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경동시장, 셰프들이 봄을 사러 가는 시장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4-27 18:04:49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과 청량리 일대에는 오래된 식재료의 길이 이어져 있다. 경동시장이다. 이곳은 한약재와 농산물, 산채류, 건어물, 잡곡, 채소가 함께 움직이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최근에는 복합문화공간과 청년몰, 옛 경동극장을 활용한 공간들이 주목받으며 젊은 방문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동시장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중심은 여전히 식재료에 있다.
경동시장은 단순히 오래된 시장이 아니다. 서울로 들어오는 농산물과 산야 채취 특산물이 모이던 유통의 장소였고, 지금도 셰프들이 계절의 재료를 확인하러 찾는 시장이다. 특히 봄이 되면 냉이, 달래, 두릅, 취나물, 방풍나물, 머위, 고사리 같은 봄나물과 함께 도라지, 대추, 황기, 인삼, 건어물, 잡곡, 고추와 마늘 등 한식의 기본을 이루는 재료들이 한자리에 놓인다.
청량리 일대에 형성된 식재료의 집산지
경동시장은 1960년에 개설된 서울의 대표 전통시장이다. 동대문구 기록 자료에 따르면 경동시장은 농산물의 도매와 소매 직거래 유통을 해왔으며, 고추·마늘·채소와 도라지·산나물 등 산야 채취 특산물을 주로 취급해 왔다. 6·25전쟁 이후 서울의 생활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경기 북부와 강원도 일대의 농산물과 채소가 옛 성동역과 청량리역을 통해 모였고, 이를 반입하고 판매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 배경은 경동시장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경동시장은 처음부터 단순한 소매시장이 아니라, 서울 동쪽으로 들어오는 식재료의 집산지에 가까웠다. 산과 들에서 채취한 나물, 저장과 조리에 필요한 건재료, 한식 양념의 바탕이 되는 고추와 마늘, 약재와 농산물이 함께 모이며 시장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경동시장의 형성과 변천을 설명하며, 1960년 6월 공설시장으로 출발한 뒤 도시화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고 기록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상업적 농업의 영향으로 고추·마늘·옥수수 등 밭작물과 버섯·고사리·도라지 같은 산채류, 밤·대추 등 건과류가 동부 산지로부터 모여들었다.
오래된 시장의 진화
경동시장의 변화는 식재료 유통의 변화와 함께 진행됐다. 초기에는 경기 북부와 강원도 일대에서 들어온 농산물과 산채류가 중심이었다면, 이후 인삼, 한약재, 건어물, 농수산물, 건강식품 등으로 품목이 넓어졌다. 경동시장은 하나의 시장명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제기동과 청량리 일대의 여러 시장과 상가가 맞물린 큰 상권으로 이해된다.
이 일대는 서울약령시와도 맞닿아 있다. 서울약령시는 국내 한약재 유통의 상당 비중을 담당하는 한약재 유통지로 소개된다. 서울약령시 공식 자료는 국내 한약재 유통의 70%를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경동시장 일대에서는 식재료와 약재의 경계가 가깝다. 인삼, 대추, 황기, 감초, 도라지, 오미자 같은 재료는 한약재이면서 동시에 한식의 보양 문화와 연결되는 식재료다.
경동시장의 현재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경동시장이 1960년 6월 공식 개설된 뒤 먹거리와 한약재를 중심으로 대규모 재래시장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방치되어 있던 경동극장을 개조해 젊은 세대가 찾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고 소개한다.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 안내 자료 역시 경동시장이 인삼특화상가에서 청년몰, 스타벅스, 야시장 등 문화복합공간을 품은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경동시장의 본질을 바꾸기보다, 오래된 시장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동선을 만들고 있다. 경동시장의 중심은 여전히 재료다. 시장의 진화는 식재료 시장이라는 바탕 위에 복합문화공간, 청년몰, 관광 동선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봄 식재료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장
봄의 경동시장은 식재료의 계절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봄나물은 마트의 포장된 형태로도 만날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잎의 두께와 줄기의 수분감, 향의 강도, 흙의 상태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셰프에게 시장은 단순한 구매처가 아니다. 재료의 상태를 보고, 향을 맡고, 손으로 질감을 확인하며 조리법을 떠올리는 장소다.
