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 이름 불리지 못한 26명, 그들의 조리를 기억하며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2-18 21:00:28

방송이 담지 못한 61개의 접시, 그 안에 담긴 조리사의 땀과 철학 사진 = 넷플릭스

 [Cook&Chef = 이경엽 기자] 80명의 흑수저가 경연장에 섰다. 저마다 인생을 건 한 접시를 들고.

1라운드가 끝났을 때, 살아남은 이는 19명이었다. 탈락한 61명은 짐을 싸서 돌아갔다. 서바이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난다. 냉혹하지만 공정하다. 적어도 규칙 안에서는.

그러나 본지가 방송을 정밀 분석한 결과, 불편한 사실이 드러났다. 80명의 흑수저 중 방송에서 닉네임이라도 한 번 불린 참가자는 54명뿐이었다. 나머지 26명은 이름조차 호명되지 못한 채,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편집됐다.

탈락은 받아들일 수 있다. 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심사위원의 기준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다는 것. 자신이 만든 요리가 단 1초도 화면에 비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탈락과는 다른 차원의 상실이다.

쿡앤셰프는 그 26명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들의 요리가 어떤 맛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조리사였고, 그들 역시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한 접시를 들고 그 자리에 섰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숫자 뒤에 숨겨진 26명의 조리사

먼저 데이터를 정리하자. 흑백요리사2의 1라운드 '흑수저 결정전'에는 총 80명의 참가자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에 '히든 백수저'로 출연한 김도윤 셰프와 최강록 셰프 2명이 더해져, 심사 대상은 총 82명이었다.

1라운드를 통과해 2라운드에 진출한 흑수저는 19명. 히든 백수저 중에서는 최강록 셰프만이 생존에 성공했다. 김도윤 셰프는 미쉐린 1스타 셰프임에도 불구하고 안성재 심사위원의 냉정한 평가 앞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여기까지는 방송을 본 시청자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문제는 그 뒤에 있다.

본지가 1~3화 방송 전체를 분석해 닉네임이 자막이나 음성으로 한 번이라도 언급된 참가자를 집계한 결과, 그 수는 54명에 불과했다. 80명 중 54명. 나머지 26명은 방송 어디에서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26명이라는 숫자를 다시 생각해 보자. 이것은 전체 참가자의 32.5%에 해당한다. 세 명 중 한 명꼴로 이름조차 불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방송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80명의 요리를 모두 상세히 다루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제작진도 선택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시청자의 흥미를 끌 만한 캐릭터, 드라마틱한 서사, 예능적 재미. 아마 이런 요소들이 고려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로, 26명의 조리사는 자신의 요리를 세상에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들이 몇 달간 준비했을 시그니처 메뉴, 밤새 연습했을 플레이팅, 긴장된 손으로 심사위원에게 내밀었을 접시. 그 모든 것이 편집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숫자로 보면 26이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26명의 인간이 있고, 26개의 인생이 있고, 26가지의 조리 철학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탈락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탈락이라는 단어는 냉혹하다. '떨어졌다'는 뜻이다.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리사의 세계에서 탈락은 끝이 아니다. 방송에서 이름이 불린 54명 중에서도 탈락자는 35명이나 된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결코 '실력이 없어서' 탈락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흑수저 80명 중에는 방송 전부터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셰프들도 적지 않다. 신동민(요리과학자), 신계숙(중식 폭주족), 명현지(그때 명셰프), 이재훈(서촌 황태자), 남성렬(황금손), 이순실(평양 큰형님) 등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이미 친숙한 인물들이다.

또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검증받은 전문가들이기도 하다. 손님들이 줄을 서고, 매출이 증명하고, 입소문이 확인해 준 실력자들이다. 그런데 흑백요리사2의 기준에서는 탈락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방송의 심사 기준과 실제 요리 실력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두 명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해서, 그 조리사의 요리 인생 전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흑백요리사2에서 탈락했지만, 내일도 자신의 주방에서 요리를 할 것이다. 손님에게 음식을 내고, 그 음식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하물며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26명은 어떨까. 그들은 방송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됐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조리사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주방에서 칼을 잡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요리를 먹고 행복해하는 손님이 있을 것이다.

