님은 또 한 번 선택한다. 더 마실 것인지, 이제 충분한지. 작은 잔은 그 짧은 판단을 몇 차례 반복하게 만든다.
“충분합니다”는 잔을 흔들어 전한다
마실 만큼 마셨다면 마지막 핀잔에서 행동 하나가 달라진다. 커피를 비운 뒤 잔을 가볍게 흔들어 건네는 것이다. 사우디의 전통적인 커피 예절에서 이 동작은 더 이상의 리필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통한다.
그 순간까지 잔을 계속 살피던 사람은 손님의 뜻을 읽고 다음 사람에게 몸을 돌린다. 손님에게도 별도의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몸짓을 여러 세대가 보고 배우며 의미를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이 작은 행동을 알고 나면 처음 받았던 몇 모금의 커피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힌다. 적은 양의 커피를 한 번에 끝내는 대신 여러 차례 주고받으면서, 대접하는 사람은 손님의 잔을 다시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손님에게는 그 환대를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뜻을 표현할 방법이 생긴다. 잔의 크기, 반복되는 리필, 마지막 손짓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세계가 마시는 커피, 사우디에서는 사람 사이를 오간다
커피 자체는 이제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익숙하다. 카페에 들어가 원하는 원두와 메뉴, 크기를 고르고 주문한 한 잔을 자신의 속도로 마시는 일은 일상이 됐다.
사우디의 전통적인 손님맞이 자리에서는 같은 커피에 관계의 움직임이 더해진다. 누가 먼저 잔을 받는지 살피고, 손님이 비우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따르며, 손님 역시 잔을 돌려주거나 흔들어 자신의 뜻을 전한다. 한 사람이 선택한 음료를 마시는 시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커피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행동을 읽는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우디의 커피문화를 따로 알아볼 이유가 생긴다.
몇 모금밖에 담기지 않은 잔을 보면 그 양보다 다음 행동을 보게 되고, 반복되는 리필에서는 손님을 계속 챙기는 사람의 움직임이 읽힌다. 잔을 흔드는 마지막 동작까지 알고 나면 커피를 마시는 일과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한 자리에서 얼마나 촘촘하게 결합돼 있는지도 보인다. 같은 음료가 사회에 따라 얼마나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를 작은 핀잔 하나가 보여주는 셈이다.
그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온 공간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마즐리스(majlis)’다.
커피를 배우는 공간, 마즐리스
마즐리스는 아랍어로 사람들이 앉는 장소를 뜻한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라비아반도 여러 사회에서 가족과 이웃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방문객을 맞으며, 공동체의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해온 응접 공간이다. 결혼을 축하하거나 조의를 나누는 날에도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고, 일상적인 방문객을 맞는 자리 역시 마즐리스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커피는 그런 만남과 함께 움직였다. 전통적인 마즐리스에는 커피와 따뜻한 음료를 준비할 화로나 불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아이들은 어른이 손님을 맞는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 어느 손으로 잔을 건네는지, 누구를 먼저 대접하는지, 방문객과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는지를 익혀갔다.
예절을 가르치는 별도의 수업보다 반복되는 일상이 먼저였을 것이다. 어른이 달라를 들고 손님 앞으로 가면 아이는 그 모습을 봤고, 누군가 마지막 핀잔을 흔들면 곧 다음 손님으로 순서가 넘어갔다. 한 세대가 했던 행동을 다음 세대가 따라 하면서 커피를 둘러싼 몸짓도 자연스럽게 의미를 얻어갔겠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이 공간과 커피문화가 같은 해 각각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오만·카타르가 함께 신청한 ‘마즐리스, 문화적·사회적 공간’이 하나였고, 또 하나가 ‘Arabic coffee, a symbol of generosity’, 즉 ‘관대함의 상징인 아랍 커피’였다.
공간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이 나란히 문화유산이 된 셈이다.
왜 ‘관대함의 상징’이 되었을까
유네스코가 아랍 커피에서 기록한 것은 조리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손님과 연장자를 먼저 챙기는 순서, 커피를 따르고 마시는 방법, 마지막에 잔을 흔드는 행동까지 환대와 사회적 예절을 구성하는 문화로 함께 다뤘다. 결혼식과 공동체 모임, 사람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커피는 계속 등장해왔다.
그렇다면 ‘관대함의 상징’이라는 이름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손님이 도착하면 자리를 마련하고, 커피를 준비해 먼저 권하며, 잔이 비었는지 살핀 뒤 다시 채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대접하는 사람의 시선은 계속 손님에게 향한다. 관대함이라는 가치가 추상적인 말에 머무는 대신, 달라를 기울이고 핀잔을 건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돼온 것이다.
2024년에는 요르단이 합류하면서 이 유산을 함께 전승하는 국가는 다섯 곳으로 늘었다. 사우디만의 독립된 관습으로 고립해서 볼 문화라기보다 아라비아 지역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환대문화 속에서 사우디의 방식과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손님 자리로 돌아오면, 이제 작은 잔 하나에 훨씬 많은 것이 보인다.
마지막 잔은 손님이 끝낸다
마즐리스의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달라를 든 사람이 다시 곁으로 온다. 핀잔에는 이번에도 몇 모금의 커피가 담겼을 것이다. 처음이라면 작은 양이 먼저 눈에 들어왔겠지만, 몇 차례 잔을 주고받은 지금은 그 다음에 일어날 행동까지 알고 있다.
오른손으로 잔을 받아 마지막 커피를 마신다. 충분히 즐겼다면 빈 핀잔을 가볍게 흔들어 건넨다. 커피를 따르던 사람은 그 신호를 보고 잔을 거둔 뒤 자연스럽게 다음 손님에게 향할 것이다.
처음 이 자리에 앉았을 때는 “왜 또 따라주지?”가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몇 모금씩 이어진 커피가 손님을 계속 살피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잔을 건넨 사람은 환대를 이어갔고, 잔을 받은 사람은 마지막 몸짓으로 그 환대에 답했다.
사우디의 전통적인 커피문화에서 작은 핀잔은 그렇게 사람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볍게 흔들리는 잔 하나가, 오래 이어진 커피 대화의 마지막 문장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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