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인문학] 차례상을 지켜온 우리술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9-04 15:27:44

햅쌀로 빚은 신도주(新稻酒)...농가월령가에 등장
술 한 잔에 담긴 수확에 대한 감사와 나눔의 의미
전주이씨 양도공종가 제례 / 사진 = 종가제례음식 아카이브

[Cook&Chef = 신현우 기자]  어느덧 추석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송편과 전, 나물과 과일 등 차례상에 올릴 음식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한쪽에는 늘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있다. 바로 차례주다.

해마다 명절이면 익숙하게 준비해온 술이지만, 정작 차례주는 어떤 술인지, 또 우리는 왜 차례상에 술을 올려왔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다.

사실 차례주는 막걸리나 소주처럼 일정한 제조법을 가진 하나의 술 이름은 아니다. 차례나 제사에 올리는 술, 즉 제주(祭酒)를 일컫는 말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차례상에 술을 올리는데, 정작 ‘차례’는 한자로 ‘茶禮’라고 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차와 관련된 예(禮)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차례에는 원래 술이 아니라 차를 올렸던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차례의 형성 과정을 조금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관혼상제의 중요한 규범이 된 주자의 <가례(家禮)>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차례(茶禮)’라는 명칭 자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정월 초하루와 동지, 매달 초하루와 보름 등에 사당에 참배하는 ‘참례(參禮)’와 계절에 새로 난 음식을 조상에게 올리는 ‘천신례(薦新禮)’가 있었다. 오늘날의 차례는 이러한 참례와 천신례가 우리나라의 세시풍속과 결합하며 하나의 명절 제례로 자리 잡은 것으로 이해된다.

흥미로운 것은 <가례>의 참례와 천신례에 실제로 차를 올리는 절차가 있었다는 점이다.

제물을 차리고 술을 올리는 것뿐 아니라 차를 끓여 올리는 ‘점다(點茶)’도 의례의 한 과정이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차가 술로 바뀐 것은 아니다.

<가례>의 제례에는 차와 함께 술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즉 처음에는 차를 올리다가 어느 순간 술로 대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차와 술이 함께 제례에 존재했던 것이다.

조선에서는 중국과 달리 차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풍속이 널리 자리 잡지 못했다. 이재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차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례>에 등장하는 설다(設茶)와 점다 등의 글귀를 삭제했다고 작성되어 있다.

결국 ‘차례(茶禮)’라는 이름에는 차를 올리던 의례의 흔적이 남았지만, 실제 우리의 명절 제례에서는 차를 올리는 절차가 생략됐다. 반면 술은 제례의 중요한 제물로 계속 사용된 것이다.

오늘날 너무나 익숙한 차례상의 술 한 잔에도 이러한 의례의 변화가 겹쳐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차례상에는 어떤 술을 올렸을까.

오늘날에는 명절을 앞두고 마트나 주류매장에서 ‘차례주’라고 적힌 술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집집마다 술을 빚던 시절의 풍경은 지금과 달랐다.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쌀과 누룩으로 술을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한 집안일 가운데 하나였다. 잘 익은 술 가운데 좋은 술을 골라 조상에게 올리고, 제례가 끝난 뒤에는 가족들이 그 술과 음식을 다시 나누었다.

지금처럼 ‘차례용 술’이라는 상품을 따로 구입했다기보다 그 집에서 정성껏 마련한 술이 자연스럽게 제주가 됐던 셈이다.

차례나 제사에 올리는 술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등장하는 것이 ‘청주(淸酒)’다.

다만 옛 문헌에서 말하는 청주를 오늘날 술병의 주종명으로 적힌 ‘청주’와 그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청주라는 말은 본래 글자 그대로 맑은 술이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됐다. 곡물과 누룩으로 술을 빚어 충분히 익힌 뒤 술독에 용수를 박으면 그 안으로 비교적 맑은 술이 모인다. 이를 떠낸 맑은 술을 청주라 부르기도 했다.

집안의 중요한 제사나 손님맞이에는 이렇게 잘 익은 술 가운데 맑고 좋은 부분을 골라 사용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정이 다르다.

현행 주세법은 발효주류 가운데 ‘약주’와 ‘청주’를 별개의 법정 주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옛 기록 속의 청주를 오늘날의 법정 주종인 청주나 약주 어느 하나와 정확히 일대일로 대응시키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쌀과 누룩을 사용해 빚은 맑은 술 가운데 오늘날 약주로 분류된다. 