경동시장에서 만나는 봄 식재료는 다양하다. 냉이와 달래는 이른 봄의 향을 전하고, 두릅과 방풍나물은 쌉싸래한 맛과 독특한 향으로 계절감을 만든다. 취나물과 머위, 고사리, 도라지 같은 산채류는 데침, 무침, 볶음, 장아찌 등 한식의 여러 조리법과 연결된다. 고추와 마늘, 참깨와 들깨, 잡곡, 건어물, 약재까지 함께 볼 수 있다는 점도 경동시장의 강점이다.
한식에서 식재료는 단독으로 쓰이지 않는다. 나물은 장과 기름, 마늘, 파, 깨와 만나 맛을 완성하고, 건어물은 육수와 조림, 볶음의 바탕이 된다. 약재는 탕과 보양식, 차와 음청류로 이어진다. 경동시장은 이러한 한식의 재료 체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셰프들이 다시 찾는 재료 시장
최근 경동시장은 외식업계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셰프들이 경동시장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시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유통망에서 표준화된 형태로 만나는 식재료와 달리, 경동시장에서는 제철 나물의 상태, 말린 재료의 향, 산지별 차이, 약재의 쓰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식 파인다이닝 ‘주은’의 박주은 셰프가 경동시장에서 봄나물을 장보는 내용이 소개된 사례도 있다. 해당 기사에서는 셰프에게 봄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봄나물로 찾아온다고 표현하며, 경동시장을 식재료 탐색의 장소로 다루었다. 또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모수의 안성재 셰프가 경동시장을 방문해 식재료를 구매하는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셰프들이 주목하는 식재료 시장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있다.
서울약령시와 맞닿은 보양 식문화
경동시장의 재료성은 서울약령시와 맞닿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서울약령시는 한약재 유통지이면서 동시에 한식의 보양 식문화와 연결되는 공간이다. 인삼, 대추, 황기, 감초, 도라지, 오미자 같은 재료는 약재로 분류되지만, 한식에서는 삼계탕, 약선 음식, 한방차, 음청류, 죽과 탕의 재료로도 쓰인다.
이 지점에서 경동시장은 단순한 전통시장을 넘어선다. 이곳에서는 약과 음식의 경계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재료는 몸을 보하는 음식이 되고, 음식은 계절을 견디는 방식이 된다. 봄 식재료가 경동시장 안에서 더 풍부하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나물과 봄채소, 약재와 건재료가 함께 놓이면서 한식의 계절성과 보양성이 하나의 시장 안에서 연결된다.
현재의 경동시장, 오래된 시장을 다시 걷게 하다
최근 경동시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 미디어허브는 경동시장이 1960년에 개설된 재래시장으로, 6·25전쟁 이후 경기 북부와 강원도 등지에서 들어온 농산물이 청량리역 부근으로 몰려들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또 농산물과 한약재, 인삼으로 이름을 알렸고, 현재는 수산물과 다른 수요 상품까지 판매 영역을 넓혀 ‘없는 게 없는’ 시장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경동시장의 현재는 과거와 단절된 모습이 아니다. 청량리 일대의 교통과 함께 형성된 농산물 집산지, 서울약령시와 맞닿은 약재 유통, 봄나물과 산채류가 모이는 식재료 시장, 그리고 젊은 세대가 찾는 복합문화공간이 함께 놓여 있다. 오래된 시장의 구조 위에 새로운 방문 방식이 더해진 셈이다.
다만 경동시장을 단지 ‘젊어진 전통시장’으로만 읽으면 중요한 부분이 빠진다. 경동시장의 힘은 새로 들어선 공간에만 있지 않다. 봄나물과 산채류, 고추와 마늘, 약재와 건재료, 수산물과 잡곡이 한곳에 모이는 식재료의 밀도에 있다. 셰프들이 경동시장을 찾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오래된 시장에서 오늘의 한식을 보다
경동시장은 서울 동쪽의 오래된 전통시장인 동시에, 오늘의 한식 재료가 모이고 흩어지는 공간이다. 경기 북부와 강원도 일대의 농산물이 청량리 일대로 들어오며 형성된 역사, 고추와 마늘, 채소와 산나물을 취급해 온 시장의 성격, 서울약령시와 맞닿은 약재 유통, 그리고 셰프들이 다시 찾는 식재료 시장이라는 현재성이 함께 놓여 있다.
봄의 경동시장을 걷는 일은 단순한 장보기가 아니다. 봄나물의 향과 약재의 냄새, 건어물과 잡곡, 고추와 마늘이 한데 놓인 풍경 속에서 한식의 재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경동시장은 오래된 시장이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재료는 여전히 오늘의 식탁과 외식 현장을 향해 있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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