방송이 그들을 기억하지 않아도, 그들의 요리는 계속된다. 탈락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조리사의 손맛, 조리사의 철학, 조리사의 자존심. 그것은 편집으로 지울 수 없다.

카메라가 비추지 않은 곳에서도 요리는 계속됐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는 특정 참가자들을 집중적으로 따라다녔을 것이다. '쓰리스타 킬러'가 손종원 셰프에게 도발하는 장면, '술 빚는 윤주모'가 소줏고리를 설치하는 장면, '서울 엄마'가 정성스레 망치질을 하는 장면.

그러는 동안 26명의 참가자들도 같은 공간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든 비추지 않든,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요리를 완성해 나갔을 것이다. 채소를 썰고, 불을 조절하고, 간을 맞추고, 플레이팅을 했을 것이다.

그 요리가 심사위원 앞에 놓였을 때, 그들의 심장은 얼마나 빠르게 뛰었을까. 백종원의 표정을 살피고, 안성재의 반응을 기다리며, 몇 개월간의 준비가 심판받는 그 순간을 견뎠을 것이다.

그리고 탈락을 통보받았을 때. 어떤 이는 담담히 받아들였을 것이고, 어떤 이는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분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자신의 실력을 탓했을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의 순간들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처리됐다.

시청자들은 알지 못한다. 26명 중 누가 어떤 요리를 만들었는지. 그 요리에 어떤 사연이 담겨 있었는지. 왜 그 메뉴를 선택했는지. 심사위원이 어떤 표정으로 그 요리를 맛봤는지.

하지만 그 순간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카메라가 비추지 않았을 뿐, 그곳에서도 요리는 만들어졌고, 심사는 이루어졌고, 희비는 갈렸다. 26명의 조리사들은 자신의 전부를 담은 접시를 내밀었고, 그 접시는 누군가에게 평가받았다. 다만 그 과정이 '방송 가치'가 없다고 판단됐을 뿐이다.

백종원은 26개의 접시 앞에서 무엇을 봤는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심사위원 백종원 대표는 26명의 요리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물론 그도 80명의 요리 중 상당수를 직접 심사했을 것이다. 26명의 접시 중 일부는 분명 그의 앞에도 놓였을 것이고, 그는 그 요리를 맛보고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 과정이 방송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방송에 나온 백종원의 심사 장면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그는 과연 '조리'를 보고 있었을까, 아니면 '볼거리'를 보고 있었을까.

합격자인 '아기 맹수' 참가자의 심사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녀는 '박주산채'라는 주제로, 고기 없이 나물만으로 구성된 주안상을 차려냈다. 냉이를 볶아 오징어 풍미를 내고, 방풍나물과 꽃게 알을 무쳐내는 등 식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요리였다.

참가자가 "냉이를 볶았을 때 오징어 풍미가 나서..."라며 자신의 조리 철학을 설명할 때, 백종원은 귀담아듣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술을 연거푸 들이켜더니 딱 한마디를 남겼다. "어, 나물로도 술을 먹을 수 있네. 생존입니다." 셰프의 조리 의도나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술안주로서의 가치'에 반응한 것이다.

'4평 외톨이' 참가자에게는 더 가혹했다. 그는 4평 남짓한 공간에서 혼자 묵묵히 요리해 온 셰프다. 그가 내놓은 떡갈비 위에는 트러플이 올라가 있었다. 심사위원이라면 응당 "왜 트러플을 올렸나요?", "훈연 향과 트러플의 조화를 의도했나요?"라고 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백종원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떡갈비에 왜 쌩뚱맞게 트러플을 올려놨대?"였다. 트러플을 얹은 의도를 묻기보다 비아냥을 먼저 던진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셰프의 창의적 시도를 '쌩뚱맞다'는 말 한마디로 폄하한 것으로 읽혔다.

그가 방송에 나오지 않은 26명의 접시 앞에서는 달랐을까. 만약 그 접시들 앞에서도 "신기하다", "술 땡긴다" 같은 직관적인 반응만 보였다면, 26명의 진정성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화려한 퍼포먼스는 없지만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요리, 눈에 띄는 캐릭터는 없지만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한 접시. 그런 요리들이 제대로 평가받았다면, 편집의 방향도 달라졌을 수 있다.

