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와는 다르다, 이태원을 지켜온 '존슨탕'의 깊은 맛
김대식
| 2026-07-02 17:55:44
30년째 이어지고 있는 특별한 경험
[Cook&Chef = 김대식 칼럼니스트] 맛은 시간을 담아낸다.
누군가와 마주 앉았던 시간으로, 한 자리를 지켜 온 공간의 풍경으로, 다시 찾고 싶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 안에는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먹는 사람의 믿음이 쌓여 있고, 그렇게 이어진 약속은 한 끼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좋은 식당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이 짙게 스며들고, 변치 않는 약속처럼 그 삶을 오롯이 품고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곳도 그런 식당이었다.
30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다. 서울 생활이 낯설던 사회 초년생 시절, 제일기획에서 광고주 미팅을 마친 뒤였다. 선배 한 분이 “연예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며 데리고 간 곳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식사보다도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알게 된 곳이 바로 바다식당이었다.
지금은 제법 번듯한 건물이지만, 그 당시는 골목 안 단층 주택을 개조한 소박한 식당이었다. 바다식당이라는 이름에 해산물집을 떠올렸지만, 손님들이 찾는 메뉴는 낯선 이름의 존슨탕이었다.
골목 밖까지 줄이 이어졌고, 실내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북적였다. 미닫이 문을 열면 손님들의 신발이 현관 가득 빼곡히 놓여 있었는데 사람들 틈 사이로 빈 자리를 찾아 다니곤 했다. 그 풍경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이 품고 있던 공간의 운치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세월은 그런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골목 안 작은 식당은 몇 년 전 대로변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본관과 별관을 갖춘 제법 큰 식당이 되었다. 계단 양옆을 가득 채운 유명인들의 사인과 사진은 이곳이 지나온 시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향하게 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존슨탕'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부대찌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햄과 소시지가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하지만 한 숟갈 떠보면 전혀 다른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그 맛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우 사골을 푹 고아낸 육수에 양배추와 햄, 소시지를 넣고 끓여낸다. 과거 주방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양배추를 집게로 계속 흔들어 가며 우려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우러난 양배추의 은은한 단맛이 국물 전체를 감싼다. 자극적인 매운맛이나 조미료의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담백함과 깊이가 차분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양배추를 얹어 테이블로 낸다.
존슨탕의 시작도 흥미롭다.
메뉴판에 적혀 있듯 독일 이민 시절, 구하기 쉬운 양배추와 햄, 소시지를 사골 육수에 넣어 가족들에게 해주던 음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뜻의 '좋은탕'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미국 대통령 존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이름을 '존슨탕'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물어보는 손님들이 많아 아예 메뉴판에 별도 소개페이지를 할애했다.
그 이름만큼이나 음식도 독특하다. 한국의 사골 문화와 독일식 육가공품, 그리고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만나 만들어 낸 일종의 퓨전 음식이다. 지금처럼 'K-푸드'라는 말이 없던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탄생한 생활 속 음식 문화인 셈이다.
이 집에서 존슨탕과 함께 꼭 주문하는 메뉴가 있다.
소고기 소시지다.
무쇠 철판 위에 말발굽 모양으로 올려져 나오는 모습부터 압도적이다.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주변 시선이 한 번쯤 머문다. 보기에는 투박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생각이 달라진다. 과도한 향신료나 짠맛 대신 고기 본연의 풍미와 육즙이 살아 있다.
처음 먹는 사람들은 대개 "소시지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우리가 익숙하게 먹어온 공장식 소시지와는 결이 다르다.
팬데믹을 전후해 품절 사태가 벌어질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바다식당을 찾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다. 부족하면 칠면조 소시지를 추가하고 가벼운 술 한잔을 곁들인다. 신기하게도 이 집에서는 오래 앉아 있지 않게 된다.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식사와 대화가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그래서 더 좋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가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는 식당 같다.
돌이켜보면 바다식당은 내게 단순한 맛집이 아니었다.
낯선 서울에서 위로를 받았던 곳이었고, 좋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었던 식당이었으며, 때로는 혼자 찾아가도 어색하지 않았던 공간이었다. 수많은 식당이 생겼다가 사라졌고, 유행하던 메뉴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바다식당은 30년 넘게 내 기억 속 한 자리를 지켜왔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벽에 걸린 수많은 사연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고 이선균 배우가 남긴 “오랜만에 먹어요. 맛나네요”
맛은 또 이렇게 사람을 추억하기도 한다.
좋은 식당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를 다시 그 자리로 불러낸다.
사회 초년생의 기억과 오늘의 내가 같은 식탁에 마주 앉을 수 있는 곳.
바다식당은 그런 공간이다.
이것이 30년째 이어지고 있는 나와 바다식당의, 첫 번째 맛있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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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골목 맛집 탐험가) = 리테일 소매기업 30년 경력으로 3000여 개 점포 개발을 이끈 현장형 미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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