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 기자의 Food Tavel> 음식으로 행운을 불러들이는 홍콩의 '설맞이 요리'
임요희
cooknchefnews@naver.com | 2022-01-24 16:38:27
- 동전을 닮아 재물을 불러들이는 ‘라장’과 행운의 디저트 요리 ‘탕위안’
홍콩인은 섣달그믐에 연야반(年夜飯)을 먹는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크리스마스이브 만찬이다. 홍콩인은 아무리 바빠도 온 가족이 모이는 연야반 행사만은 지키려고 한다. 만약 누군가 행사에 못 오게 되면 자리를 비워두며, 술을 못 먹는 사람도 이날만큼은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댄다.
연야반을 대표하는 요리는 분채(盆菜)다. 광둥어로 푼초이(Poon Choi)라고 한다. 분채는 그림글자에 가깝다. 盆은 사람들이 평평한 그릇 주위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고, 菜는 음식이 켜켜이 쌓인 모습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모듬요리’라고 할 수 있다. 푼차이는 어려운 시절 홍콩인의 원기를 북돋우는 보양식이었다. 푼초이에는 섣달그믐을 든든하게 먹고 새해를 기운차게 맞이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푼초이를 만들려면 사흘이 걸린다고 한다. 첫날에는 푼초이를 끓이기 위한 장작을 준비하고, 둘째 날에는 시장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사 오며, 셋째 날에는 육수를 끓인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식재료를 손질하여 그릇에 쌓는데 이때 스테인레스 대야에 담는 것이 원칙이다. 그대로 불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푼초이를 만드는 방식은 집집마다 가풍마다 다르지만 보통 가장 아랫단에는 무가 깔린다. 그 위에는 죽순과 오징어가 올라가고, 그 위에는 돼지고기가 올라가고, 다시 그 위에는 버섯과 야채를 올린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생선과 어묵, 해삼, 새우, 닭, 오리, 전복, 상어지느러미 등을 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육수를 붓는다.
‘푼초이’의 기원은 송나라
푼초이의 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송나라 때 대장군 문천상(文天祥)이 전쟁에 패하여 광둥 지역으로 퇴각했다. 날은 저물고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이 없었다. 이때 마을 주민들이 집에 있는 재료를 들고 찾아와 대장군에게 이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한다. 집에서 푼초이를 만들어 먹는 게 복잡하다 보니 홍콩인은 레스토랑을 방문해 간편하게 분채를 즐긴다. 홍콩 침사추이에 자리 잡은 ‘로얄 가든 호텔’ 내 동라이순(东来顺, Dong Lai Shun)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으로 씨푸드를 주재료로 한 매운맛 푼초이를 명절 메뉴로 선보이고 있다.
홍콩 인구의 34%가 유연한 반채식(플렉시테리언)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최근 홍콩정부는 공중보건, 동물보호, 식량위기, 기후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그린먼데이(Green Monday)는 ‘식물 기반’의 식문화를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호랑이의 해를 맞아 채식주의자를 위한 ‘페스티벌 샤부샤부’를 선보인다.
페스티벌 샤부샤부는 육수 대신 아몬드 밀크를 수프 베이스로 삼으며, 고기 대신 옴니포크(OmniPork)을 사용한다. 옴니포크란 유전자변형을 거치지 않은 식물성단백질 식품으로 육류 대용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들 새해 음식은 동물 살생으로 인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우며 콜레스테롤과 인공색소, MSG가 없어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홍콩 현지인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윙와(Wing Wah)는 7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홍콩의 로컬 베이커리다. 현지인은 물론 많은 여행자들이 월병, 판다쿠키, 에그롤을 사기 위해 윙와를 찾는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홍콩사람들은 홍콩소시지 라장(臘腸)을 사기 위해 윙와를 방문한다.
홍콩인은 새해에 소시지를 먹는 풍습이 있다. 베이커리에 소시지를 파는 게 신기하지만 홍콩인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라장은 일반 소시지처럼 굽거나 삶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할때 쌀 위에 얹어 찌거나, 잘게 썰어 야채와 볶아 밥반찬으로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래떡의 단면이 엽전을 닮아 부자 되라는 의미로 새해에 떡국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홍콩에서 라장이 새해 행운의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도 홍콩 소시지 단면이 동전을 닮아서가 아닐까.
홍콩에서는 설맞이 축제가 보름간 이어진다. 축제가 끝나는 날은 우리의 정월 대보름이다. 이날은 중화권에서는 원소절이라고 부르는데 홍콩인은 전통음식 탕위안(湯圓)을 만들어 먹으면서 춘절을 마무리 짓는다. 탕위안(湯圓)의 기원은 중국 근대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중화민국을 중화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를 자칭한 위안스카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원세개(袁世凯)가 된다. 탕원(湯圓)은 사실 탕원(湯袁)의 의미로 위안스카이를 멸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탕위안은 찹쌀 경단을 물에 삶아서 만드는데 동그란 모양이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므로 새해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홍콩의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 두들스(Duddell's)는 호랑이의 해를 맞이해 구정 케이크를 선보인다. 두들스에서 푸딩을 주문하면 홍콩의 로컬 디자인 그룹 G.O.D.가 디자인한 스페셜 에디션 박스에 담아준다. 이 상자는 홍콩이 전통 찻잔에서 볼 수 있는 전통 문양을 손으로 그려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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