무관의 명예, 쿡앤셰프가 기억하겠다

흑백요리사2에서 우승하면 '흑수저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결승에 오르면 '파이널리스트'가 된다.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면 '화제의 인물'로 기억된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한 이들, 특히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26명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은 없다. 그들은 그냥 '참가자 80명 중 한 명'으로 뭉뚱그려질 뿐이다.

쿡앤셰프는 이들에게 '무관의 명예'를 드리고 싶다.

1등을 하지 못해도 명예로운 조리사는 있다. 방송에 많이 나오지 못해도 훌륭한 셰프는 있다. 심사위원 두 명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요리 인생 전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라. 흑백요리사2에 지원할 정도의 용기를 가진 조리사가 과연 평범한 사람일까. 전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이 지원했을 것이다. 그중에서 80명으로 추려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일이다. 서류 심사, 예비 면접, 각종 검증을 통과해야만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26명은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경연장까지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미 검증받은 실력자들이다. 다만 1라운드의 특정 심사 기준, 그리고 방송 편집의 방향에서 선택받지 못했을 뿐이다.

쿡앤셰프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방송에서 이름이 지워진 26명, 당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화려한 편집에 가려져 전하지 못한 조리 철학이 있다면 우리에게 들려달라. 그것이 요리 전문 매체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방송이 놓친 것을 줍고, 카메라가 담지 못한 것을 기록하는 것. 인기 있는 셰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조리사들을 응원하는 것.

61명의 탈락자, 그들이 남긴 것

시야를 좀 더 넓혀 보자. 이름이 불린 54명 중에서도 탈락자는 35명이다.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26명까지 합치면 총 61명이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61명.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61명의 조리사가 각자의 주방을 떠나 경연장에 왔다. 어떤 이는 가게 문을 며칠간 닫았을 것이고, 어떤 이는 휴가를 냈을 것이다.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몇 달의 시간을 이 경연에 투자했을 것이다.

그들은 왜 참가했을까. 우승 상금?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요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조리사로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들과 겨뤄보고 싶어서.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꿈을 안고 경연장에 섰다가, 탈락을 통보받고 돌아가는 심정은 어땠을까. 특히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26명은, 자신이 왜 탈락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떠나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흑백요리사2에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그들은 도전했다. 안전한 자신의 주방을 떠나 낯선 경연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했다. 그 용기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배웠다.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들이 어떻게 요리하는지,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이 경험은 그들의 요리 인생에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셋째, 그들은 연결됐다. 80명의 참가자들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동료가 됐다. 이 인연은 앞으로 그들의 요리 인생에서 자산이 될 것이다.

탈락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흑백요리사2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아, 더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셰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시즌3에서 재도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방송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요리를 알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다음 한 접시를 기다리며

글을 마무리하며, 26명의 '이름 없는 조리사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들의 요리를 우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방송이 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의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자막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당신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당신들도 인생을 건 한 접시를 들고 심사위원 앞에 섰다는 것을. 당신들의 손에도 수년간의 칼눈이 배어 있고, 당신들의 머릿속에도 자신만의 레시피와 철학이 있다는 것을.


탈락은 끝이 아닙니다. 방송에서 이름이 지워졌다고 해서 조리사로서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내일도 주방에 설 것이고, 손님에게 요리를 내놓을 것이고, 그 요리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쿡앤셰프는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당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겠습니다. 방송이 담지 못한 당신들의 조리 철학, 카메라가 비추지 못한 당신들의 열정을 우리는 찾아내겠습니다.


흑백요리사2의 무대에서는 스쳐 지나갔지만, 조리사로서의 무대는 계속됩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다음 한 접시를 기다립니다. 그 접시에 담길 당신들의 땀과 철학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들의 이름이 불리는 날이 오기를. 방송이든 아니든, 세상이 당신들의 요리를 알아보는 날이 오기를. 쿡앤셰프는 그날까지 당신들의 편에 서 있겠습니다.


[알림] 이어지는 3편 〈[흑백요리사2] 백종원은 탈락시키지 않는다...편집이 만든 '역할 분담'〉은 
12월 19일(금) 오후 9시에 공개됩니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방송에 이름이 나오지 않은 26명 (가나다순)
그때 명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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