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아의 ‘책상&밥상’] (1) ‘먹고사니즘’의 재발견
유진아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10-19 15:01:12
나를 위해 차린 밥상에서는 사는 맛이 난다
[Cook&Chef = 유진아 칼럼니스트] “아침밥 됩니다” 여행길에 발견하면 가장 반가운 간판이다. 한국식 조식 정찬, 그러니까 백반을 일찍부터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쌀밥에 된장국, 나물, 마른반찬, 김치, 구이김. 거기에 계란후라이까지 있으면 이보다 더 훌륭한 아침밥은 없다. 속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이토록 담백한 밥상. 마라탕과 불닭, 엽떡 같은 자극적인 음식이 대유행하는 시대에 백반을 찾아 헤매는 것은 정말 시대착오적인 취향이다. 손가락 한 번 까딱이면 전 세계의 산해진미가 집으로 배달되는 날들. 하루가 머다하고 두쫀쿠에서 버터떡으로 먹거리 유행이 숨가쁘게 지나가는 지금에도 백반집은 멸종하지 않았다.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그 이유를 그토록 평범한 일상의 밥상이 가지는 힘으로 설명한다.
더 맛있는 음식, 더 다양한 음식,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음식을 탐닉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일본의 한 여성이 음식의 미니멀리즘을 선언했다. 먹고 산다는 것은 대단히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상당히 소박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밥상은 밥, 된장국, 채소절임을 기본으로 간혹 생선구이나 두부튀김을 곁들인다. 세상의 다양한 맛들을 경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기보다 평범한 밥상, 기본에 충실한 밥상에서 만족하는 법을 찾은 것이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밥상은 직접 요리하기에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밥상이다. 다른 이들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자립의 밥상이다. 그녀의 관점에서 먹고 사는 일은 내 입에 밥을 넣는 일이다. 더 많은 돈과 더 다양한 맛이 있다고 한들, 실제로 내 입에 들어가는 밥 한 톨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늙어서도 매일같이 자신을 먹일 수 있는 단순한 조리법, 간단한 재료를 추구한다. 차근히 읽어 내려가며 만나는 그녀의 요리는 저렴하고도 쉽게 느껴져서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누구나 그런 밥상에 만족해야만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음식을 직접 차리는 성취감, 좋아하는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회복하라고 말한다.
백반을 애정한다면서도 정작 우리집 주방은 소위 ‘먹고사니즘’을 이유로 지난 몇 년간 파업에 들어갔다. 먹고사니즘은 ‘먹고 산다’는 말에 이념이나 철학을 뜻하는 영미식 접미사 ‘-ism’을 붙인 2000년대 신조어다. 생계유지에만 급급해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밥보다 잠을 택하다 보니 아침은 거르는 것이 일쑤. 점심은 일터에서 먹는 것이 전부다. 야근을 하고 느즈막히 식구가 마주 앉는 밤에는 으레 배달 음식을 먹는다. 코로나를 지나며 대한민국에는 배달하지 않는 음식이 없다. 주말은 삼시세끼 모두 배달이다. 그렇지만 배달 용기를 씻을 에너지조차 없어서 산처럼 쌓이는 배달 쓰레기를 주말에서나 간신히 정리하는 삶. 이쯤 되면 도대체 뭘 먹고 산다는 건가 회의감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먹는다’는 말은 ‘산다’라는 말과 함께 다닌다. 살아있기 때문에 먹고, 먹기 때문에 산다. 먹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먹는다. ‘먹는다’는 말처럼 생존과 직결되는 말도 없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일을 반복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그러니까 먹고사니즘을 돈벌이로만 한정해서는 곤란하다. 생계를 위해 바쁘다는 핑계로 모든 먹을거리를 외주로 의탁하고 살아서는 스스로를 살릴 방법을 영영 잊을지도 모른다.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화려한 특선요리가 아니다. 나를 먹이려고 차려내는 따뜻한 먹거리에서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실존적 ‘먹고사니즘’이 탄생한다. 즉석밥에 계란프라이 하나 뿐일지라도 나를 위해 차린 밥상에서는 사는 맛이 난다.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