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타치오 다음은 헤이즐넛? 기후가 흔드는 견과류 시장의 새로운 변수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2-05 17:19:44

이상기후가 만든 공급 불안, ‘녹색 금’의 위기 신호
가격·산업·소비 트렌드까지 바꾸는 조용한 변화
사진 = 픽사베이

[Cook&Chef = 송채연 기자] 디저트와 베이커리 매대를 채우는 대표 원료 가운데 하나인 헤이즐넛이 최근 글로벌 식품 시장에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두바이 초콜릿’과 ‘두바이 쫀득 쿠키’ 열풍으로 피스타치오가 수급 불안과 가격 급등으로 ‘대란’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것처럼, 헤이즐넛 역시 공급과 소비 흐름이 동시에 흔들리며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헤이즐넛은 초콜릿 스프레드, 쿠키, 케이크, 커피 음료 등에 폭넓게 쓰이는 핵심 재료다. 특정 브랜드나 제품에서는 원료 비중이 높아, 수급 변화가 곧바로 원가와 가격에 반영된다. 그만큼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한 농산물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다름 아닌 ‘기후 변화’다.

기후 변화가 흔든 세계 최대 산지

헤이즐넛 생산의 중심지는 튀르키예를 비롯한 흑해 연안 지역이다. 이 지역은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산지로, 매년 글로벌 가격을 좌우하는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지역에서 봄서리, 가뭄, 폭염, 집중호우 같은 이상기후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화 시기에 한파가 찾아오거나, 성장기에 물 부족이 이어지면서 수확량이 크게 줄어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해에는 평년 대비 생산량이 크게 감소하며 국제 시장에도 즉각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유럽의 다른 전통 산지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기후 불안정과 병충해가 겹치면서 수확량 변동 폭이 커졌고, 이는 전체 유럽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다. 결국 주요 생산국 전반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처럼 생산 기반이 취약해지자 국제 도매 가격은 큰 폭으로 오르내리며 변동성이 확대됐다. 업계에서는 헤이즐넛을 ‘녹색 금’이라 부를 만큼, 기후와 시장 상황에 민감한 전략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공급망을 뒤흔드는 ‘보이지 않는 비용’

헤이즐넛 수급 불안은 단순한 원료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원가 부담 증가는 곧바로 식품 기업의 생산 전략과 제품 구성에도 영향을 준다. 일부 기업들은 원료 확보를 위해 장기 계약을 확대하거나, 생산지와 직접 협력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줄이려 한다. 동시에 특정 제품에서 헤이즐넛 사용 비중을 조절하거나, 대체 원료를 검토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초콜릿·제과 업계는 헤이즐넛 의존도가 높은 만큼 부담이 크다. 공급이 불안정해질수록 재고 관리 비용과 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시장 전반에 누적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지를 다변화하려는 시도도 병행하고 있다. 남미나 북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재배 가능성을 모색하며,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이다. 이는 단기 대응이 아니라 장기 생존 전략에 가깝다.

소비 트렌드가 만든 또 하나의 압력

공급 불안과 함께 수요 증가도 시장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최근 몇 년간 건강·프리미엄 식품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견과류 소비는 꾸준히 늘고 있다. 헤이즐넛 역시 고소한 풍미와 영양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제품에 활용되며 수요가 확대됐다. 커피 전문점의 헤이즐넛 음료, 고급 초콜릿, 저당·고단백 디저트 등에서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소비 기반은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생산은 불안정한 구조가 형성되면서, 가격 압력은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단기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에 가깝다고 본다. 기후 변화가 지속되는 한 생산 불안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고, 동시에 견과류 중심 식문화는 쉽게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대란’인가, 새로운 정상인가

헤이즐넛 시장이 피스타치오처럼 일시적 대란으로 끝날지, 아니면 장기적 구조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안정적인 공급을 전제로 한 시장 환경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고, 농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견과류 시장 역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가격 변동성과 공급 불안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정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헤이즐넛을 둘러싼 변화는 단순히 하나의 식재료 문제를 넘어, 기후와 식품 산업, 소비 문화가 맞물린 구조적 흐름을 보여준다. 피스타치오에 이어 헤이즐넛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즐기는 한 조각의 초콜릿과 한 잔의 커피 뒤에는, 이미 새로운 시대의 식탁을 둘러싼 변화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Cook&Chef /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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