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스토리] 갓 지은 밥 한 그릇의 위로, ‘들깨미역국’ 단 하나의 메뉴로 미쉐린에 오른 ‘오일제’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1-25 23:02:59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2025년도 햅쌀이 나오는 시기다. 햅쌀로 갓 지어 윤기가 흐르는 밥은 별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을 비울 만큼 꿀맛이다. 이런 계절에 더 떠오르는 따끈한 한 끼, 바로 그 ‘따뜻한 밥 한 그릇의 힘’으로 미쉐린의 선택을 받은 곳이 있다. 서울 용산 삼각지 골목에 자리한 미역국 전문점 ‘오일제’가 미쉐린 가이드 2026 신규 셀렉션에 이름을 올렸다. 메뉴는 단 하나, 들깨 미역국. 단출하지만 흔들림 없는 완성도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다.
들깨 미역국 하나로 올린 미쉐린 셀렉션
오일제의 미역국은 전라도 거금도에서 나는 어린 미역만 사용한다. 질긴 부분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며, 특유의 감칠맛이 짙게 남는다. 여기에 한우 사골 육수와 전남 강진산 들깨를 볶아 곱게 갈아 넣어 국물은 묵직한 듯 개운하고, 들깨의 고소함은 과하지 않게 퍼진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맑으면서도 깊은 맛의 균형이 좋다”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역을 특제 간장에 찍어 먹는 방식도 오일제만의 특징이다. 신동훈 셰프가 직접 배합해 숙성한 간장은 달큰하면서도 짭짤한 풍미로 미역의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가마솥밥 역시 오일제의 핵심이다. 갓 도정한 고시히카리 쌀을 가마솥에 지어 정해진 네 타임(10:00, 11:30, 12:30, 13:30)에 맞춰 내는데, 투명하게 빛나는 윤기와 탱탱한 식감이 특징이다. 신동훈 셰프의 추천대로 밥을 반쯤 남겼을 때 미역국에 말아 먹으면 들깨의 고소함과 사골 육수의 깊이가 밥알 사이에 배어 더욱 진한 풍미를 낸다. 낙지젓, 갓김치, 달짝지근한 간장소스까지 반찬 구성은 단출하지만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고 조화롭다. 국내산 재료를 고집한 김치류와 전라도 곰소의 젓갈은 미역국의 부드러움에 짭짤한 포인트를 더한다.
삼각지 골목 끝 작은 나무문을 열면 은은한 새소리와 따뜻한 밥 냄새가 가장 먼저 맞아준다. 낮은 조도, 나무의 질감, 선반 위 반짝이는 병들, 조용히 끓고 있는 뚝배기 등 공간은 과한 장식 없이 차분하다. 미역국이라는 집밥 같은 메뉴를 다루지만, 분위기는 고요하고 감각적이다. 손님층은 부모님을 모신 가족 단위 방문객과 일본인 관광객 비율이 높다. “미역국은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는 편견을 뒤집은 셰프의 의도가 그대로 적중한 셈이다.
금요일 단 하루의 생일상, 그리고 집에서도 즐기는 깊은 맛
오일제는 신동훈 셰프 1인 식당이다 보니 하루 판매량은 50그릇으로 제한된다. 좌석도 홀과 룸 포함 18석뿐으로 대부분 예약으로 이뤄진다. 예약 없이 워크인도 가능하지만, 재료소진으로 영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방문해도 식사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일제만의 특별한 이벤트로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단 한 팀만을 위한 생일상 코스를 진행한다. 들깨 미역국 정찬을 기본으로 잡채·갈비찜·샐러드·젤라토까지 더해 가족의 생일을 챙기기에 충분한 상차림을 선보인다. 예약은 매달 1일 오후 5시, 인스타그램 DM으로만 받으며 공지 직후 거의 즉시 마감된다.
최근에는 오일제 미역국 포장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들깨와 참기름 향이 깊게 배어 있고, 사골 육수 기반의 진한 국물 맛이 그대로 재현된다. 최소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하며, 2인분 3만 5,000원에 구매할 수 있고 김치와 젓갈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회용 용기 대신 스테인리스 용기로 포장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단 하나의 메뉴로 미쉐린의 선택을 받은 오일제는 복잡한 메뉴 구성이나 과한 연출 없이 좋은 재료와 정확한 조리, 갓 지은 밥이라는 기본 요소만으로 승부한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 줄 수 있는 위로를 정성스럽게 담아낸 이곳은, 미역국이 얼마나 깊고 풍성한 요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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