따라서 “옛날 제사에는 청주를 올렸다”는 말을 이해할 때에는 오늘날의 주종명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탁한 술과 구별되는 맑은 술을 청주라고 불렀다는 역사적 맥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옛 차례상의 술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특정 상품이나 특정 주종으로서의 ‘차례주’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집에서 빚은 술 가운데 좋은 술을 골라 조상에게 올렸고, 그 술에는 한 집안의 정성과 술이 익어가는 시간이 함께 담겼다.

특히 추석에는 그 술에 한 해 농사의 결실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졌다.

추석은 농사의 결실을 마주하는 계절이다. 새로 난 곡식과 과실로 음식을 마련해 조상에게 올리고, 이를 다시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눴다.

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추석을 대표하는 술 가운데 하나가 ‘신도주(新稻酒)’다.

이름 그대로 새로 거둔 벼, 즉 햅쌀로 빚은 술이라는 의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추석’ 항목에서도 햅쌀로 빚은 추석 술을 신도주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도주는 하나의 정형화된 제조법을 가진 특정 술이라기보다는 새로 거둔 쌀로 빚는다는 계절적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기록이 <농가월령가>다.

'신도주(新稻酒)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先山)에 제물(祭物)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가 적혀 있는 <농가월령가> 원문 / 사진 =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DB

조선 후기 농촌의 농사일과 세시풍속을 월별로 노래한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8월령에는 추석을 맞는 풍경과 함께 신도주가 등장한다.

“신도주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신도주와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의 조상에게 제물로 올리고 다시 이웃과 나눠 먹는다는 내용이다.

짧은 구절이지만 신도주가 추석에 마시는 술인 동시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물로 사용됐다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햇곡식으로 술과 떡을 마련하고 그것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풍경에는 추석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햅쌀로 술을 빚고, 그 술을 조상에게 먼저 올린 뒤 제례가 끝나면 다시 가족과 이웃이 나눈다.

이 과정에서 술은 단순히 차례상 위에 놓인 제물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차례가 끝난 뒤 제사에 올렸던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조상에게 올렸던 술이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고, 때로는 이웃과 손님에게까지 이어졌다.

차례상의 작은 술잔 하나가 조상과 현재의 가족을 연결하고 다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집집마다 명절을 앞두고 술을 빚던 이러한 풍경은 근대에 들어 크게 달라졌다.

주세 제도와 주류 제조에 대한 면허제가 자리 잡으면서 집에서 술을 빚던 가양주 문화는 크게 위축됐다. 특히 일제강점기 주세 제도가 강화되면서 가정에서 자유롭게 술을 빚던 환경도 사라져갔다.

집집마다 술독을 마련해 명절과 제사를 준비하던 풍경 대신 양조장에서 생산된 술을 구입해 제주로 사용하는 모습이 점차 익숙해졌다.

오늘날 명절이면 마트에서 쉽게 만나는 ‘차례주’ 역시 이런 오랜 변화 끝에 자리 잡은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추석에는 어떤 술을 차례상에 올려야 할까.

하나의 정답을 정하기는 어렵다.

애초 차례주는 특정한 상표나 하나의 제조법을 가진 술의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집에서 빚은 술 가운데 좋은 술을 골라 제주로 사용했고, 추석에는 신도주처럼 그해 새로 거둔 쌀로 빚은 술을 조상에게 올리기도 했다.

오늘날이라면 우리 쌀과 누룩으로 빚은 약주를 선택할 수도 있고, 지역의 쌀이나 농산물로 만든 술을 올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술이 차례주의 ‘정답’인가를 정하는 것보다 그 술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으로 빚어졌는지, 그리고 왜 그 한 잔을 조상에게 올리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직접 햅쌀을 거두고 신도주를 빚어 술독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풍경을 그대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해의 결실 가운데 좋은 것을 먼저 조상에게 올리고, 그것을 다시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누었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명절이면 너무나 익숙하게 차례상 한쪽을 지켜온 술.

익숙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한 잔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떤 의미를 품고 있었는지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적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추석이 늘 당연하게 여겨왔던 우리 차례주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늘 올려왔기 때문에 올리는 한 잔이 아니라, 예전에는 어떤 술을 빚어 올렸고 그 술에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

우리 차례주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익숙했던 술 한 잔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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